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형 OJT의 진짜 목적
최근에 부서의 다른 팀에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후배가 들어왔다. 바로 윗선배 옆에 붙어서 OJT를 받는 모습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스무 해 전 내가 신입을 데리고 현장인 법원과 검찰청을 뛰어다니던 때가 딱 저랬다. 그때는 지금처럼 교육 체계나 매뉴얼이 단단하지 않았다.
“나가자.”
그 한마디면 그냥 따라 나갔다.
“이거 들고 저기로 가자.”
이유를 묻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던 시절이었다.
말로 정리해 주는 것보다, 한번 겪게 하는 게 더 빠르다고 믿었다.
현장에 나가면 별사람을 다 만난다. 의뢰인이라고 자기 말을 법처럼 세우는 사람도 있고, 법원 직원이라고 기분 내키는 대로 말끝을 세우는 사람도 있다. 서류 하나 쥐고 왕처럼 구는 사람도 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웃으며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해야 일이 굴러간다. 속은 덜컥 내려앉는데, 겉은 다시 반듯해져야 한다. 신입을 데리고 처음 그런 현장을 나가면 표정이 금방 바뀐다.
돌아오는 길에 꼭 묻는다.
“선배님, 이런 일 매번 겪으세요?”
“저 사람은 왜 그렇게까지 말해요?”
말은 질문인데, 사실은 충격의 기록이다.
‘왜 저런 사람 앞에서까지 고개를 숙여야 하죠?’
나는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다음번에는 그 후배를 혼자 보내 본다. 그리고 돌아오면 같이 정리한다. 어떤 말은 넘기고, 어떤 선은 지켜야 하는지.
며칠 뒤 후배가 말한다.
“세상 만만한 데가 아니네요.”
“돈 번다는 게 이런 거였군요.”
몇 년이 지나면 다들 익숙해진다.
진상을 만나도 표정이 덜 흔들리고,
공무원에게는 공손하게,
의뢰인에게는 적당한 리액션을 맞출 줄 알게 된다.
겉보기엔 노련함이다. 속으로는 감정과 자존심을 버티는 근육이 붙는 과정이다.
요즘 들어오는 후배들은 확실히 똑똑하다.
일도 빨리 익히고 센스도 좋다. 다만 생각이 많고 마음이 예민하다. 거친 말 한마디가 며칠씩 마음에 남는다. 무시당한 느낌이 들면 “내가 뭘 잘못했나”부터 먼저 돌아본다.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만큼 일과 자신을 진지하게 붙들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니까.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 말은 그냥 넘겨. 일만 되면 돼.”
나도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버텼다. 하지만 요즘은 그 말만 던지기가 쉽지 않다. 이 정도까지 참고 견디라고 말해도 되는지 가끔 망설인다.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다.
법률사무원의 일은 대체로 구조상 ‘을’에 가깝다.
호출하는 쪽이 있고, 뛰는 쪽이 있다. 우리는 뛰는 쪽이다. 결과를 만들어야 하고, 일이 틀어지면 책임도 우리 쪽으로 온다. 이 사실을 모른 척하고 살 수는 없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역할은 결국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네 마음까지 거래하진 마라. 일은 내어줘도, 자존감은 내어주지 마라.”
정말 위험한 순간은 누가 욕할 때가 아니다.
내가 나를 스스로 깎아내릴 때 시작된다.
“나는 원래 이 정도지.”
“어차피 을이니까.”
그 말이 습관이 되면, 그다음은 빠르다. 사람은 일 때문에만 무너지는 게 아니다. 자존을 통째로 놓으면서 무너진다.
나도 지금도 뛰고 있다.
지금도 웃고, 지금도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더 붙드는 게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일은 내 삶의 큰 부분이지만, 나라는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신입이 있다.
이제는 중견이 된 그 친구가 야근 끝에 커피를 들고 와서 말했다.
“선배님, 요즘은 알겠어요. 욕을 먹어도 결국 일이 돌아가야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저를 버리기 시작하면… 그때가 진짜 끝이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몸으로 왔구나.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잘하고 있다. 을처럼 일해도 마음까지 을이 되면 안 된다. 밖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 있다. 그런데 네 안에서까지 고개를 숙이면 위험하다.”
세상은 늘 갑처럼 굴 것이다. 그건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내 안에서만큼은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걸 이렇게 부른다.
“을 중의 알파.”
구조는 을이지만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
참는 사람이 아니라, 참을 것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구분하는 사람.
이게 내가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