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의 다른 이름, '남들보다 조금 덜 지치는 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러 가는구나!"라며 가슴 벅차게 일어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기 일을 운명이라 말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사실 자기 최면 중이거나, 운 좋게 '축적'의 시간을 이미 통과한 사람들이다.
좋아하는 게 뭔지 몰라 방황하는 건 부족해서가 아니다.
'발견'해야 한다는 강박이 만든 허상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아직 발견하지 못한 보물'이 있다고 믿지만, 사실 일의 본질은 보물 찾기가 아니라 성벽 쌓기에 가깝다.
열정은 번개처럼 치는 게 아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꼴에 가깝다.
"남들보다 조금 덜 싫은가?"
"남들은 나가떨어지는데 나는 조금 더 버틸 만한가?"
이 미지근한 감정이 재능의 시작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Aristotle, Nicomachean Ethics, II.1, 1103a 31–33 (trans. W. D. Ross).)>에서 이렇게 말했다.
"For the things we have to learn before we can do them, we learn by doing them."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배워야 한다면, 실제로 그 일을 함으로써 배운다."
그의 통찰을 빌리자면, 정의로운 일을 반복해야 정의로운 사람이 되듯, 일을 계속해봐야 비로소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될 수 있다.
탁월함은 갑작스러운 영감이 아니라 반복된 습관에서 태어난다.
현대 커리어 이론가 칼 뉴포트(Cal Newport) 역시 <열정의 배신(So Good They Can't Ignore You)>에서
“열정을 따르기보다 원하는 일에 열정이 따라오도록 만들어야 한다”라고 단언했다.
심장이 뛰는 일을 기다리지 마라. 대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떻게든 끝매듭은 짓게 되는 일'을 찾아라. 그 사소한 '해냄'의 기억이 층층이 쌓여 어느 날 문득 "나 이거 좀 좋아하나 봐"라는 고백으로 터져 나온다.
그러니 아직 오지도 않은 운명적인 일을 찾느라 오늘을 낭비하지 마라.
속도는 상관없다.
옆 사람과 비교할 이유도 없다.
집중해야 할 건 오직 하나, 오늘 잠들기 전 "그래도 오늘은 후회가 좀 덜하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다.
좋아하는 일은 멀리 있는 목표점이 아니라, 오늘 버텨내고 쌓아 올린 시간의 합계다.
그 축적의 힘을 믿어라.
내가 모르는 사이, 나의 업(業)은 이미 내 안에서 단단해지고 있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찍은 그 작은 마침표들이 모여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