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의 선의는 상대를 움직이지 못했나

대의명분보다 강력한 '이익'의 지렛대

현실을 직시하자.

투자자든, 동료든, 고객이든 당신의 꿈에 무조건적인 박수를 보내는 사람은 없다.

다들 자기 주머니 사정과 내일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바쁘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착각에 빠진다.

내가 이렇게 절박하니까, 우리 대의가 이렇게 훌륭하니까 누군가 선뜻 손을 내밀어 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건 전략적 태만이 낳은 희망 고문일 뿐이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가.

그렇다면 고결한 감정을 들먹이는 대신 그의 금고를 어떻게 채워줄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돈일 수도 있고, 정보일 수도 있으며, 혹은 그가 갈망하는 행복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상대가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익'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익은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정직한 지렛대다.


상대의 목표 달성에 당신이 기여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순간, 그는 당신의 요청을 뿌리칠 명분을 잃는다.

이 냉혹한 진실은 수백 년 전부터 인류의 역사를 관통해 왔다.


"It is not from the benevolence of the butcher, the brewer, or the baker, that we expect our dinner, but from their regard to their own interest. We address ourselves, not to their humanity but to their self-love, and never talk to them of our own necessities but of their advantages."
— Adam Smith, The Wealth of Nations(1776), Book 1, Chapter 2.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욕구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애가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 아담 스미스, 《국부론》, 제1권 제2장.


선의는 휘발되지만 이익은 남는다.

상대를 당신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싶다면, 당신을 돕는 행위가 결국 상대 자신을 돕는 길이 되도록 설계하라.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고도 가장 매력적인 설득의 문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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