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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두개 Jun 25. 2021

돼지야 너는 아니

나에게는 너를 위해 울 자격이 없다는 것을


 농업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양돈과에 재학 중이지만 돼지를 본 적 없는 나는 어떤 돼지라도 좋으니 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얼마 뒤 과 동기 동생 중 한 명이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김제에서 돼지농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구경을 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가끔 학교 쪽으로 바람이 불면 축산단지에서 악취가 넘어오곤 했었는데 그 근원지로 간 것이다. 철딱서니 없게도 그저 궁금한 마음에 신이 나서 트럭에 올라탔다.

 

 그곳은 정부에서도 폐업을 유도하고 있는 축산단지로 온갖 가축들이 밀폐되어 있는 동네였다. 농장 입구마다 '소독을 하지 않으면 벌금형에 처한다'거나 '출입제한'과 같은 표지를 걸어두었다. 농장을 지나면 컨테이너나 천막으로 막혀 있어 볼 수는 없지만 온갖 사체와 분뇨 냄새로 어떤 가축이 들어 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풀 한 포기 없이 잿빛인 이 동네에 과연 생명이 살고 있는 건지 섬뜩했다.


 동기네 가족이 운영하는 돈사에 도착했을 때도 풍경은 다르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이 와서 경계하시는 듯 어머니께서 우리를 가로막으셨다. 축산농가는 질병에 예민하니 농장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 사용한 흔적이 없어 보이는 소독용 발판에 발을 담그고 나서 입구를 서성였다. 그래도 조금 아쉬운 마음에 동기는 컨테이너 주변을 둘러보게 해 주었다. 100평짜리 컨테이너가 4동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동기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가끔 컨테이너 벽을 쿵쿵 쳤다. 그러면 돼지들이 꽥꽥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쳐서 돼지가 죽었나 안 죽었나 확인하는 것이라 했다. 살짝 열린 창틈이 있었다. 창틀에 구더기가 득실득실해서 가까이 가기가 꺼림칙했다. 하지만 궁금한 마음에 까치발을 들고 넘어다 보았다. 돼지와 눈이 마주쳤다. 냄새가 고약하다 못해 질식할 것 같았다. 순간 코를 홱 막았다. 그런 나를 보고 동기가 웃으면서 손 떼라고 했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인데 익숙해져야 한다면서.


 나와 눈이 마주친 돼지는 반쯤 미쳐있는 것 같았다.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컨테이너 안에서 오물에 뒹굴며 4개월 동안 똑같은 밥만 먹는다면 누구라도 미치지 않을까? 희번덕한 눈동자가 아른거렸다. 그래도 누군가의 생업이기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예의였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 속은 충격으로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와중 돼지들은 자꾸 고함을 내질렀다. 기침 소리였다.


  혼돈 속을 가로질러 분뇨 처리장을 지나 어떤 밭에 도착했다.  톱밥이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뒤로돼지 사체가 잔뜩이었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악취였다. 내가 밟은 땅에서는 시커먼 물이 뿜어져 검은 웅덩이가 형성되어 있었다. 송장물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물었다.

“네가 앞으로 몇십 년 동안은 농장을 이어갈 텐데 이 작은 땅에 돼지를 더 묻을 수가 있어?”

“썩으면 톱밥이랑 섞여서 땅으로 꺼져요.”

“땅이 얼마나 깊다고 그게 가능해?”

“그래서 포클레인으로 가끔 뒤집어 줘요.”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렇구나” 뿐이었다. 내가 믿는 땅의 놀라운 회복력은 온데 간데 없고 이미 수명을 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사체 더미 앞에서 울지 않고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는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동기네 농장을 나와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돼지는 물론이고 닭과 오리, 염소, 토끼까지 비슷한 처지였다. 그리고는 온갖 이상한 냄새를 옷에 묻힘 채 중국집에 갔다. 짜장면을 먹을 때 으레 그렇듯 탕수육을 시켰다. 인지부조화는 역시나 작동했다. 아까 나와 눈이 마주친 그 돼지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먹음직한 탕수육이 앞에 놓였다.

‘탕수육은 돼지로 만들었지. 하지만 돼지가 아니잖아. 아니 돼지가 맞지.’

혼란스러워하며 몇 점 집어 먹었다. 이건 아니지 싶은 마음이 들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복잡한 심경으로 학교에 돌아왔다. 긴장이 풀리고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다. 룸메이트와 학식을 먹으러 갔다. 하필 스팸이 나왔다. 노릇하고 따끈한 자태로 유혹을 하고 있었다. 멈칫했지만 일단 두 조각을 집었다. 스팸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룸메이트에게 물었다.

“돼지농장 가본 적 있어?”

“네.”

“고기 먹는 거 괜찮아?”

“음… 돼지가 불쌍하긴 한데… 이건 너무 맛있어요.”

맞다. 돼지는 불쌍하지만 탕수육도 스팸도 맛있다. 며칠 뒤면 다 잊고 맛있게 먹을 테지만 당장은 스팸을 룸메이트의 식판으로 옮겨야만 했다. 그리고 연두부와 버섯을 깨작거렸다. 그렇다고 고기 아닌 것들이 맛있지도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돈과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내가 보지 못했고 또 않았을 뿐이다. 생명은 귀하지만 그 또한 선택적이고 어떤 존재에게는 판타지 같은 것이다. 나는 폭력적인 세상과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위선을 떨면서 매일 어떤 방식으로든 일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해야만 했다. 기숙사에 돌아와서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창틈 너머 돼지를 바라보던 내 눈에서 다시 돼지의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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