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리더는 기꺼이 악역이 되어야 하는가
드라마 <뉴스룸>의 앵커 윌 맥어보이는 결코 친절한 진행자가 아니다.
그는 토론 중 사실관계가 어긋난 주장을 하거나, 무례하게 선을 넘는 패널이 등장하면 가차 없이 그 흐름을 끊어버린다. 누군가는 그의 서늘한 태도에 인상을 찌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묘하게도 대중은 그 냉정함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그것은 무례함이 아니라, 진실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사회자의 처절한 '필터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자율'이 조직의 최우선 가치라고 믿는다.
하지만 현장은 생각보다 냉혹하다.
리더가 조율의 키를 놓아버린 공간은 민주적인 광장이 아니라, 가장 목소리 크고 기세등등한 자가 지배하는 정글이 된다. 사회자가 침묵하는 사이, 약한 자의 의견은 거세당하고 논리는 감정에 먹힌다.
한 패널이 다른 패널의 통제 아래 놓이는 이 비극적인 불균형은, 역설적이게도 '자율'이라는 이름의 방임이 만든 결과다.
피터 드러커는 리더십의 본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Leadership is not magnetic personality—that can just as well be a glib tongue. It is not 'making friends and influencing people'—that is flattery. Leadership is lifting a person's vision to higher sights, the raising of a person's performance to a higher standard.”
"리더십은 매력적인 성격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말재주에 불과할 수 있다. '친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아부에 가깝다. 진정한 리더십은 개인의 시야를 더 높은 곳으로 들어 올리고, 개인의 성과를 더 높은 기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리더십은 인기를 얻는 기술이 아니라 '기준(Standard)'을 세우는 일이다.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이견을 중재하고 공정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 선을 넘는 이들에게 단호히 경고를 보내는 것은 리더가 수행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하지만 많은 리더가 '자율성 존중'이라는 달콤한 핑계 뒤에 숨어 갈등을 방치하곤 한다. 그것은 존중이 아니라 비겁한 회피이며, 명백한 직무 유기다.
리더가 본연의 역할을 포기할 때, 그 공백은 반드시 '가짜 리더'들에 의해 채워진다.
리더가 기꺼이 악역이 되어 질서를 잡지 않는다면, 조직원들은 무질서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에 노출될 뿐이다.
윈스턴 처칠이 남긴 짧은 문장은 리더가 짊어져야 할 이 고독한 무게를 잘 설명해 준다.
“The price of greatness is responsibility.”
"위대함의 대가는 바로 책임감이다."
조율되지 않는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억압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리더라는 자리는 그 무게를 견디며 기꺼이 가이드라인이 되어주는 사람의 것이다.
당신이 지키려는 자율이 혹시 누군가를 정글 속에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