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를 위한 변(辯)-리더라는 유배지

‘일이 되게 만드는 자’의 숙명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리더 포비아(Leader Phobia)’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리더가 된다는 것, 그게 예전처럼 명예롭거나 보람찬 일만은 아니라는 증거다.

고작 월급 몇십만 원 더 받자고 위아래로 치이고,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자처하며, 내 실무 감각은 무뎌져 가는 걸 지켜보는 이 자리가 정말 매력적인가?


누군가는 리더가 지시만 하니 편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만 본 것이다.

엔비디아(NVIDIA)의 CEO 젠슨 황(Jensen Huang)은 2024년 스탠퍼드 강연에서 리더의 고통스러운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Leadership is not about power. It’s about creating the conditions under which other people can do their life’s work." _ "리더십은 권력에 관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 역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 젠슨 황(Jensen Huang), 2024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대담 중


리더가 매일 겪는 그 '환경 조성'이라는 말 안에는, 사실 구질구질한 감정 노동과 아쉬운 소리, 그리고 모든 책임을 짊어지는 고독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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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역량'과 '일이 되게 하는 역량'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연차가 쌓이고 리더의 자리에 가까워질수록 후자의 무게는 압도적으로 커진다.

기획부터 기술, 인프라, 인력... 이 모든 걸 리더 혼자 다 할 수는 없다.


리더의 진짜 실력은 '남의 역량을 빌려오는 힘'에서 나온다.

현대 경영학의 석학 사이먼 시넥(Simon Sinek)은 최근까지도 리더의 바뀐 역할을 이렇게 강조했다.


"Leadership is not being in charge. It is about taking care of those in our charge."

_"리더십은 지휘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지휘를 받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다." — 사이먼 시넥(Simon Sinek), 2023-2024 리더십 컨퍼런스 중


조직이 리더에게 바라는 건 바로 그 지점이다.

아무리 잘나도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한다.

리더는 차라리 일은 좀 못해도 된다. 대신 사람을 움직이고 조직을 가동해 '일이 되는 상태'를 만드는 하모니를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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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지시만 하니 편해 보이나? 말 안 듣는 직원들 눈치 살펴야 하고, 유관 부서에는 아쉬운 소리 하러 다니며 굽신거려야 한다. 위에서 까이고 아래에서 치이는 샌드위치 신세는 기본이다. 더 무서운 건 '낙동강 오리알'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이다. 관리만 하느라 실무 전문성은 점점 뒤처지는데, 만약 지금 이 회사를 나가면 나는 무엇으로 내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차라리 월급 좀 덜 받고 속 편한 실무자로 돌아가 내 기술만 닦으며 살고 싶어진다.


가끔 직원들의 불평불만을 들을 때면 마음이 복잡해기도 한다. 최대한 웃으며 들어주려 노력한다. 정당한 건의라면 깨끗이 인정하고 함께 답을 찾자고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든다.


"이런 것까지 내가 다 챙겨야 하나? 회사가 애들 놀이터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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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 빠지는 건 배신감이다. 제대로 숨기지도 못할 험담이 건너 건너 내 귀에 들어올 때, 그 아마추어 같은 모습에 헛웃음이 난다. 이젠 그러려니 한다. '믿지만 믿지 않는' 묘한 거리감을 두는 법을 배웠으니까.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수많은 상황을 마주하며, 턱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킨다.


"바꾸자. 내가 당신 일 할 테니, 당신이 내 역할 한번 해봐."


이건 단순히 화가 나서 하는 말이 아니다. 리더라는 자리가 누리는 권위 뒤에 얼마나 많은 비겁함과 치사함, 그리고 막막한 책임감이 숨어 있는지 딱 하루만이라도 경험해 보길 바라는 마음인 거다. 오늘도 리더들은 고민한다. 월급을 두 배로 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 짐을 지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내일의 '일이 되게 만들기 위해' 출근을 한다. 그것이 리더라는 유배지를 견뎌내는 전문성이자 고독한 긍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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