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끄는 리더, 불 안 나게 하는 리더

우리는 왜 엉뚱한 리더에게 열광하는가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왜 문제를 잘 해결하는 리더 주변에는 늘 문제가 터지는 걸까.

왜 그 팀은 항상 '위기 모드'인 걸까.

소방관이 유능한 건 좋은 일이지만, 정작 필요한 건 애초에 불이 안 나는 건물 아닌가.


경영사학자 마틴 구트만(Martin Gutmann)은 2024년 TEDxBerlin 강연에서 이 질문을 정면으로 던졌다. 그가 꺼낸 사례는 남극 탐험가 두 명이었다. 어니스트 새클턴(Ernest Shackleton)은 극적인 실패와 생존 드라마로 리더십의 아이콘이 됐다. 대학 도서관에 그의 리더십을 다룬 책이 26권이 있었다. 반면 로알 아문센(Roald Amundsen)은 남극점 최초 도달, 북동항로, 북서항로까지 주요 극지 목표를 모두 달성한 사람인데, 리더십 서적은 4권뿐. 그중 2권은 구트만 자신이 쓴 것이었다.


"We confuse a good story for good leadership. But the two are not the same." — < Martin Gutmann, TEDxBerlin 2024> "우리는 좋은 이야기를 좋은 리더십과 혼동한다. 하지만 둘은 같지 않다."


구트만은 이걸 '행동 오류(Action Fallacy)'라 불렀다.

가장 많은 소음과 극적인 활동을 만들어내는 리더가 최고라는 착각.

실제로 새클턴의 탐험은 처음부터 무모한 판단의 결과였다.

현지 포경선원들이 그해 얼음이 특히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무시했고, 장비 준비와 대원 선발에도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그가 수습해야 했던 위기 상당수는 스스로 초래한 것이었다.


아문센은 달랐다. 극지 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 치밀한 계획, 현장에서의 혁신적 리더십으로 문제 자체를 최소화했다. 1911년 남극점까지 3,000킬로미터를 주파하고 99일 만에 캠프로 돌아왔는데, 예정보다 단 하루 차이였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고, 바로 그래서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조직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문제 해결형 리더의 팀에서는 회의에서 목소리가 크고, 성과 보고에 드라마가 있다.

"이번에도 해냈다"는 서사가 반복된다. 그런데 이 서사에 중독되면, 조직은 위기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위기 대응 능력'이 곧 '리더십'이라는 공식이 굳어진다.


구트만의 강연에서도 이 점이 짚인다.

조직심리학 연구들을 인용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무슨 말을 하는지와 상관없이 많이 말하는 사람에게서 리더십을 본다. 얼마나 유능했는지와 상관없이 자신감 있어 보이는 사람을 리더로 여긴다.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바쁜 사람을 존경한다. 결국 좋은 리더가 되는 것보다, 좋은 리더처럼 보이는 것이 승진과 보상의 지름길이 된다.


반대편에 서 있는 리더는 조용하다. 문제가 생기지 않게 시스템을 설계하고, 변수가 커지기 전에 손을 쓴다. 이 사람의 팀에서는 극적인 일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평가 시즌에 특별히 내세울 '사건'이 없으니 보고서가 밋밋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공은 깊다. 비교 자체가 다른 차원이다.


와튼 스쿨의 애덤 그랜트(Adam Grant),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프란체스카 지노(Francesca Gino), UNC 케넌-플래글러의 데이비드 호프만(David Hofmann)이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Reversing the Extraverted Leadership Advantage",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는 이걸 실증했다.


피자 프랜차이즈 70개 매장의 매니저와 374명의 직원을 조사하고, 163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능동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움직이는 구성원이 있을 때 조용한 리더가 이끄는 팀이 더 높은 수익을 냈다. 외향적 리더는 이런 구성원의 적극성을 위협으로 느끼는 반면, 내향적 리더는 경청하고 아이디어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조용한 리더 밑에서 실력 있는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그 팀은 더 높은 성과를 낸다. 텐션에 이끌린 사람들이 아니라, 안정감과 성장 가능성에 이끌린 사람들이 모인다. 그러면 문제 해결 능력은 필요 없는 건가. 당연히 아니다. 아무리 시스템을 잘 짜도 예상 못한 변수는 생긴다. 시장이 뒤집히고, 규제가 바뀌고, 사람이 떠난다. 그때 빠르게 판단하고 실행하는 능력은 여전히 필수다.


핵심은, 둘 중 하나만 가진 리더는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불 끄기만 잘하는 사람은 결국 번아웃되거나, 조직 전체를 만성 위기 상태로 몰고 간다.

불이 안 나게만 관리하는 사람은 정작 예외적 상황에서 돌파력이 부족할 수 있다.


구트만은 강연에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 라파엘라 사둔(Raffaella Sadun)의 연구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The evidence is clear that boring management matters. It may not be as exciting as leading a cavalry charge from the front or giving a brash pep talk, but it's the real toolkit of good leaders." — <Martin Gutmann, TEDxBerlin 2024 (Raffaella Sadun의 연구를 인용하며)> "지루한 관리가 중요하다는 증거는 분명하다. 선두에서 돌격하거나 거친 격려 연설만큼 흥미롭지 않지만, 그것이야말로 좋은 리더의 진짜 도구다."


사둔은 HBR 기사("The Myth of the Brilliant, Charismatic Leader", 2022)에서 FTX 붕괴와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사태를 분석하며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화려한 리더십 스타일과 기본적인 경영 관행에 대한 노골적 무시가 결합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비전과 지성은 기사거리가 되기 좋지만, 목표 설정·인센티브·모니터링이라는 '지루한' 관리의 기본을 무시하면 조직은 무너진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도구만으로 모든 상황을 커버할 수는 없다.

평소에는 시스템으로 문제를 예방하고, 시스템이 뚫릴 때는 직접 뛰어들어 해결하는 사람.

이 두 가지를 두루 가진 리더 앞에서는 이루지 못할 일이 드물다.


문제는, 대부분의 조직이 전자만 보상한다는 것이다.

드라마틱한 성과를 올린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조용히 문제를 예방한 사람은 "별일 없었네"로 지나친다. 구트만이 강연 마지막에 던진 말이 여기 꽂힌다.


"The next time you're in a position to judge or reward a leader, resist the temptation to be dazzled by tales of adventure and derring-do, and take a moment to look below the surface or in the quieter corners of your team." —< Martin Gutmann, TEDxBerlin 2024> "다음번에 리더를 평가하거나 보상할 위치에 서게 되면, 모험담에 현혹되는 유혹을 이겨내고, 잠시 멈춰서 수면 아래를, 팀의 조용한 구석을 들여다보라."


당신의 조직에서 진짜 일 잘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불을 끄는 사람인가, 불이 안 나게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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