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스킨십
#15. 아이 콘택트
: 눈빛 스킨십
종영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심리학 강사 도민준(김수현 분)은 ‘스킨십의 심리학’이란 주제로 이렇게 강의했다.
도민준: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헤리할로는 실험을 했습니다. 인간과 유전자가 95% 비슷한 붉은 털 원숭이 새끼를 어미에게서 떼어놓고 두 개의 원숭이 인형이 있는 방에 가둔 겁니다. 한 인형은 철망으로 만들어진 몸에 젖병을 매달았고 다른 인형은 부드러운 천으로 감쌌습니다. 젖병을 매달지 않았죠. 새끼 원숭이는 두 인형 중 어느 인형을 더 선호했을까요?”
학생: “젖병이 있는 인형이요.”
도민준: “실험 전 예상도 새끼 원숭이가 젖병이 매달린 인형을 더 선호할 거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예상을 깨고 새끼 원숭이는 부드러운 천 원숭이에 강한 애착을 느꼈습니다. 이를 통해 증명된 게 바로 스킨십의 중요성이죠. 눈 맞추기 역시 간접적인 스킨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은 좋아하는 상대와 눈을 마주치면 뇌 속 신경물질인 도파민이 나와서 기쁨이 고조됩니다.”
드라마 속 대사지만 허구가 아니다. 실제로 심리학자 헤리 할로(Harry Harlow)가 이 실험을 통해 스킨십에 대한 이론을 확장시켰다. 주인공의 대사 중 마지막 ‘눈 맞추기’에 대한 언급은 주목할 만하다. 1대 1의 대화든 1대 다수의 스피치든 ‘아이 콘택트(eye contact)’가 가져오는 효과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체 스킨십이 우리의 정신과 몸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워낙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눈빛과 눈빛이 마주치는 눈빛 스킨십도 그만큼 긍정적 효과를 준다는 것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앞의 Soul 챕터에서도 '눈빛은 영혼을 꿰뚫는 무기'라고 언급했듯 눈빛은 그 사람의 생각, 감정, 영혼을 전하는 매우 신비한 매체다. 말을 할 때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 짧은 시간을 함께하더라도 상대와 더욱 깊고 친밀하게 교감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 앞에선 힘들겠지만 10명 내외의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는 한 명씩 골고루 아이 콘택트를 하는 게 좋다. 이것은 화자와 청자 양쪽 모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허공 어느 지점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야기하는 것은 내용 전달에는 문제가 없지만 청중과의 교감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만 집중된 아이 콘택트도 가능한 피해야 하는데, 유치하게 들릴지 몰라도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서운함을 자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피치 동호회에 참석해서 발표를 듣다 보면 내 눈을 한 번도 안 바라봐주는 사람에게는 괜히 야속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눈을 바라보기가 어색하고 힘들 때는 상대의 두 눈썹 사이 지점인 미간이나 코를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양에서는 상대편과 대화를 할 때 시선을 마주치는 것이 예의 바르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피하는 것은 부정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선 시선을 피하는 것을 부정직하다고 까지 여기지는 않지만 자신감 없어 보인다고 인식하는 경우는 많다. ‘어디서 빤히 쳐다보느냐’는 옛날 어르신들의 말은 이제 조선시대 이야기가 됐다. 아이 콘택트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유교적 문화도 한국에서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영화 <아바타>에서 판도라 행성 나비족들이 “I See You”, 당신의 내면을 본다는 의미로 이 말을 할 때 상대의 다른 신체부위가 아닌 눈을 바라본다. 우리가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는 것 역시도 나비족처럼 상대방의 진실한 내면과 소통하겠다는 상징적인 행위로 볼 수가 있다. 눈빛은 마음이 오가는 보이지 않는 통로다. 소통을 위해서 그 통로를 열어야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따뜻한 시선 위에 얹어 실어 보냈을 때 효과는 극대화된다. 살과 살을 맞대는 포근한 스킨십이 빠진 사랑은 무언가 어색하듯, 눈과 눈을 맞추지 않는 대화 역시 어색하다. 아이 콘택트는 비록 손끝 하나 닿지 않지만 영혼과 영혼이 맞닿는 농도 짙은 스킨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