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사원 시절에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됐다.
한때 조직을 이끌던 선배들이 40대 중반을 넘기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옷에 무심해지고, 외모는 어느 순간부터 관리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술자리에는 오래 앉아 있으면서, 정작 일에서는 예전의 속도감이 사라져 있었다.
'왜 저러지?' 싶었다. 그냥 나태해진 거라고 생각했다.
30대 대리, 과장이 되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껏해야 '저 나이가 되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는 막연한 다짐 정도였다.
잘 나가던 선배가 왜 저렇게 됐는지, 사실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안 했다.
40대 차장, 팀장이 되어 후배들을 이끌면서도 그 다짐은 유효했다.
나는 다를 거라고, 저렇게는 안 될 거라고.
그리고 이제 쉰이 됐다.
그 선배들의 얼굴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그리고 처음으로 든 생각이 '아, 그랬겠구나'였다.
이 나이 즈음이 되면 고민이 한꺼번에 몰린다. 혼자 조용히 감당하던 개인적인 고민이 아니다. 흔들리기 시작하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무게감, 자녀 앞에서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한 압박, 직장에서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 그리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하루에도 수시로 실감하는 순간들. 이것들이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 한꺼번에, 동시에 터진다.
위로는 노쇠해 가는 부모를, 아래로는 자녀의 학비와 미래를 짊어지면서 자신의 노후 준비까지 해야 하는 나이다. "월급은 통장을 스치기만 한다. 미래는커녕 오늘을 버티는 것도 고통스럽다"는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나이. 버티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잘 보이지 않는 나이이기도 하다.
거기에 몸의 변화가 겹친다. 기억력, 판단력, 언어 감각까지 조금씩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다. 새벽까지 자료를 파고들던 집중력이 흐릿해지고, 회의 중 예전처럼 날카로운 말 한마디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체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무언가 전반적으로 달라진다.
심리학자들은 남성이 중년기에 접어들면 회사에 쏟아붓던 감정적 에너지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고 분석했다. 술자리를 좋아해서 집에 안 가는 게 아니다. 정작 집에 돌아가면 마주해야 할 현실들, 대화를 나눠야 할 관계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꾸 자리가 길어지는 것이다.
당시의 나는 그 선배들을 보며 '저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다.
그게 얼마나 얕은 시선이었는지 이제야 안다.
그 선배들은 나태해진 게 아니었다.
여러 개의 무게가 동시에 눌러오는 상황 속에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20대 사원의 민첩함을 요구받으면서.
공자는 나이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했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
그런데 막상 그 나이를 지나고 보니, 마흔이야말로 흔들릴 만한 것들이 가장 많이 몰려오는 시기였다.
쉰이 된 지금은 더하다. 젊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야 보인다.
이 글을 20대 사원, 30대 대리나 과장이 읽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선배들의 느슨해진 모습을 쉽게 단정 짓지 말라고.
그게 게으름인지 피로인지, 혹은 오래 버텨온 사람이 드디어 한계에 다다른 것인지는 그 자리에 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혼자만 이런 게 아니라고.
다들 비슷한 무게를 지고 있고, 다들 비슷하게 흔들리고 있다.
다 못 해도, 그냥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고 있는 거라고.
이해라기보다, 이제 나의 차례가 왔다는 걸 느낀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나보다 어린 누군가가 언젠가 나를 보며 같은 이해에 닿기를, 조금은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