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전희철 감독의 호통 영상에 달린 한 댓글이 계속 잔상에 남는다. "결국 감독이 무능해서 선수들이 저러는 거 아니냐"는 일침. 사실 가장 아프고도 명쾌한 지적이다. 나도 변화는 싫어하면서 대접만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전희철 감독이 누군가. 감독 데뷔와 동시에 팀을 통합 우승으로 이끌고, 국제 대회인 EASL 정점까지 찍은 인물이다. 농구판에서 이보다 더 화려한 '유능함'의 증거가 있을까. 성적으로 모든 것을 증명한 승장,
그가 코트 위에서 핏대를 세우며 던진 질문은 그래서 더 뼈아프다. "감독이 수비하라고 말도 못 하냐?" 이 말은 실력이 없어서 무시당하는 자의 비명이 아니다. 리더로서 마땅히 해야 할 피드백조차 '간섭'이나 '공격'으로 치부해 버리는, 병든 소통 구조를 향한 최후의 통첩에 가깝다.
리더가 정말 무능해서 조직이 삐걱거리는 걸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전희철 같은 유능한 리더조차 무능하게 만들어버리는 기묘한 환경 속에 살고 있는 걸까.
상사를 무능하다고 규정하는 순간, 우리에겐 아주 달콤한 보상이 주어진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윗사람을 잘못 만나서 안 풀리는 것'이라는 완벽한 알리바이다. 이 피해자 서사는 강력하다. 내가 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상사에게 몽땅 얹어버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전 감독의 절규를 다시 보자. 수비 구멍을 보고도 한마디 못 하게 만드는 그 차가운 침묵. 그건 리더의 자질 이전에 조직이 기능 정지에 빠졌다는 신호다. 리더가 무슨 말을 해도 '꼰대의 잔소리'로 치부하며 입을 닫아버리는 팀원들 사이에서, 어떤 유능한 리더가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요즘은 리더에게 '성인군자'의 인격과 '어벤저스'의 능력을 동시에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리더가 휘두를 수 있는 칼은 하나씩 뺏어버렸다. 피드백은 '가스라이팅'이 되고, 성과 압박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압박당하기 일쑤다.
이런 살얼음판 위에서 리더가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뿐이다. 욕먹을 각오로 총대를 메다가 미친놈 소리를 듣거나, 아니면 그냥 허수아비가 되어 흐릿해지는 것. 후자를 선택한 리더를 우리는 '무능하다'라고 부른다. 과연 그 리더만 무능한 걸까, 아니면 그를 허수아비로 만든 조직 전체가 무능한 걸까.
팀장이 무능해 보인다면, 그가 내리는 결정에 당신은 얼마나 무게를 실어주었는지 묻고 싶다. 리더십은 리더 혼자 추는 원맨쇼가 아니다. 상대가 스텝을 맞춰주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댄서도 무대 위에서 넘어진다. 비판은 쉽다. 하지만 무너지는 수비 라인을 위해 함께 몸을 던지는 건 어렵다. "수비하라 말도 못 하냐"는 말에 담긴 진짜 비극은, 우리가 서로를 '동료'가 아닌 '감시자'와 '평가자'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리더의 무능을 안주 삼아 낄낄거리는 동안 당신의 커리어도 함께 고여가고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유능한 리더를 원한다면, 최소한 그가 리더로서 작동할 수 있는 '틈'은 만들어줘야 한다. 그게 우리가 이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