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불(舍利弗)은 석가모니의 십대 제자 중 한 명으로, 왕사성 북쪽 마을의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다.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불렸지만, 그가 천재여서가 아니었다.
그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다른 제자들보다 많이, 더 깊이. 질문은 그의 수행이었다.
증일아함경 제자품에는 그의 지혜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지혜가 무궁하여 모든 의혹을 푸는 이는 바로 사리불 비구다(智慧無窮 決斷疑網 謂舍利弗比丘)"
그의 지혜는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이 아니었다.
부처님의 인가를 받고 여러 비구들에게 직접 설법할 정도였으니, 이해한 것을 전달하는 능력까지 갖춘 드문 경우였다. 하루에도 여러 번 자신의 마음을 다시 세웠다는 기록이 법화경에 남아 있다.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고 부처의 경지에 이르도록 돕겠다는 서원. 한 번의 각오가 아니라, 반복되는 실천이었다.
사리불은 팔정도를 통해 열반에 이르는 길을 설명했다.
이는 석가모니의 최초 설법 내용인 사성제 중 도성제의 구체적 내용이기도 하다.
팔정도는 정견(바른 견해), 정사유(바른 사유), 정어(바른말), 정업(바른 행위), 정명(바른생활), 정정진(바른 노력), 정념(바른 마음 챙김), 정정(바른 선정)의 여덟 가지로 구성된다.
이 여덟 가지는 별개가 아니다.
하나의 성도를 이루는 각 부분이며,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어느 하나가 실천되면 다른 일곱 개가 그 하나에 포함되어 동시에 행해지는, 서로 포섭하는 관계다.
추상적인 깨달음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었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 - 삼독심에서 벗어나는 길은 멀리 있지 않았다.
다만 매일 조금씩, 올바른 쪽으로 방향을 틀면 됐다. 이것이 사리불이 평생 강조한 수행의 핵심이었다.
그의 설법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상대의 수준에 맞췄다는 것.
잡아함경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글귀의 뜻은 만족하고 말솜씨는 간결하여 알기도 쉽고 듣기도 즐거우며, 걸리지도 않고 끊이지도 않아, 깊은 이치를 밝게 나타내었다(言辭滿足 簡要易解 聽所樂聞 不滯不息 顯深奧義)"
이를 대기설법(對機說法) 또는 수기설법(隨機說法)이라 한다.
병에 따라 약을 주듯이, 가르침을 듣는 자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그에 알맞은 가르침을 설하는 것이다. 같은 진리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풀어냈다.
부처님의 교설이 어떤 면에서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생의 성향과 이해력에 따라 그때그때 적절한 내용으로 해설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방편(方便)'이라고 한다. 배려의 다른 이름이다.
아는 사람에게는 깊게, 모르는 사람에게는 쉽게.
농촌에 가면 농촌의 환경에 맞게, 어촌에 가면 어촌에 맞게.
어리석은 사람들이 모인 곳과 지혜로운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거기에 맞는 시대와 풍습, 환경과 듣는 자의 성격에 따라 법을 설했다. 사리불은 이 방편의 달인이었다.
법구경에는 사리불의 인욕행에 대한 부처님의 게송이 기록되어 있다.
"아라한의 인욕은 대지와 같아 성내어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는다"
실제로 어느 젊은이가 사리불의 등을 힘껏 때렸을 때, 사리불은 "이게 뭔가?" 하면서 혼잣말을 하고는 다시 걸어가 버렸다고 한다. 지혜뿐 아니라 인욕의 덕목도 갖춘 수행자였던 것이다.
사리불에게는 친한 친구이자 동문인 목련존자가 있었다.
둘은 함께 산자야라는 스승 밑에서 수행하다가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그런 목련이 외도에게 폭행당해 열반에 들자, 사리불은 부처님께 자신이 먼저 열반에 들기를 청했다.
부처님의 열반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삼았다.
부처님이 허락하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고 음력 11월 보름에 열반에 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일곱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뒤 홀로 남아 서운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사리불이 탁발을 나왔을 때 "팔십만 냥이나 되는 재산을 버리고 남이 주는 밥찌꺼기를 먹고 다닌다"며 심하게 꾸짖었다. 그래도 사리불은 아무 말 없이 탁발을 마치고 돌아갔다.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어머니를 위해 법을 설했다.
사리불 존자의 유골은 탑으로 세워졌다.
200년 뒤 아쇼카왕이 불적을 순례할 때 기원정사에서 사리불의 탑에 공양하고 10 만금을 희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인도의 나란다 대학 유적지에는 지금도 사리불의 토굴이 목건련 존자의 수행처와 함께 남아 있다.
사리불의 지혜는 결국 이것이었다.
혼자 깨닫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깨달음을 나눌 수 있는 언어를 찾는 것.
매번 자신을 되돌아보며, 타인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
가장 지혜로운 자가 가장 많이 질문했던 이유다.
진정한 지혜는 겸손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