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래버레이션의 진화,
어디까지 봤나요?
컬래버레이션이란 말 자체가 낯선 때가 있었다. 1세대 아이돌이 활약하던 1990년대에는, 연말이면 H.O.T.와 젝스키스가 합동 무대를 꾸미곤 했다. 컬래버레이션이라 해봤자 이런 소극적 차원에 그쳤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협업의 방식이 적극적이고 다양한 변주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지누션이 엄정화와 함께 '말해줘'를 부른 건 적극적 컬래버레이션의 문을 연 '사건'이었다.
인지도 없는 신인, 셀럽 선배와의 협업은 필수?
음악에서 컬래버레이션의 유형을 구분하자면 다양하게 나눌 수 있다. 시간 흐름대로 보면 '같은 소속사 신인 밀어주기'만큼 오래되고 여전히 활발한 협업은 또 없을 것이다. 최근 해체를 선언한 투애니원은 2009년 싱글 <롤리팝>(Lollipop)으로 데뷔했는데, 이 곡은 소속사 YG의 선배인 빅뱅과 함께 불러 큰 주목을 받았다. 인기 절정 선배그룹이 주는 후광효과를 톡톡히 누린 것. 데뷔곡부터 컬래버레이션이란 카드를 꺼내 든 투애니원은 산뜻한 첫출발의 흐름을 타고 2010년대 초 많은 인기를 누렸다.
같은 소속사 혹은 친한 소속사 가수들끼리의 '품앗이'가 전형적 방식의 협업이라면, 점점 그 조합의 방식이 다양해졌다. 의외의 컬래버레이션이 속속 등장한 것. 가령 지난해 1월 발표해 음원시장에서 롱런한 백현X수지의 듀엣곡 'Dream'은 예상치 못한 조합이었다. 우리나라 3대 대형기획사인 SM-JYP-YG. 그중 SM 대표그룹 엑소의 백현과 JYP의 대표주자 수지의 조합이라니, 이건 마치 이루어질 수 없는 두 가문의 자녀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처럼 보였다. 대형기획사 3사의 선두 경쟁은 특히 치열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인기에 더해, 재즈와 네오 소울을 기반으로 한 노래의 완성도 덕에 이 곡은 발매 첫 달 54만 3757회의 음원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MBC <무한도전>의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경우는 비가수와 가수의 조합이었다. 유재석과 이적이 함께 부른 '말하는 대로', 박명수(가수이기도 하지만)와 아이유가 듀엣한 '레옹' 등은 오래도록 불리며 사랑받는다. <무한도전>은 2007년 강변북로 가요제를 시작으로 2009년 올림픽대로 가요제, 2011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등을 꾸준히 선보이며 컬래버레이션 조합엔 한계가 없다는 것, 노래엔 벽이 없다는 걸 보여줬다. 현재도 음원차트 점령 중이다. 지난달 말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 편을 통해 역사를 주제로 컬래버레이션 한 이들의 노래가 감동을 일으킨 것. 특히 황광희X개코의 '당신의 밤'(Feat.오혁)이 멜론과 엠넷차트 등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심지어 일반인과 가수의 조합도 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컬래버레이션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단 증거다. SBS <판타스틱 듀오>, MBC <듀엣가요제> 등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일반인과 가수가 짝을 이뤄 무대를 꾸민다. 화제가 되는 곡은 음원으로도 발표된다. <듀엣 가요제>가 배출한 '영혼의 단짝' 한동근X최효인, <판타스틱 듀오>를 통해 감동 무대를 선사한 이문세X김윤희 조합은 직업가수가 아니더라도 노래 안에서 누구든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줄 수 있단 걸 보여줬다. 이는 컬래버레이션 진화의 최신 버전이다.
외국 가수와 함께, 혹은 망자와 함께
컬래버레이션 역사(?)의 책장을 넘겨볼 때, 이는 가장 '최근 페이지'가 아닐까 싶다. 외국 가수와 한국 가수의 협업. 지난달 27일 레드벨벳의 웬디와 라틴팝 스타 리키 마틴(Ricky Martin)이 함께 부른 싱글 'Vente Pa`Ca'(벤테 파카, 스페인어로 '이리로 와')가 전세계 동시 발매됐다. 두 사람의 조화가 뛰어나다. 작곡이나 프로듀싱이 아닌 보컬로써, 외국가수와 한국가수가 듀엣 음원을 내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다. 리키 마틴은 이 곡으로 여러 나라 가수들과 컬래버레이션 했는데 특히 콜럼비아 아티스트 Maluma(말루마)의 피처링 음원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Vente Pa`Ca'를 발매한 소니뮤직코리아 관계자는 지난 6일 오후 <오마이스타>와의 통화에서 "윈윈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단 점과, 케이팝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 이런 조합의 이유"라고 분석했다.
"남미에서 히트한 이 곡으로 리키 마틴은 호주를 비롯한 아시아권 나라의 가수들과도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했다. 레드벨벳의 웬디가 함께한 한국 버전은 피처링(웬디)의 비중이 다른 국가 버전보다 크다. 비하인드를 말씀드리면, 웬디가 녹음하면서 '실리지 않아도 되니까 더 불러보겠다'며 할당되지 않은 파트까지 노래하는 적극성과 애정을 보였다. 그렇게 부른 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 비중이 커진 것이다. 웬디에게 이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한 이유는 그가 영어를 잘하고, 가창력과 음색이 좋기 때문이다." (소니뮤직 관계자)
그는 덧붙여 "리키 마틴을 아는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세대에게는 낯선 가수기 때문에 그의 입장에서도 자신을 새롭게 어필할 기회가 필요했다"며 "한국의 실력 있는 아이돌과 작업하는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웬디 역시도 세계적 스타인 리키 마틴과의 작업 기회가 소중한 건 마찬가지. 앞서 말한 윈윈효과다. 끝으로 관계자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국의 디지털 음원시장이 큰 편이라서, 외국 아티스트들이 케이팝과 엮어서 작업하고 싶어 한다"며 추세를 설명했다. Mnet <슈퍼스타K6> 출신 가수 송유빈도 지난해 11월 발매한 세계적 연주 그룹 피아노 가이즈의 정규 앨범 보너스트랙 'Okay'를 피처링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컬래버레이션도 독특한 조합이다. 지난 2011년 SK텔레콤의 광고 영상에서 아이유는 고 김광석과 함께 '서른 즈음에'를 불렀다.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 합성이었다. 김광석의 생전 공연 현장과 흡사한 환경의 세트를 만들어 그 무대에서 아이유를 노래하게 했고, 그런 후 김광석의 영상과 합성했다. 김광석이 생을 마감할 때 아이유가 세 살이었으니 이런 듀엣은 시간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끝으로, 컬래버레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케미스트리'가 아닐까. 두 가창자의 조화만 훌륭하다면 상대가 경쟁사의 소속가수든, 외국인이든, 일반인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대중은 예상치 못한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무대에 색다른 감동을 선물 받는다. 새로운 조합의 의외의 조화, 이것이 컬래버레이션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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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17.01.08 0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