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가 나를 지켜주던 때
출근 시간의 1호선은 늘 사람들로 가득하다.
꽉 찬 칸 안에서 한 젊은 청년이 조용히 책을 펼쳐 들고 있었다.
요즘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자주 보진 못해서,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제목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책 사이에 끼워진 명함 한 장.
책갈피로 명함을 쓰는 것도 묘했는데, 상단에 찍힌 SK 로고가 보였다.
아마 그 명함은 그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 내가 한때 품고 살던 작은 허세가 떠올랐다.
느리게, 아주 자연스럽게.
2002년이었다.
나는 작은 로펌에서 지금 다니는 큰 로펌으로 옮겼다.
새 회사에서 처음 받은 명함을 손에 쥐었을 때, 그 얇은 종이가 이상하게 든든했다.
법원 민원실에 서류를 내러 갈 때마다 문건 하단의 로고가 내 등을 살짝 받쳐주는 느낌도 있었다.
명함을 주고받는 자리에서는 더 그랬다.
개인 사무소나 소형 로펌에서 온 법률사무원들과 마주치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괜히 어깨가 올라갔다.
실력과는 무관한 감정이었다. 그때의 나는 회사 이름값이 곧 내 값어치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허영에 가깝다.
그래도 완전히 부끄럽기만 한 기억은 아니다.
그 시절의 나는 아직 단단한 실력을 갖기 전이었고, 명함은 그 불안을 덮어주는 작은 갑옷 같은 역할도 했다.
명함은 원래 연락처가 적힌 종이일 뿐이다. 그런데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그 종이 한 장에 정체성과 자존감이 덧씌워지는 순간이 생긴다.
처음 한두 해는 특히 그렇다.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본 그 청년도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입사한 지 오래되지 않은 표정.
책장 사이로 살짝 보이는 로고가 그에게는 꽤 괜찮은 오늘을 만들어주고 있을지 모른다.
내릴 역이 가까워질 즈음, 잠깐 눈이 마주쳤다. 설렘과 긴장감이 함께 섞인 눈빛이었다.
그 설렘이 앞으로 그 청년의 시간을 어디로 데려갈지 잠시 상상했다.
그리고 나는 회사에 도착해 또 하루를 시작할 내 얼굴도 떠올렸다.
스물다섯 해째 출근하는 선배로서 마음속으로만 조용히 한마디를 건넸다.
오늘도 수고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