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팀장이 팀을 망치는 가장 우아한 방법

보리수 리더십

법률사무 현장에서 25년을 버티며 수많은 선후배들을 만났다. ‘일잘러’라 불리던 에이스들은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업무를 쳐냈고, 복잡한 신청·집행 사건도 척척 해결했다.


사건명만 보면 다음 절차가 보이고, 그에 따른 준비해야 할 서면 체크도 먼저 움직였다. 그런데 그들이 ‘팀장’이라는 명함을 다는 순간, 이상하게도 조직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팀장은 여전히 퇴근을 미루고 한숨을 쉰다. 대신 팀원들은 하나둘 조용한 퇴사를 준비한다. 실무의 모범이 리더십의 모범으로 자동 변환되지는 않는다.



​​인도 속담에 “보리수나무 아래에는 다른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울창한 가지가 햇빛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실무를 잘하는 팀장이 업무를 움켜쥐고 “내가 하면 1시간이면 끝날 일”이라며 직접 처리하기 시작하면, 팀원은 그 그늘 아래서 점점 말라간다.


사건이 들어오면 팀장이 먼저 내가 한다고 하고 타 부서와 협업을 시작한다. 변호사에게 필요한 리서치를 해서 메일을 보낸다. 그러면 당장은 빨리 끝난다. 다만 팀이 빨라지는 게 아니라, 팀장만 빨라진다.


팀원 입장에서는 자기가 한 일의 ‘끝’을 경험할 기회가 사라진다. 초안을 잡아도 마지막 다듬기는 팀장이 하고, 변호사 보고 메일의 회신 버튼도 팀장이 누른다.


팀원은 제출 이후의 피드백 루프를 못 탄다. 결국 다음번에도 똑같이 막힌다. 팀장은 “왜 아직도 이걸 몰라?”가 되고, 팀원은 “어차피 팀장이 할 건데”가 된다. 서로 말은 아끼지만 마음은 멀어진다.


​리더십은 성격이 좋고 정이 많은지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 시간 관리와 위임의 기술 문제다.


실무형 리더가 자주 놓치는 장면이 있다. 금요일 오후 퇴근 직전에 “금방 끝날 거야”라며 업무를 던지는 순간이다. 팀장에게는 ‘마무리 한 번만’인데, 팀원에게는 저녁 약속이 깨지는 게 아니라 생활이 깨진다. 게다가 법률사무 업무는 “금방”이 거의 없다. 변수들이 늘 중간에 끼어든다. 팀장은 경험으로 그 변수를 계산하지만, 팀원은 경험이 없어서 그대로 시간을 잃는다. 그 시간 손실이 반복되면, 사람은 일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조직을’ 싫어하게 된다.



문제는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구조다. 팀장은 자신의 시간을 먼저 잠가야 한다. 타임 블로킹으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확보하고, 그 시간에는 실무를 치우지 말고 관리의 설계를 해야 한다.


예컨대 오전에는 “급한 제출·기일 중심”, 오후에는 “검토·피드백”, 하루 중 한 구간은 “동굴 시간”으로 고정한다. 동굴 시간에는 ‘내가 처리할 일’이 아니라 ‘팀이 처리하는 방식’을 생각한다.


어떤 사건군은 누구에게, 어느 단계까지 맡길지 기준을 세운다. 초안-검토-최종 제출 확인단계로 나누고, 최종 제출 확인단계는 당분간 팀장이 하더라도 그전 단계까지는 팀원이 책임지고 완주하게 만든다.


​업무를 줄 때도 한꺼번에 던지지 않는다. “이거 처리해”가 아니라 “오늘은 첨부서류 정리와 첨부 목록 만들기”, “내일 오전까지 신청서 초안”, “내일 오후에 보정 대비 쟁점 체크”처럼 단계별로 쪼개어 가시적인 목표를 준다.


중간 점검은 ‘감시’가 아니라 ‘막힌 지점 제거’로 한다. 팀원이 전화가 필요한 순간이면 팀장이 전화를 대신해 주는 게 아니라, 통화 스크립트를 같이 만들고 옆에서 첫 통화를 붙어준다. 타 팀 협업이 필요한 순간이면 팀장이 직접 문의하는 대신, 팀원이 문의하도록 하되 어떤 정보를 확인해야 하는지 체크리스트를 준다. 경험은 이렇게 이식된다.


팀장이 펜을 내려놓고 구조를 그리기 시작할 때, 비로소 팀원은 한 걸음을 더 내딛는다. 그 ‘엑스트라 마일’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결과다.


팀장이 모든 빛을 독점하지 않을 때, 팀은 각자 자기 몫의 빛을 받아 자란다. 그리고 그때부터 팀장의 야근은 ‘내가 끝내야 해서’가 아니라 ‘팀이 자라서 생기는 성장통’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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