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메이저 회계법인 가운데 삼일은 PwC, 삼정은 KPMG, 안진은 Deloitte, 한영은 Ernst & Young와 각각 멤버펌 관계를 맺고 있다. 이른바 빅 4 체제는 매우 견고하다.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동일한 이름표 아래, 표준화된 숫자의 언어로 전 세계를 오가는 회계법인의 궤적과 달리 로펌의 길은 같지 않을 것이다. 로펌은 회계법인의 모델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기술이라는 날개를 달고 전혀 다른 방식의 글로벌화를 선택하고 있다.
회계가 전 세계가 합의한 ‘표준화된 숫자’를 다룬다면, 법은 국가의 주권과 맞닿아 있는 ‘로컬의 언어’를 다룬다.
뉴욕의 재무제표는 서울에서도 읽히지만, 한국의 대법원 판례는 태평양을 건너는 순간 참고 자료 이상의 효력을 갖기 어렵다. 로펌의 진짜 경쟁력은 글로벌 브랜드의 명성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사법부와 수사기관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느냐에 있다. 게다가 수익 배분과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 문제는 거대 글로벌 네트워크 편입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다. 특정 네트워크에 속하는 순간, 해외 사무소의 의뢰인과 얽힌 수많은 잠재적 고객들을 포기해야 하는 역설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빌러블 아워’라는 족쇄 역시 변화의 중심에 있다. 지금까지 변호사의 수익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입했는지에 의해 결정돼 왔다. 그러나 숙련된 변호사가 리걸테크를 활용해 10시간 걸릴 일을 1시간 만에 끝낼수록 오히려 수익이 줄어드는 이 모순적인 구조는 이제 분명한 한계에 이르렀다. 법원행정처가 법원도서관의 하급심 판례를 포함한 모든 판결을 공개하는 순간 리걸테크의 성장은 폭발적일 것이다.
2026년 현재, 생성형 AI를 활용한 국가 간 법률 리서치는 과거 주니어 변호사 수십 명이 매달려야 했던 작업을 단 몇 분 만에 끝낸다. 기술이 ‘정보의 민주화’를 가져오면서, 이제 로펌은 글로벌 네트워크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전 세계의 법률 데이터를 손 안에서 다룰 수 있는 환경에 들어섰다. 변호사들은 이러한 데이터가 인공지능이 내놓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인지 검증하는 절차만 거치면 된다.
한국의 대형 로펌들은 누군가의 ‘지사’가 되기보다 스스로 ‘플랫폼’이 되는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은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A 로펌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굵직한 아웃바운드 딜을 연이어 성사시키고, B 로펌이 대규모 M&A와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진출 자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글로벌 브랜드의 하부 조직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로펌 특유의 유연함과 정교한 리스크 관리 역량을 바탕으로, 각국의 로컬 로펌들과 ‘베스트 프렌드(Best Friend)’ 관계를 맺고 필요할 때만 협력하는 전략적 선택이 경쟁력이 되었다. C 로펌이 핀테크나 가상자산 등 최첨단 분야에서 글로벌 기준을 선도하는 자문을 제공하는 사례 역시, 로컬 전문성이 어떻게 글로벌 경쟁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리걸테크는 변호사들을 반복적인 노동에서 해방시키며, 그들을 다시 진짜 ‘전략가’의 자리로 돌려놓고 있다. 이미 리걸테크를 적극 도입한 변호사들은 단순한 작업을 기계에 맡기고, 확보된 시간으로 의뢰인과 더 깊이 소통하며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익 구조 역시 시간을 파는 방식에서 벗어나, 전략이 만들어낸 ‘가치’와 ‘성과’를 기준으로 보상받는 체계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로펌은 누군가의 ‘멤버’가 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기술이라는 레버리지를 손에 쥐고, 국가별 장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독립적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 AI가 시간을 압축해준 덕분에, 이제 보상의 기준은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가 아니라 ‘의뢰인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단순한 노동은 기계에 맡기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날카로운 직관과 공감에 집중해야 한다. 글로벌 간판이 주는 가짜 안정감에 기대지 않고, 기술과 로컬 전문성을 결합한 ‘단단한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것, 그것이 2026년 법률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이자 시장을 주도하는 해답이라고 본다. 째깍거리는 시계와의 싸움은 끝났다. 이제는 ‘가치의 무게’로 증명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