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 공연]
그의 콘서트엔 자유로움이 있다
아뿔싸! 첫 곡부터 '비비 유어 러브(Be Be Your Love)'였다. 레이첼 야마가타는 워밍업 따위 필요 없다는 듯 처음부터 자신의 대표곡을 들려주며 단번에 객석을 무장해제했다. 키보드 앞에 자리한 그의 머리 위로 핀라이트가 떨어지며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의 내한을 기다린 한국팬들은 환호성으로 뜨거운 인사를 건넸다.
지난 5월 24일 오후 8시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레이첼 야마가타(Rachael Yamagata)의 내한 공연이 열렸다. 레이첼 야마가타는 한국에서의 인기를 입증하듯 2014년과 2015년에 이어 올해에도 내한하여 단독 공연을 펼쳤고, 앞선 공연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1100여 석 모두 매진시켰다.
이번 공연은 레이첼 야마가타의 새 앨범 <어쿠스틱 해픈스텐스(Acoustic Happenstance)> 발매 기념이다. 이 앨범은 지난 2004년 데뷔앨범 <해픈스텐스(Happenstance)>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한 것이다.
자, 그럼 레이첼 야마가타의 뜨거웠던 콘서트 현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극과 극, 밴드사운드와 어쿠스틱사운드
사실 어쿠스틱한 무대를 예상했다. 하지만 반은 적중했고, 반은 어긋났다. 공연 초반과 중간중간에 밴드사운드가 무대를 완전히 압도했기 때문이다.
어쿠스틱 사운드를 더 좋아하는 기자의 개인적 취향을 뒤흔들 만큼, 밴드사운드는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놀라운 완성도를 보였다. 뛰어난 연주가 훌륭한 음향설비를 통해 울려퍼지니 어쿠스틱에선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이 탄생했다. 특히 일렉기타 세션은 화려한 쇼맨십과 재치로 분위기를 달궜다.
극강의 밴드사운드가 지나간 자리엔 극강의 어쿠스틱 사운드가 들어왔다. 밴드 세션이 무대 뒤로 잠깐 퇴장하자 기타를 맨 레이첼 혼자 남았다. 그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부르는 노래"라고 소개하며 '듀엣(Duet)'의 어쿠스틱 버전을 불렀다. 밴드가 빠지고 침묵만 남은 공연장을 레이첼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채웠다. 목소리가 더욱 부각되니 진정성은 또렷하게 마음을 두드렸다.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
레이첼은 갑자기 "실험을 하나 하겠다"며 마이크를 내려놓고 무대 맨 앞까지 나왔다. 밴드 멤버들도 각자의 악기를 내려놓고 무대 끄트머리에 그녀와 함께 섰다. 객석은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레이첼은 밴드 멤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즉석에서 나누더니 곧 노래를 시작했다. 일렉 기타와 키보드 세션은 통기타를 쳤고, 드럼 세션은 탬버린으로 박자를 탔다. 어떠한 기계장치도 거치지 않은, 레이첼의 순수한 육성이 흘러나왔다. 이들은 무대 바닥을 발로 쿵쿵거리며 모자란 악기 효과를 대신했고, 관객은 리드미컬한 박수로 또 다른 악기가 되어주었다. 관객과 완전한 소통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파격 무대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급기야 무대 아래로 내려간 이들은 객석 맨 앞좌석 의자의 양쪽 팔걸이를 밟고 그 위에 올라섰다. 관객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는 이들의 마음이 전해졌고, 객석은 생전 처음 보는 진풍경에 박수와 몸짓으로 응답했다. 레이첼은 말했다.
"이럴 계획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여러분을 보고 영감을 받아서 갑자기 꾸며보았다!"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무대. 관객들은 열광했다.
객석 구석구석을 유혹하다, 치명적으로
레이첼은 자신의 흥에 못 이겨 공연 내내 몸을 흔들거나 점프하며 노래했다. 춤인 듯 살풀이인 듯 마음 깊숙이서 우러나오는 몸짓. 그는 객석 중간까지 올라오는가 하면, 노래 도중 카메라맨에게 다가가 코앞에서 포즈를 취하기도 하며 구석구석을 그의 색깔로 물들였다.
노래를 부르며 무대 왼편 좁디좁은 끄트머리로 걸어간 레이첼은 갑자기 경호원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조명이 두 사람을 내리비췄다. 경호원은 당황하여 뒷걸음질을 쳤지만 레이첼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경호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그를 끝까지 따라가더니 넥타이를 풀었고, 볼에 키스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경호원의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창백해지자 그제야 레이첼은 그를 놓아주었고, 그에게서 뺏은 넥타이를 스카프처럼 목에 두르고 무대 중앙에서 노래를 마저 불렀다.
끝내 눈물 보인 레이첼, 다시 만나요!
이날 레이첼은 밴드와 따로, 혹은 같이 무대를 꾸미며 단조롭지 않게끔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다. '아이 원츄(I Want You)', '노바디(Nobody)' 등 총 16곡을 부르며 관객과 적극적으로 교감했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공연이 끝날 때쯤엔 완전히 쉴 만큼 몸을 사리지 않았다.
준비된 공연이 끝나고 레이첼이 퇴장했지만 객석은 자리를 지키고 서서 "앵콜"을 연호했다. 다시 등장해 무대 맨 앞에 앉은 레이첼은 노래를 하려다 말고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했다. 앵콜 무대에서 그는 '폴링 인 러브 어게인(Falling in Love Again)'과 '렛 미 비 유어 걸(Let Me Be Your Girl)'을 불렀다. 스스로도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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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16.05.25 2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