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리뷰]
영화 <동주>로 돌아본 윤동주의 애송시...
괴로운 것과 아름다운 것과 쓸쓸한 것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는 시인 윤동주의 삶을 그렸다. 형무소에서 죽음을 앞둔 동주(강하늘 분)는 비록 처참했지만, 영화 전반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서정이 흐른다. 동주가 좋아하는 여학생과 별이 총총한 밤길을 걸을 때, 그녀가 물었다. "동주는 어떤 시인을 좋아하니?" 동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별 헤는 밤'을 읊조리는 동주의 나즈막한 음성이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또 정지용과 백석의 시도 좋아했다. 송몽규(박정민 분)가 어렵게 구한 정지용과 백석의 시집을 던져주자 동주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며 그것들을 필사했다.
여기, 동주가 그토록 사랑했던 시인들의 시 몇편을 소개한다. 우리가 동주의 시를 읽으며 동주의 진실한 마음에 닿았듯이, 동주가 사랑했던 시를 읽으며 동주의 더 깊은 마음에 닿을 수 있길 바라본다.
동주는 세상의 괴로운 것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언제나 괴로워했던 한 시인을 사랑했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느라 괴로웠던 백석을, 동주는 사랑했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중
동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별과 정오의 마을과 수탉 우는 소리를 음미했던 한 시인을 사랑했다. 모든 살아가는 것들을 사랑하느라 언제나 아름다웠던 프랑시스 잠을, 동주는 사랑했다.
오 주여, 내가 당신께로 가야 할 때에는
축제에 싸인 것 같은 들판에 먼지가 이는 날로
해주소서. 내가 이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낮에도 별들이 빛날 천국으로 가는 길을
내 마음에 드는 대로 나 자신
선택하고 싶나이다.
(중략)
날 따라들 오게나. 갑작스레 귀를 움직여
파리와, 등에와, 벌들을 쫓는
내 아끼는 가여운 짐승들이여…….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이 짐승들 사이에서, 주여,
내가 당신 앞에 나타나도록 해주소서.
이들은 머리를 부드럽게 숙이고
더없이 부드러워 가엾기까지 한 태도로
그 조그만 발들을 맞붙이며 멈춰섭니다.
- 프랑시스 잠, <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 중
동주는 세상의 쓸쓸한 것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고독한 장미를 귀히 여겼던 한 시인을 사랑했다. 모든 가을처럼 스러지는 것들을 사랑하느라 쓸쓸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동주는 사랑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햇볕을 비추시어
그것들을 완성으로 몰아가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감미로움이 깃들게 해주소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날> 중
우리는 동주를 사랑했다. 그래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이 청년을 위해, 이제라도 함께 괴로워한다. 모든 가을 속의 별들을 사랑했던 동주를, 우리는 사랑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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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16.03.09 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