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은 사라지고 책임만 남은 시대, 우리는 왜 팀장이 되기를 두려워하는가
전희철 감독의 호통 섞인 작전 타임 영상을 봤다. 코트 위에서 터져 나온 "감독이 수비하라고 말도 못 하냐"는 절규. 그건 단순히 경기력에 대한 질책이 아니었다. 입을 꾹 닫고 시선을 피하는 선수들, 그 두꺼운 침묵의 벽 앞에서 리더가 느끼는 처절한 고립감이 모니터를 뚫고 전해졌다.
댓글창은 이미 전쟁터다. 농구 이야기가 아니라 죄다 자기네 회사 이야기란다. 사실 우리도 알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오피스에서 '팀장'이라는 직책은 조직의 허리가 아니라, 위아래로 두들겨 맞는 동네북이 된 지 오래라는 걸.
지시는 간섭이라며 질색하고, 자유는 권리라며 챙긴다. 그런데 정작 책임질 순간이 오면 약속이라도 한 듯 팀장의 등 뒤로 숨는다. 이게 지금 우리가 마주한 리얼한 오피스 풍경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요즘 직장에서 팀장 제안을 받으면 '승진'이라고 기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들 속으로 가성비를 따진다. 쥐꼬리만 한 직책 수당에 비해 짊어져야 할 짐은 태산이다.
윗선에서는 수치와 성과와 관리로 쪼아대고, 아래에서는 'MZ 세대'라는 방패 뒤에 숨어 조금만 쓴소리를 해도 꼰대 취급이다. 말 한마디 꺼내기가 무섭게 굳어지는 팀원들의 표정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리더는 입을 닫게 된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침묵을 선택하는 순간, 조직의 수비 라인은 무너진다. 감독이 수비하라고 말도 못 하는 팀이 이길 리 만무하듯, 팀장이 피드백을 포기한 팀의 결말도 뻔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수평적 조직 문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이 '책임 회피의 면죄부'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수평은 관계의 높낮이를 없애는 것이지, 각자의 역할을 지우는 게 아니다. 권한은 누리고 싶지만 그에 따르는 리스크는 지기 싫어하는 이기심이 '팀장 독박 책임제'를 만들었다.
간섭은 싫지만 요구는 하고 싶고, 책임은 지기 싫지만 보상은 받고 싶은 마음. 그 이중성이 리더를 고사시키고 있다. 이제 팀장은 조직의 윤활유가 아니라, 모두가 책임을 던져놓는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래서 영리한 이들은 직책을 거부한다. 책임지기 싫은 사회가 만든 슬픈 자화상이다.
결국 리더십의 위기는 팔로워십의 위기와 맞닿아 있다. 팀장이 동네북이 되는 조직에서 팀원이 안전할 리 없다. 팀장의 권위가 무너진 자리를 채우는 건 자유가 아니라 혼돈이다.
누군가에게 결정을 요구했다면, 그 결정이 가져올 후폭풍도 함께 감당해 주는 게 성숙한 동료다. 비겁하게 뒤에 숨어 리더의 실수를 비웃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무너지는 수비 라인을 위해 함께 몸을 던지는 건 아무나 못 한다.
전 감독의 외침을 단순히 꼰대의 발악으로 치부하기엔, 우리 조직의 수비 구멍이 너무 크다. 당신은 지금 팀장의 등 뒤에 숨어있는가, 아니면 함께 코트를 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