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독백인가...
<나의 아저씨> 감독판 보는 듯
[OST로 보는 드라마] 고단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 <나의 아저씨> OST '어른'
듣기만 해도 고단해지는 노래가 있다. 첫마디부터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이다. 바닥까지 감정을 쭉 끌어내리면서 시작하는 이 곡은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 OST Part2 '어른'이다. 손디아(Sondia)의 깨끗하고 담담한 음색이 돋보이는 이 곡은 OST라는 특성에 맞게 극중 인물이 화자가 되어 가사가 진행된다.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인처럼/ 혼자만 모든 걸 잃은 표정/ 정신없이 한참을 뛰었던 걸까/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
가사는 이지안(이지은 분)의 모습과 속마음을 그대로 옮겨놓다시피했다.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라는 대목은 지안의 삶과 닿아 있다. 또한, 이 처절한 가사는 박동훈(이선균 분)-박상훈(박호산 분)-박기훈(송새벽 분) 세 형제의 이야기라고 해도 말이 된다.
<나의 아저씨>는 현실적인 드라마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보기에 고통스러울 정도다. 생계의 고단함은 여러 인물의 삶을 통해 빚더미, 실직, 별거, 과로, 부모의 타는 속 등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팍팍한 현실을 적절한 은유로써 풀어내며 작품성을 챙긴다. 가령, 형제청소방을 시작한 상훈은 주황 신호등에서 무리하게 좌회전을 해 번번이 봉고차를 눕힌다. 그러면서 "주황불에서 서는 게 안 된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붙인다. 조금만 힘을 내면, 조금만 속도를 내면 이 힘든 상황(빨간 불)에서 벗어날 것 같아 가속페달을 밟아보지만 여지없이 쓰러지고, 또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일어나고 다음번에 또 그런다. 이 드라마는 이렇게 절망 속에서도 절대 놓지 않는 희망의 끈과 삶을 향한 의지를 아주 비밀스럽게 은유로써 숨겨둔다.
드라마가 '보여주기' 방식으로 인물들의 고단한 삶을 그렸다면 OST '어른'은 '말하기' 방식으로 이지안의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연극의 독백처럼 말이다. 드라마에서 이지안은 절대 자신의 슬픔과 외로움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티내지 않고 심지어 혼자 있을 때 조차도 아무렇지 않은 척 무표정 일관이다. 이런 지안의 진짜 마음을 드러내보인 이 노래는 <나의 아저씨>의 감독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눈을 감아 보면/ 내게 보이는 내 모습/ 지치지 말고/ 잠시 멈추라고/ 갤 것 같지 않던/ 짙은 나의 어둠은/ 나를 버리면/ 모두 갤 거라고"
가사를 보면 '지안의 속마음은 이랬구나, 정말 많이 슬프고 외로운 아이구나' 하고 알 수 있다. '어른'은 절망에 몸부림치는 지안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노래는 질척거리는 현실의 어둠을 옮기는 데 머물지 않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같은 환상적이고 승화적인 표현으로 아름다움을 담는다.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단 걸/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이 곡에서 가장 슬픈 대목이 위의 가사가 아닐까 한다. 화자는 나로서 살아가는 꿈을 꾸지만 밑바닥 인생 안에서 결코 나는 내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는 고백이다. 이 가사는 바닥의 바닥, 절망의 가장 어두운 골짜기에 있는 주인공의 심정을 아프게 보여준다.
노래는 마지막에 희망의 여지를 살짝 드러낸다.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 나의 작은 세상은 웃어줄까" 하고 쓸쓸하게 노래는 끝나지만 쓸쓸함 뒤에는 세상이 웃어주는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희망도 내포돼 있다. 지안과 동훈은 서로에게 웃어줄 '작은 세상'으로 조금씩 자리매김해가는 것이다.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지안은 동훈의 진실한 모습에 점점 감응한다. 동훈의 휴대폰에 설치한 도청장치를 통해 그의 삶을 관찰하면서다. 삶을 증오의 대상으로 보는 얼어붙은 지안의 마음은 점점 녹는다. 이런 설정을 보면서 영화 <타인의 삶>이 떠올랐다. 1984년 동독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자신의 신념에만 몰두한 냉혈인간 비즐러가 극작가 드라이만을 감시하는 비밀경찰로서의 임무를 하면서 드라이만의 삶에 감동받고 변해가는 내용이다.
이지안은 비밀경찰 비즐러 같고 동훈은 극작가 드라이만 같다. 하지만 동훈 역시 지안을 알아가며 자신의 삶을 치유해가는 존재다. 지안이 자신을 '잘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훈에게 "성실한 무기징역수" 같다고 말하는 지안의 한 마디는 너무 정확해서 아프지만 동시에 위로로 다가온다. 부모도, 형제도, 아내도 모르는 나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봐주고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 이 사실에 동훈도 조금씩 자신을 치유하고 '내가 되는 날'을 꿈꾸기 시작한다.
OST '어른'은 어떻게 보면 지안이 아니라 동훈을 대변하는 노래 같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노래 제목도 '어른'이다. 결국 지안과 동훈은 서로 지독히 많이 닮았고, 이것이 두 사람이 서로를 변화시키는 계기인 것이다.
기사입력 18.04.0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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