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만에 돌아온 이름, 아직 입에 붙지 않은 사람들에게
설 연휴가 다가오면 으레 듣는 말이 있다.
"구정에 뭐 하세요?"
별생각 없이 쓰고, 별생각 없이 듣는다.
나도 오래 그랬다.
그런데 한번 따져보면 이상한 구석이 있다. 구정(舊正)은 '옛 설'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묻겠다. 우리가 수백 년간 지켜온 설이 왜 '옛것'이 되어야 하나. 대체 누가, 무슨 권리로 이 이름을 낡은 것으로 밀어냈나.
기록을 따라가면 흐름이 보인다.
1896년 고종이 태양력을 공식 도입한 뒤에도 백성들은 여전히 음력 정월 초하루에 차례를 올렸다. 수백 년 이어온 시간의 리듬이 칙령 하나로 바뀔 리 없었다.
강제가 시작된 건 일제가 조선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뒤부터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부터 자국에서 이미 폐지한 음력설을 조선에도 없애기 시작했다.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 음력 1월 1일을 '구정(舊正)'이라 부르며, 새것과 헌것의 위계를 언어에 새겨 넣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말에 대해 "설을 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의 설날이 "한민족이라는 일체감과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게 한다"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부숴야 했다.
1920년대에는 떡방앗간에 대문을 못 박아 닫게 하고, 몰래 문을 연 방앗간을 일본 순사가 순찰했다. 하얀 설빔을 입은 조선인에게 먹물을 뿌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공정하게 짚어야 할 것이 있다. 2018년 국립국어원은 공식 답변에서 "'신정'과 '구정'을 일본어 투 표현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월(正月)'에 '신(新)'과 '구(舊)'를 붙이는 방식 자체는 한국에서도 쓰이던 한자어 조어법이라는 논리였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국어원도 인정한 것이 있다. 이 용어가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맥락과 떼어놓기 어렵다는 점, 그래서 "논란을 피하고 싶다면 '양력설'과 '음력설', 또는 '설날'이라는 표현을 쓸 것"을 권고했고, "'우리나라 명절의 하나'로서는 '설날'을 쓰는 것이 알맞겠습니다"라고 안내했다는 사실이다.
단어의 계보가 학술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해서, 그 단어가 역사적으로 무해하다는 뜻은 아니다.
해방이 됐으니 끝났을까. 아니었다.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는 '이중과세(二重過歲)'를 문제 삼으며 양력설만 공휴일로 인정했다. 음력설에 쉬는 기업에 불이익을 주기까지 했다. 양력설에 차례를 지내라고 권장했고, 서울의 일부 가정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런데도 대다수 국민은 음력 정월 초하루를 놓지 않았다. 쉬라는 법도 없고 부르는 이름도 없는 명절을 지켰다.
1985년, 겨우 하루짜리 공휴일이 생겼다. 이름은 '민속의 날'. 설날도 아닌, 정체 모를 이름이었다.
민속학계와 유림이 반발했다.
"전통적인 음력 설 명절을, 그것도 설이 아닌 민속의 날이라 부르면서 어떻게 전통을 유지하겠느냐."
그로부터 4년 뒤인 1989년, 음력설은 비로소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았고, 전후 하루씩을 포함한 3일 연휴가 시작되었다. 일제가 이름을 빼앗은 지 거의 80년 만의 일이다.
제도는 바뀌었다. 그런데 말이 따라오지 않았다.
하이데거는 「휴머니즘 서간」(1947)에서 이렇게 썼다. "Die Sprache ist das Haus des Seins."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단순한 통신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자기 자신을 위치시키는 근본적인 틀이라는 뜻이다.
거창한 철학을 끌어오자는 게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자기 명절을 스스로 '옛것'이라 부르면서 그 명절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느낄 수 있겠는가.
'설'이라는 말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경합 중인데, 가장 유력한 것은 나이를 뜻하는 '살(歲)'과 같은 계통이라는 설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결국 '설'이 사람의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로 정착하여 오늘날 '살'로 바뀌게 된 것이라 한다"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한국교원대 원용우 명예교수(국문학)는 세계일보 기고(2016)에서 고어사전과 『월인석보』의 용례를 근거로 "옛날 우리 선인들이 한 살, 두 살 하면서 나이를 셀 때, 한 설, 두 설, 세 설 했던 것이고, 그 설이란 바로 살(歲)을 의미했다"라고 밝혔다.
설을 한 번 쇨 때마다 한 살을 먹는다. 설과 삶이 한 뿌리인 셈이다.
이 밖에도 '낯설다'의 '설'에서 왔다는 해석이 있다. 새해 첫날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시간, 낯선 출발이라는 뜻이다. '삼가다(愼)'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서, 옛 기록에서는 설날을 '신일(愼日)'이라 적었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새 한 해를 시작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서다'에서 나왔다는 해석도 있다. 한 해를 새로이 세운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공통분모는 같다. 삶, 시작, 근신, 새로움. '구정'이라는 단어에는 이 의미가 단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여기서 한 가지 짚을 것이 있다. "뜻만 통하면 됐지, 뭘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언어는 살아 움직이고, 사람들이 쓰면 그것이 언어가 된다. 하지만 그 논리라면, 1989년에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으려고 한 노력도 불필요했다.
'민속의 날'이든 '구정'이든 뜻은 통했으니까.
그때 이름을 바로잡은 것은 뜻이 아니라 존엄의 문제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정치의 첫걸음으로 정명(正名)을 말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하지 않고, 말이 순하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
거대한 변혁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이름 하나를 바로잡는 것, 그것이 모든 것의 출발이다.
실천은 간단하다. 누군가 "구정에 뭐 하세요?"라고 물으면, 따지지 말고, 정색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대답하면 된다.
"설날요? 고향에 내려갑니다."
말 한마디 바꾼 것뿐인데, 그 순간 당신은 80년 동안 비틀려 있던 이름을 제자리에 놓는다. 그게 정명이다. 거창할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