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계춘할망>으로 스크린 돌아온 김고은
'나를 잃지 않는 법'
1년 만이다. 기자가 배우 김고은을 만난 게 작년 봄 영화 <차이나타운> 인터뷰 때였으니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차이나타운> 이후 그는 영화 <협녀, 칼의 기억>과 <성난 변호사>를 통해 스크린에 두 번 더 얼굴을 비췄고, tvN드라마 <치즈인더트랩>에서 홍설 역을 연기하며 브라운관까지 발을 넓혔다. 통신사 광고도 찍었다. 한마디로 1년 동안 승승장구했다.
오는 19일 영화 <계춘할망>의 개봉을 앞둔 김고은을 1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1년이란 토막의 처음과 끝에서 그를 바라본 감상은, 그때의 김고은과 지금의 김고은은 여전한 듯 여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전한 것 : 자유로운 영혼
김고은은 여전히 여행과 노래를 좋아한다. 얼마 전에는 스킨스쿠버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자주 가는 여행지는 제주도란다. 스케줄 때문에 외국에 나가긴 부담스러워 제주도에 자주 가는데, 여행을 가는 이유는 어디를 가든 '머물다 오고 싶어서'다.
제주도에 가면 느지막이 일어나서 근처를 거닌다. 혹은 가만히 앉아 있는다. 파리에 가도 관광지를 돌아다니기보단 카페에 죽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사람들이 다 다른 게 재미있고, 내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 궁금해서"다.
노래방 예찬도 여전하다. "한국에 노래방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적응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 10년 동안 중국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말을 타고 놀았고, 한국에 와서는 노래방을 자주 다녔다. 평소에 힘든 일이 있어도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힘든 날 그냥 혼자 집에 있으면 친구들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친구가 '너 무슨 일 있었잖아'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불러내서 제가 좋아하는 노래방에 데리고 가줄 때, 그것만큼 고마운 게 없다"고 그는 말한다.
91년생 김고은은 20대 중반을 지나고 있다. 그는 "지금 당장에 행복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 그것을 우선순위로 두려고 애쓴다"고 말한다.
"제겐 순간순간 느끼는 것들이 가장 의미 있어요. 어떤 '행보'를 계획하는 것 보단요. 모든 일의 의미는 그 순간에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항상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돌아봤을 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를 당장 행복하게 해주는 목표는 '성장'인 것 같아요. 성장하고 싶어요. 지금 당장 연기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기보다는 부딪히는 과정을 겪고 싶어요. 그런 과정이 있어야 사람은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했었고, <은교>로 데뷔한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고요."
말이 나온 김에 <은교> 때의 심경(?)을 물었다. 노출신이 강렬한 영화이므로.
"<은교>는 제가 배우가 되고 싶은 학생일 때 만난 작품이에요. 당시, '내가 어떤 배우가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머릿속이 차있을 때 이 작품이 제가 원하는 방향에 가깝게 여겨졌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그러셨죠. 최선은 다하겠지만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그래도 할 거면 하라고요. 그 최악의 상황이 무엇일까 혼자 곰곰이 생각하니 너무 두렵더라고요. 영화가 잘 안 되는 상황부터, 그로 인해 저에게 미치는 결과까지 그 모든 게 두려웠죠. 하지만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처음부터 최악의 상황을 각오한 상태로 영화에 들어갔고, 그러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했어요. 데미지도 없었고요."
여전하지 않은 것 : 나를 지키는 일
1년 전과 지금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고은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저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질문에 무언가 대답하려는 이 순간도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제가 하는 말들이 글로 옮겨질 때 다른 뉘앙스를 띠게 되고, 거기서 오해가 생길 때 많이 속상했어요. 글이란 게 그 상황의 맥락까지 그대로 담을 순 없는 건가봐요. 선배님들께 이런 고민으로 상담을 하면 스스로 더 많이 조심하는 게 최선이라는 답변을 해주세요. 나쁜 의도로 말한 적이 결코 없지만 혹시라도 그렇게 들릴까봐, 그런 괴리가 겁나서 나를 꾸며야 하는 건지 고민돼요.
스스로 거듭 조심하는 과정들이 본래의 나를 잃게 하고 뒤로 감추게끔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를 잃지 않고 싶은 마음이 작년보다 커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나 자신을 꾸미는 것이 자신의 매력을 잃는 일처럼 느껴지거든요. 특히 일상에서 말이에요.
사람이 사람답게 시간을 보내야 하고, 내 성격 그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상에서도 자신을 꾸민다는 건 연기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지금 이 순간도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화에는 상황의 분위기란 게 있고 그 분위기 안에서 말을 하는데, 그 안에서 한 말들이 행여나 왜곡돼서 전달될까봐 비즈니스처럼 임한다면 그건 너무 삭막한 것 같아요."
김고은은 진솔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어요. 선배들로부터 배운 것인데, 배우의 자세에 대한 것입니다.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는 보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제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므로, 그에 앞서 중요한 것은 자세라고 생각해요. 함께 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 이런 자세야말로 가장 중요한데, 이 부분에 있어선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김고은은 여전히 솔직하고 밝았다. 그리고 한결 더 생각이 많아보였다.
기사입력 2016.05.13 오후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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