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을 지워버린 미국의 작전, 그리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영악한 생존의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면 명분 따위는 문제도 아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보여주었듯, 침공의 논리는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발명되고 가공된다. 총구가 향할 곳이 정해지면 그럴싸한 서사는 언제나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정작 등골 서늘하게 지켜봐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현직 정상을 무력으로 확보한 작전을 두고, ‘규범’의 언어가 아니라 자위권(유엔 헌장 51조)·안보·범죄(마약) 프레임으로 정당화를 전개했다. 유엔 인권기구는 이 조치가 국제법의 핵심 원칙(국가의 영토 보전·정치적 독립에 대한 무력 사용 금지)을 흔들며 “더 위험한 세계”를 만든다고 비판했고, 유엔 사무총장 측도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것은 단순히 수사가 빠진 문제가 아니다. 국제질서의 마지막 보이지 않는 벽이었던 ‘레드라인’이, 논쟁의 장에서 ‘규범’이 아니라 ‘예외’로 밀려나는 순간이다.
미국은 여전히 중국의 야욕을 비판하고 반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동력이 ‘규범’이 아니라 오직 ‘현실주의적 고려’로만 포장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규범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도덕적 변수 대신 정교한 산수만 남으면, 중·러의 계산기는 훨씬 가벼워진다. 거래로도 판을 흔들 수 있다는 확신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위태로운 흐름을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의 윌리엄 양(William Yang)은 2026년 1월 4일, 이렇게 진단했다.
“It’s really creating a lot of openings and cheap ammunition for the Chinese to push back against the U.S. in the future.” - “이는 중국이 향후 미국에 반격할 수 있는 ‘틈’과 ‘값싼 탄약’을 대거 만들어주는 셈이다.”
핵심은 ‘명분’이 아니라 명분을 만드는 비용이다. 대만 문제에서 시진핑의 계산은 결국 중국 내부 변수(국내 정치, 체제 안정, 군사 역량)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러나 그 내부 변수를 대외적으로 정당화하는 ‘서사 제작 단가’가 내려가는 순간, 위험은 더 쉽게 현실이 된다.
이 거대한 판의 변화는 한국에게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대만해협에서 분쟁이 터지는 순간, 한국 경제는 ‘동맥경화’에 직면한다. 대만해협은 세계 제조·물류의 병목이고, 영국 의회 토론 기록에는 “전 세계 컨테이너 선단의 절반이 매년 그 해협을 통과한다”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CSIS는 2022년 기준 한국의 수입 30%, 수출 23%가 대만해협을 통과한 것으로 추정한다. 길목이 막히면 공급망·에너지·해상운임이 동시에 흔들리고, ‘우회 비용’이 곧 국가의 체력 시험이 된다.
안보 역시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 아래 방위 공백을 피하기 어렵다.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질 때 한반도가 자동으로 최우선순위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 외교의 언어가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실제로 호서대 전가림 교수는 최근 한국이 중국 CCTV 인터뷰와 정상회담 과정에서 “‘하나의 중국’을 존중한다”는 표현을 사용해 용어가 비교적 모호해졌지만, “‘원칙을 수용한다’까지는 나가지 않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는 취지로 분석했다. 규범이 약해질수록, 중견국의 문장은 더 계산적으로 변한다. 이것은 도덕성의 후퇴가 아니라 생존 본능의 발화다.
우리는 ‘착한 나라’로 남을 것인가, ‘살아남는 나라’가 될 것인가.
규범이 사라진 정글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중견국 외교 자강론’의 핵심은 명확하다.
첫째, 기술 주권을 외교력으로 바꿔야 한다. 반도체와 AI를 단순한 산업 자산으로 두지 말고, 강대국들이 한국을 ‘버리는 선택’을 할 때 치러야 할 비용을 구조적으로 키워야 한다. 한국이 무너지면 상대의 시스템도 흔들린다는 사실을, 공급망·표준·인재·특허·장비 생태계로 각인시키는 일이다. 억지력은 선의가 아니라 비용에서 나온다.
둘째, 중견국 네트워크를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 미·중 사이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호주, 캐나다, ASEAN 등 이해가 교차하는 국가들과 공급망·핵심광물·표준·사이버 방위의 연동망을 강화해야 한다. 강대국이 판을 흔들 때, 중간지대가 함께 흔들리지 않도록 완충층을 만드는 작업이다. 연대는 선언이 아니라 상호의존의 설계로만 작동한다.
셋째, 외교의 언어를 ‘가치’에서 ‘실리’로 재정렬해야 한다. 가치가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가치만으로 상대의 결정을 바꾸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 어떤 비용을 치르게 만들지, 어떤 대안을 줄 수 있는지. 협상 테이블을 움직이는 언어를 한국도 구사해야 한다.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416년, 멜로스 대화에서 강대국의 언어가 어디까지 냉혹해질 수 있는지를 기록했다.
“The strong do what they can and the weak suffer what they must.”
-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감당해야 할 일을 감당한다.”
오늘의 세계가 ‘정의의 문장’보다 ‘손익계산서의 숫자’로 먼저 움직인다는 사실을 잔인하게 상기시킨다. 어제의 레드라인이 오늘의 협상 카드가 된 시대, 한국은 우방의 선의를 기대하는 나라가 아니라 우방의 계산에서 결코 제외될 수 없는 비용으로 남아야 한다.
정의를 묻지 않는 시대를 대비해, 가장 영악한 생존의 산식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