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돈, 관계와 계약 사이에서 본 인간의 단면

법률사무원으로 법조계에서 오래 버티다 보면, 사건보다 사람이 더 크게 보이는 순간이 많다. 서류는 숫자와 조항으로 움직이는데, 정작 판을 뒤집는 건 한 줄짜리 말, 한 번의 표정일 때가 많다.


사람을 오래 보다 보면, 극단이란 게 따로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순진한 사람은 상상 이상으로 순진하다.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데도 끝까지 믿어주려 하고, 본인이 손해를 보면서도 “에이, 설마 그러겠어요”라고 말한다.


반대로 뻔뻔한 사람은 질릴 정도로 뻔뻔하다. 잘못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남의 호의를 계산서에 올리듯 당연하게 요구한다. 집행현장에서 마주치는 얼굴들만 봐도, 그 두 부류가 얼마나 선명하게 갈리는지 실감하게 된다.


불행도 마찬가지다. 불행은 예고 없이 떨어지는 벼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에 여러 번 신호를 보낸다.


연락이 끊기고, 약속이 미뤄지고, 설명이 점점 길어지다가 어느 날 사건이 되어 책상 위에 올라온다. 전조를 못 본 게 아니라, 못 본 척하며 버틴 시간이 길었을 뿐이다. 그래서 기록을 보다 보면, “여기서 이미 한 번 멈췄어야 했는데” 싶은 지점이 반드시 한 번은 나온다.


분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예전에는 잃을 게 없는 사람이라고 답했을 것 같다. 그런데 오랫동안 여러 케이스의 사건을 보니, 더 무서운 부류가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정말 많은 시간과 돈을 가진 사람이다. 감정이 식어도, 이 사람들은 싸움을 끝낼 이유가 없다. 지겨워지면 그 지겨움까지도 비용 처리하고 계속 밀어붙인다. 상대는 지치고 포기하는데, 이쪽은 시간과 돈으로 지루함을 견딘다. 그런 싸움은 법리보다 체력과 재력이 먼저 바닥나는 쪽이 진다.


분쟁 중에서도 특히 오래가고 더럽게 꼬이는 건, 애매하게 끝난 이성 간 관계에서 나오는 경우를 많이 봤다. 사랑, 자존심, 생활비, 육아, 가족이 한데 섞여 들어오면, 쟁점은 하나인데 감정의 잔향은 열 개 스무 개가 된다.


동성 친구 사이의 싸움은 의외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편이다. 이성 간 분쟁은 사소한 말 한마디, 카톡 한 줄이 증거가 되어 서류 속에 눌어붙어 버린다. 함께 보냈던 시간만큼, 싸움도 지저분하게 길어지기 쉽다.


돈을 받지 않는 자리라고 해서 편한 것도 아니다. 공짜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일수록 요구사항이 많고, 불만도 많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이 쉽게 나온다.


이상하게도 그런 경우일수록 기본적인 매너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무료 상담, 지인 부탁, ‘커피 한 잔 살게요’로 시작한 자리에서 가장 지치는 경우가 많다. 공짜는 싸서 위험한 게 아니라, 상대방의 기대치를 묘하게 뒤틀어 놓아서 위험하다.


겉모습도 믿을 게 못 된다. SNS에서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 인플루언서라는 이름을 단 사람들 가운데 실제로는 변호사 비용 한 번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를 여러 번 봤다.


피드에는 브랜드 가방, 고급 식당, 여행 사진이 가득한데, 정작 통장 잔고와 카드값은 버티지 못해 사건이 된다. 팔로워 수와 실제 소득, 그리고 소송을 끝까지 끌고 갈 여력은 전혀 다른 문제다. 기록을 보다 보면, 타임라인과 잔고 사이의 간극이 어느 순간 사건명으로 바뀌어 있다.


계약서가 오가는 자리에서는 관계가 더 크게 시험대에 오른다. 좋고 애매한 관계일수록, 계약이 틀어지면 나쁘고 확실하게 끝난다.


“우리는 서로 잘 아니까, 적당히 믿고 가자”는 말로 시작한 계약은 대부분 나중에 “그때 왜 제대로 안 써놨지?”라는 후회로 마무리된다. 서류는 냉정한데 사람만 서로를 좋게 보려고 하는 순간, 그 틈새로 오해와 기대가 스며든다. 그리고 문제가 터지면, 그 애매함부터 먼저 터져 나온다.


그래서 호의를 쓴다는 건 생각보다 큰 결심이다. 호의가 호의로 돌아오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언제까지 해줄 수 있냐”는 추가 요구로 돌아오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겠다고 마음먹는 건,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뜻과 비슷하다. 그래서 호의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한 번 도와줬다가 상처받고 나면, 다음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데 두 배의 결심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선택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해서 가난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를 많이 봤다.


당장 이번 달 카드값을 막아야 해서, 장기적으로 유리한 선택을 알면서도 외면한다. 오늘을 버티기 위해 내일을 담보로 잡히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계약 하나, 대출 하나, 합의 한 번이 모두 ‘당장의 구멍을 막는 선택’으로 흐른다. 가난 그 자체보다, 그렇게밖에 고를 수 없게 만드는 환경이 사람을 더 옥죈다.


법률사무원으로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넘기다 보면, 결국 사람마다 반복해서 고르는 패턴이 보인다.


어떤 사람은 호의를 쓰면서도 끝까지 자기 경계를 지키고, 어떤 사람은 한 번의 선택으로 오랫동안 자신을 묶어둔다.


이 글에 적어둔 것들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기록을 넘기고 사람을 마주 보면서 손에 남은 찌꺼기 같은 메모들이다. 언젠가 같은 자리에 앉게 될 후배들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얼굴들은 미리 알고 들어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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