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오션 밖의 법률 일감

사건을 처리하는 시대에서 구조를 짜는 시대로

변호사 시장이 포화라는 말은 이제 놀랍지 않다.

매년 1,700명 안팎의 신규 변호사가 배출되고, 그 숫자를 두고 업계와 정부가 몇 년째 힘겨루기를 한다.


로펌들도 예전처럼 “사람만 더 뽑으면 된다”는 방식으로는 버티기 어려워졌고, 신입 연봉 경쟁과 채용 전략 변화가 동시에 나타났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결론이 너무 빨리 닫힌다. 일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익숙한 일이 과하게 몰렸다는 뜻에 더 가깝다.


보통 “포화”라고 부르는 구역은 이미 표준화된 시장이다. 사건의 형태도 예측 가능하고, 처리 방식도 비슷하다. 변호사라면 대개 도전해 볼 만한 영역이니 공급이 몰릴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실력보다 ‘가격과 속도’가 먼저 경쟁이 된다. 레드오션이라는 말이 이럴 때 어울린다.


하지만 법률 수요가 늘 그 구역에만 머무는 건 아니다.

산업이 바뀌면 리스크의 모양도 바뀐다.

이제는 사건이 터진 뒤 소송으로 정리하는 것보다, 애초에 어떤 규칙과 계약 구조를 깔아야 사고를 줄일 수 있는지 설계하는 일이 더 중요해지는 분야가 있다. 그쪽은 아직 상대적으로 덜 붐빈다. 법만 아는 사람보다, 산업의 언어를 같이 읽는 사람이 필요해서 그렇다.


이런 일을 의뢰하는 고객도 결이 다르다.

싸게 끝내는 것보다, 왜 이 구조가 필요한지 듣고 싶어 한다.

비용을 깎는 협상보다 결과의 범위를 먼저 따진다.

변호사를 ‘비용’이 아니라 ‘리스크 파트너’로 보는 태도에 가깝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피로도도 확실히 다르다.


물론 공짜 점심은 없다.

결국 공부다.

법령만 정리해선 부족하다.


산업의 흐름, 규제의 방향, 이해관계자 지도를 같이 읽어야 들어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서 법률안에 대한 공부는 전문가인 변호사라면 공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진입장벽이 생각보다 높아서, 시간을 들여 쌓은 전문성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이 포화냐 아니냐”는 질문은 절반만 맞다.

같은 시대, 같은 조건에서도 누군가는 레드오션에서 소모전을 하고, 누군가는 아직 넓은 구역을 새로 그린다. 결국 한계는 시장 바깥에 있는 것보다, 내가 어떤 문제를 어떤 깊이로 붙잡을지에서 먼저 결정된다.

이전 03화조직은 말투에서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