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할 일을 나누지 않고, 맥락을 판다

왜 이 일인가, 왜 당신인가

팀장 일을 하다 보면, 어느 날부터 “이거 좀 해주세요”라는 말이 입에서 잘 안 나온다. 말을 꺼내기 전에 한 번 더 숨을 고르게 된다. 저 말을 그대로 던지면, 상대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대충 알기 때문이다. 모니터만 보던 눈이 살짝 풀리고, 어깨가 조금 내려간다. ‘또 하나 늘어났구나’ 하는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비친다.


회사에서 우리가 주고받는 것의 대부분은 할 일이다. 메일 제목은 “~ 요청의 건”, 메신저 첫 줄은 “이것 좀…”, 회의가 끝나면 회의록 아래에 할 일 목록이 줄줄이 달린다. 이 안에 ‘왜’라는 단어가 들어갈 자리는 거의 없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마감이 몰린 날이면, 나 역시 “A부터 빨리 좀 처리해 줘요”라는 말부터 보내게 된다. 그게 가장 빠르고, 가장 익숙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급한 사람이 부탁하는 거고, 덜 급한 사람이 부탁을 받는 거라고. 역할이 원래 그런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장면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내가 “A 좀 맡아줘요”라고 말하고 돌아서면, 팀원들은 내 등을 잠깐 보고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다. 그 뒤가 궁금해졌다. ‘저 일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나라도 저 일을 맡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같은 A인데, 말을 조금 다르게 꺼내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어느 날은 이렇게 말해 봤다.

“지금 우리 팀이 이번 분기 안에 B라는 목표를 맞추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런데 지금 그걸 막고 있는 게 C예요. 이게 안 풀리니까, 다른 것들을 묶어서 내보낼 수도 없고요. 그래서 이번 주에는 A라는 일을 누가 한 번 집중해서 잡아줘야 해요. 나는 그걸 O대리가 해줬으면 해요.”


길게 말한 것 같지만, 실제로 입으로 꺼내 보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대신 말하고 나면 팀원 표정이 조금 다르게 바뀐다. 눈을 한 번 위로 올려서 상황을 그려보고, 자기 자리로 다시 시선을 내린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러면 이 부분은 제가 해보고, 이 부분은 OO팀 쪽이랑 한 번 맞춰볼까요?”

똑같이 A를 맡는 상황인데, 전에는 “네, 알겠습니다” 한 줄로 끝났던 대화가 그 뒤에 한두 문장이 더 붙는다.

앞의 말은 일을 던지는 말이고, 방금 같은 말은 판을 같이 보는 말이다. 일을 던질 때는 해야 할 일만 오고 갈 뿐이다. ‘이걸 오늘까지 끝낸다’라는 문장 하나만 남는다. 반대로 판을 같이 볼 때는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그 사이에 뭐가 막고 있는지’까지 함께 공유된다. 같은 일을 맡더라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달라진다.


법원에 서류를 내러 갈 때를 떠올려 보면 더 쉽다. 아무 설명도 없이 종이 한 장 던져주며 “이거 접수 좀 해줘요”라고 할 때가 있다. 또 어떤 날은 이렇게 말할 때도 있다.


“이건 지금 기일이 촉박하여 서둘러야 해요. 오늘 안에 들어가야 내일 재판부가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어요.”


둘 다 똑같이 서류를 들고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은 창구에 선다. 그런데 발걸음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머릿속에 떠 있는 그림도 전혀 다르다. 내가 ‘맥락을 파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멋있어 보이는 말장난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일을 맡는 사람에게 기준을 넘겨주고 싶다는 뜻에 가깝다. 맥락이 있다는 건, 리더가 옆에 없어도 팀원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는 말이다.


일이 틀어졌을 때 “팀장님이 시켜서 했습니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세운 목표와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이렇게 가는 게 맞다고 봤습니다”까지 말할 수 있는 상태. 그게 맥락이 작동하는 조직이다.


물론 Why를 설명한다고 해서 모두가 갑자기 주도적인 사람으로 변하는 건 아니다. 현실은 그렇게 극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설명을 해도 그냥 “네”만 하고 조용히 처리하는 사람도 있다. 맥락을 듣고도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차이는 분명히 난다. 적어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시키니까 한다”는 기류는 줄어든다. 일이 막혔을 때 “이것도 해야 돼요?”라며 반발하듯 나오는 말 대신, “그러면 이건 순서를 바꿔야겠네요” 같은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방향성을 맞추는 일은 결국 설득의 과정이다. ‘위에서 정했으니까 따라와라’가 아니라, ‘이 방향이 조직에게, 그리고 우리 팀에게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야 한다. 설득이라고 해서 모두를 감동시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적어도 “완전히 내 생각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논리는 이해했다”는 상태까지는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지점까지 가면 사람은 생각보다 오래 버틴다. 힘들어도 “그래도 이 일이 왜 필요한지는 안다”는 문장이 안쪽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도 여전히 자주 실패한다. 급한 메일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서 먼저 튀어나오는 문장은 늘 같다. “이거 누구한테 맡기지?” 그리고 이름을 떠올린 뒤에,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때 한 번만 더 멈추려고 한다. ‘왜 이 사람이어야 하지?’, ‘이 일이 전체 판에서 어디쯤에 놓여 있지?’ 이 두 가지를 먼저 정리해 보면, 같은 사람에게 같은 일을 부탁하더라도 문장은 조금 달라진다.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 뒤로 달라진 것도 있다. 팀원들이 나를 볼 때, 단순히 일을 나눠주는 사람으로만 보지는 않는 것 같다. 가끔은 먼저 와서 묻는다. “팀장님, 이 일의 어떻게 되는지 한 번만 다시 설명해 주실 수 있어요?” 그 질문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절반은 온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일일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다음 A를 찾아서 제안하는 경우도 생긴다.


팀장은 할 일만 나눠주는 사람이 아니다. 바쁜 날일수록, 일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맥락을 먼저 꺼내놔야 한다. 오늘 누군가에게 A를 부탁해야 한다면, 그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 본다. ‘지금 우리 팀이 가고 있는 B는 무엇인지, 그 길을 막고 있는 C는 무엇인지.’ 그걸 먼저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다면, 팀원에게도 설명할 수 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할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맥락을 파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이, 팀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다.

이전 09화일이 허접한 게 아니라, 태도가 허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