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화신 Jul 30. 2020

배우 박정민은 왜 동네책방을 냈나





[기획연재 인터뷰]
배우 박정민은 왜 동네책방을 냈나 





[별들의 책장] 배우 박정민, 책방 주인이자 에세이 저자로 살 때


** '별들의 책장' 기획연재 인터뷰는?

책과 글쓰기를 사랑하는 스타들을 만나 그들이 즐겨 읽는 책에 관해, 혹은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 나눕니다. (이 기사는 지난 2019년 10월 1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연재를 재개하며 뒤늦게나마 이곳에 옮겨놓습니다.)  


ⓒ 이하 박정민 사진 출처_ '빅이슈'


누군가 내게 "넌 어떤 사람이니?" 하고 묻는다면 구구절절 말 대신 내 방을 보여줄 것이다. 분명 넘치게 충분한 설명이 될 테니. 지난 9일 정오, 그 주인을 똑닮은 한 공간을 찾았다. 기획 인터뷰 <별들의 책장>, 그 두 번째 손님은 지극한 책사랑으로 몇 달 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자신의 책방을 연, 배우 박정민이다. 


소담하고 정 넘치는 동네책방. 이름은 '책과 밤 낮'이다. 오후 7시에 문을 열 때는 '책과 밤'이었는데, 오후 2시 오픈으로 영업시간이 바뀌면서 상호명도 '책과 밤 낮'으로 변경됐다. 작명법마저도 어쩐지 주인장을 닮은 것만 같다. 박정민이 사방에서 묻어나는, 그의 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과 밤 낮'에서 그가 좋아하는 책과 책방에 관한 이야기를 실컷 나눴다. 공교롭게도 한글날이었다.


박정민 이름 석 자 숨기고 시작한 책방

  

'책과 밤 낮'은 합정역과 상수역 사이에 있다. 건물 1층은 식당이고, 2층이 책방이다. 2020년 7월 현재도 운영 중이다. ⓒ 손화신


연기 하나만 해도 숨 가쁜 나날일 텐데, 그는 왜 수고롭게 책방까지 냈을까. 돌아온 답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내가 읽은 책을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어서, 책 읽는 공간을 만들어드리고 싶어서다. 밤늦게까지 조용하게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음료 메뉴도 있긴 하지만 이건 입장료 같은 구색에 가깝고, 모든 건 책에 맞춰져 있다. 이곳을 이용하는 분들에게 제가 재밌게 읽은 책, 좋다고 여기는 책을 소개하려는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다."


그의 말대로 '책과 밤 낮'은 본인이 원해서 차린, 살면서 읽고 좋았던 책들을 모아놓은 집합소다. 보통의 서점들이 책 보유량을 늘리려고 애쓴다면 여긴 완전히 반대다. 맛집엔 메뉴가 많지 않은 것처럼 이곳도 책을 신중히 '엄선'하여 내놓는다. 선택과 집중의 공간이다. "SNS 같은 데 '이 책 좋아요' 하고 제가 툭 던지는 걸 팬분들께서 다 사서 읽어보시는 모습을 보고 '아, 정말 좋은 책을 골라서 잘 추천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양보다 질에 집중하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밝혔다. 


책방엔 아르바이트생이 타임별로 세 명 있다. 또, 그의 초등학교 절친이 직원들 급여와 돈 관리, 설비 관리 등을 하는 공식적 '사장'으로 있다. 하지만 책방의 '일당백'은 박정민 본인처럼 보였다. 책 큐레이팅을 하고, 독후감과 흡사한 긴 분량의 '책 메뉴판'을 쓰고, 출판사에 전화해 직접 접촉하고, 책을 주문하고 배송 온 책을 풀어서 진열한다. 카운터도 본다. 카드기 앞에 서서 빠른 손놀림으로 손님들이 골라온 책을 계산해주고, 음료 주문을 받고 계산하고, 후다닥 주방에 들어가서 방금 주문받은 음료를 야무지게 만들어 손님의 자리까지 서빙한다. 물론 청소도 한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책과 밤 낮' 네온간판. 책방 외부와 내부 구석구석, 소품 하나하나 박정민이 직접 꾸몄다. ⓒ 손화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업무가 있다. 손님 팬과의 만남. 대부분의 손님들이 그에게 사인 요청을 하는데 매번 다정하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고 대화도 나눈다. 이건 책방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업무인 것이다. 여러 번 방문한 손님의 이름은 필히 외워서 불러주고 먼저 아는 척하며 인사를 건넨다. 그의 다정함과 섬세함이 잘 드러나는 사례다. 


"처음에는 제가 책방 한다는 소문을 안 냈다. '배우 박정민이 운영하는 책방'이란 타이틀이 싫었다. 그렇게 되면 이 공간이 갖는 오롯한 힘이 생겨나지 않을 것 같았다. '박정민 보러 가자' 이런 분도 계실 테니까. 그래서 '공간의 힘만으로 가보자' 해서 제가 하는 책방이란 걸 숨겼다. 더군다나 제 성격이 원래 제 자신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고 많이 창피해한다. 그래서 박정민이라는 이름을 떼고 시작한 건데, 하다 보니 이렇게 알려지게 됐다. 원래는 조용하게 혼자 글도 쓰고 책도 보는 작업실 겸용으로 쓸 계획이었다."


그는 지난 4월에 자신이 잠만 자는 서울의 집에다 '책과 밤'을 열었고, 이후 8월에 그 근처의 공간을 얻어 '책과 밤 낮'을 정식으로 오픈했다. '책과 밤'이 10명도 채 들어갈 수 없는 가정집 형식의 책방이었다면(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책과 밤 낮'은 수십 명이 이용할 수 있는 꽤 넓고 본격적인 공간이다. 


책방을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본인이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큐레이팅을 한 이유를 물었다. 이 질문에 그는 "베스트셀러 같은 책들은 교보문고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고 인터넷 서점에 가면 더 싸다. 굳이 그걸 이 곳에 갖다 놓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며 "이곳에서 책에 재미를 붙이고, 그다음에 진짜 자신이 보고 싶은 책을 찾아갈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게 '책과 밤 낮'이다"라고 대답했다. 


진정성 넘치게 책방을 운영하는 그에게 생뚱맞지만 "이 일은 배우인 당신에게 투잡 개념인가, 취미 개념인가"하고 물었다. 이에 박정민은 "물론 취미"라며 "수익을 내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수익이 남지도 않는다. 공간 임대료, 직원 셋의 월급을 주고, 책도 입고하고... 단지 제가 재미있어서, 여기 있으면 마음이 놓여서 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책방을 운영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이 물음에도 역시 그의 일관성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청 바쁘다가 한 텀 쉴 때 고개를 들어 매장을 쓱 둘러보면, 다들 책을 보시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 기분이 정말 좋고, 뿌듯하다. 이 일을 잘했구나 싶다."


박정민의 글쓰기... 사랑하지만 두려운 것 



박정민은 지난 2016년에 <쓸 만한 인간>이란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그리고 올해 9월 2일 이 책의 개정증보판을 새로이 냈다.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말들'이 싹 제거됐다. 20대에 쓴 글을 지금 돌아봤을 때 '이런 표현은 좀 아닌데' 싶은 것들이 그의 눈에 밟혔고, 그렇듯 미흡한 부분들을 빼거나 수정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글 몇 편을 추가했다. 그렇다면 에세이를 출간하고 나서 얻은 변화가 있을까. 


"음... 글이 두려워졌다는 게 변화다. 글이란 것이 생각 없이 써서 될 것이 아니구나, 이 글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 저도 책을 읽어나가면서 아, 시대는 변하는 것이구나,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이 시대 안에서 지금 격렬하게 논쟁이 일어나는 것들에 관하여, 그에 적합한 사고방식으로 완전히 바꾸려면 난 아직 멀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논의가 일고 있고, 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어떤 것들을 제가 함부로 말함으로써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 그들에겐 굉장히 민감한 문제구나 하는 걸 깨닫고는 글 쓰는 게 두렵고 조심스러워졌다." 


사실 그의 책방은 도서판매업뿐 아니라 출판업의 공간으로도 등록돼 있다. 책을 파는 서점 겸 책을 만드는 출판사인 것이다. 아직 출간한 책은 없지만 그는 내고 싶은 책을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과 맞닿아있는 작가의 책을 내주고 싶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배우라는 직업 때문에 선뜻 하지 못하는 말들을 말해주는 작가의 책을 낼 예정이다. 개인적인 제 책을 우리 출판사에서 낼 일은 없을 거다. 책방일지 정도는 출간할 수 있겠지만" 하고 밝혔다. 


그에게, 만약에 본인이 직접 쓴 에세이를 또 내게 된다면 어떤 책을 내고 싶은지 물었다. 


"아직까지는 그럴 계획이 없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내게 되면 지금 같은 산문집 형태가 아니라 하나의 주제에 관해 밀어붙이는 책을 내고 싶다. 원래는, 한 주제를 정한 후 내 목소리를 쓰는 게 아닌, 손님들을 인터뷰해서 그들의 말을 듣고 그걸 글로 쓰고 싶었다. 가령 주제가 '휴대폰'이라면, 휴대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 직업군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거다. 계속 책방을 한다면 언젠가는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책방은 곧 나"


카운터 옆 벽에는 팬들이 그려준 박정민 초상화 대여섯 개가 붙여져 있었다. ⓒ 손화신


오픈시간인 오후 2시부터 마감 시간인 자정까지 그는 책방을 지킨다. 그 성실성 덕분에 그가 영화인이라는 것을 잠시 잊을 수도 있겠지만, 그의 본업은 명백히 배우다. 새 영화 촬영에 돌입하게 되면 지금처럼 종일 책방을 지킬 수 없을 것이고, 그것에 대비해서 그는 "나 없이도 잘 굴러가는 책방"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요즘 작업 중이라고 했다. 


그에게 책과 글쓰기 그리고 연기는 상호 간에 영향을 주는지, 영향을 준다면 어떤 식으로 주는지 물었다. 이에 박정민은 "서로가 서로에게 휴식이 되어준다"고 간결하지만 단번에 납득할 수 있는 답을 꺼내놓았다.  


끝으로 "책은, 혹은 책방은 박정민에게 OOO이다"라는 문장의 빈칸을 채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조금 길게 생각하더니 다음처럼 답했다.  


"책은, 그리고 책방은 저인 것 같다. 책을 볼 때 늘 저를 대입해서 보니까. 맞아, 맞아 나도 그랬지 하면서 읽는다. '이 책방, 박정민 배우를 닮아있는 것 같다'는 말이 가장 듣기 좋았다."


인터뷰는 정오에 시작해서 책방 문 여는 시간인 오후 2시에 끝났다. 오픈 10분 전에 도착한 그의 절친 사장님이 2시 땡 하자 문을 열었다. 수십 분 전부터 밖에서 기다리던 손님들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순식간에 책방의 모든 자리를 채웠다. 1분 만에 만석이 되는 풍경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인터뷰 후 쉴 시간도 없이 박정민은 카운터와 주방을 정신없이 오가며 언제나 그랬듯 익숙하게 손님들을 대했다.


본인을 쏙 빼닮은, 자기만의 방. 그 박정민스러운 공간을 박정민은 박정민스러운 방식으로 하루하루 채워가고 있었다. 책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 기사링크

http://omn.kr/1la73



매거진의 이전글 '동백꽃' 염혜란, "저도 홍자영 갖고 싶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