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벌기와 1인칭 화법
싸움에는 항상 조심하라. 그러나 일단 휘말려 들었다면 상대가 경계할 때까지 하라.
- 셰익스피어
#17. 말싸움에서 이기는 법
: 시간 벌기와 1인칭 화법
살다보면 누군가와 다툼을 하게 된다. 내가 한발 양보하고 되도록 안 싸우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지만 부당한 일에는 맞서 싸울 필요가 있다. 또는 다툼은 아니지만 찬반토론이나 논쟁에서 논리로써 싸워야 할 일도 종종 있다. 이런 말다툼이나 토론을 포괄해 '싸움'이라 명하고 싸움에서 이기는 법에 대해 생각해볼까 한다. 싸움에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오히려 싸운 후에 찾아온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아... 내가 아까 이 말은 꼭 했어야 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결국 이불에 대고 발차기를 한다. 어떻게 하면 차분하게 내가 할 말을 다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대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첫 번째 방법은 시간 벌기다. 분노가 이성을 마비시키는 순간, 조리 있게 말하려 해도 마음처럼 되질 않는다. 그렇다고 분노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고 분노가 사라질리도 만무하다. 중요한 건 분노를 마음 한쪽에 안고서도 내가 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을 벌어야 한다. 시간을 벌면 내가 할 말을 준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에서 공격포인트를 찾아낼 수도 있다. 무조건 말을 많이 쏟아낸다고 싸움에서 이길 결정적 말을 하는 건 아니다.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올 때는 넘어진 김에 쉬어가듯 입을 다물고, 그 시간에 상대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상대의 말을 들으면 상대방 이야기 속에서 허점을 발견해낼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한 방, 결정적 펀치는 상대방의 말 속에 숨어 있다. 상대의 말을 듣고 그 안에서 허점을 찾아내 그것을 반박하는 쪽이 준비한 말만 일방적으로 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TV의 100분 토론을 보면 상대편이 하는 말을 메모까지 하면서 꼼꼼히 듣는 걸 볼 수 있다. 그건 그 사람이 워낙 경청을 잘 해서라기 보단, 상대의 말 속에서 논리적 허점을 찾기 위함일 테다. 자신의 공격 포인트를 상대의 말 속에서 탐색하면서 동시에 상대를 제압할 힘 있는 말을 준비하는 과정인 셈이다.
두 번째 전술은 앞에서도 언급한 '비폭력 대화'다. 비폭력 대화는 상대를 판단하지 않고 단지 나의 느낌을 말하는 대화법이다. 보통 말다툼을 할 때 '넌 구제불능이야!'라는 식으로 2인칭 화법을 쓸 때가 많다. 상대를 판단하고 비난하는 이런 2인칭 화법이 아니라 1인칭 화법을 써야 승률도 높아진다. '나는 이런 기분이 들었어' 하고 '내'가 느낀 것을 말해야 한다. '넌 대체 왜 그러니?' 하고 2인칭으로 공격당하면 화만 날 뿐이지만, '난 어떤 행동에 상처받았어' 하고 1인칭의 말을 듣게 되면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된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처럼 오히려 비폭력적인 방식이 폭력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1인칭 비폭력 화법의 장점은 독설을 않고도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일 뿐이니까 어떠한 말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당신이 이러하다'는 판단의 말은 언제나 상대의 반발에 부딪히지만 '내가 이렇게 느꼈다'는 단지 내 생각이 이렇다는데 상대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 말에는 받아칠만한 별다른 말이 없다. 다만 헷갈리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비폭력 대화는 상대방 인격 자체를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이지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아예 언급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시 말해, 시간을 벌어 상대의 말을 경청한 후 '너의 말은 이래' 하고 논리의 허점은 반박하되, 상대의 인격을 판단하는 '너는 이래' 같은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참, 말싸움에서 이기는 법을 굳이 'E:emotion' 챕터에 넣은 이유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감정만 앞서서는 어떠한 싸움에서도 결코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