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쓸수록 나는 내가 됐다 >
"읽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큰 틀의 주제는 말이지만 읽다 보면 방향을 잃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계속 페이지가 넘겨지는 걸 보면 이게 이 책의 매력이지 싶다."
한 블로거가 내 책의 감상평을 이렇게 남겼다. 내가 찾아본 독자 리뷰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평이었다. '그럼에도'는 내게 최고의 단어다. 나는 부족함 없고 단점 없는 글을 쓰기 바라지 않는다. 내가 쓴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이런 것이었다. "기사의 내용을 떠나 글 자체가 매력적이어서 길지만 끝까지 읽었네요."
그거면 됐다.
그거면 됐다는 다섯 글자 앞에 붙는 것들은 언제나 가장 소중해서 '매력 있다'란 말이면 나는 충분하다. 살아서 돌아왔으니 그거면 됐다, 너가 행복했다면 그걸로 됐다, 진정한 사랑은 이렇게 욕심이 없는 것이어서 내가 나의 글을 사랑하는 방식도 '그거면 됐다'에 그저 머물렀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나는 글로써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길 꿈꿨다. 내가 아는 것, 내가 생각한 좋은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그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게 세상에 도움을 보태는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모두 착각 욕심 오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단지 나는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어졌다. 나는 어떤 누구도 이끌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글로써 그런 일을 해선 더욱 안 된다. 문득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들이 보고 싶어졌고 그것들을 글로 옮기고 싶어졌다.
글을 쓰는 순간이 행복하다면 역시 그걸로 됐다. 글을 쓰지 못하는 순간도 나름의 그걸로 됐다. 밤에 베개 옆에서 다이어리를 펼치고도 아무런 쓸 것이 없어 지나간 하루를 뒤적거릴 때에도. 쓸 게 없는 무사한 하루를 보낸 것으로 됐다. 내가 찾든 못 찾든 볼펜의 뚜껑을 닫고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다이어리를 닫는 일은 이미 나에게 무언가를 주었고 그것은 더는 명백할 수 없는 일이다.
읽는 이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고 확신할 때에도 그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 글에서 무언가를 받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