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 둥, 둥, 둥 — 그 로고가 CGV가 됐다

둥, 둥, 둥, 둥.

네 번의 북소리와 함께 네 개의 직사각형이 하나씩 나타나 정사각형으로 뭉쳐지는 골든 하베스트 로고.



극장이든 비디오테이프든 상관없었다. 그 황금빛 로고만 보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성룡이 나온다.

설명이 필요 없었다.


1970년 홍콩.

쇼 브라더스라는 거대 영화사에서 최고 임원까지 오른 레이먼드 초우(추문회)가 독립해 새 회사를 차렸다. 골든 하베스트였다. 그가 처음 한 일은 할리우드에서 단역이나 전전하며 푸대접받던 무명 배우 하나를 홍콩으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이소룡이었다.


1971년 《당산대형》이 나왔고 아시아가 들끓었다.

이소룡이 1973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골든 하베스트는 흔들렸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초우는 다음 사람을 찾았다. 성룡이었다. 코믹 쿵후라는 장르를 개척하며 1980년대 홍콩 영화 전성기를 이끈 그는 사실상 골든 하베스트 전속이나 마찬가지였다.


1980년 《사제출마》부터 1998년 《누가 나인가》까지, 거의 20년 동안 그의 홍콩 영화는 전부 골든 하베스트를 통해 나왔다.


《프로젝트 A》의 70피트 시계탑 낙하.

《폴리스 스토리》의 쇼핑몰 유리 난간 질주.


스턴트 대역 없이 몸으로 찍은 그 장면들이 모두 그 시절의 것이다. 골든 하베스트가 이소룡, 성룡, 홍금보, 원표와 함께 만들어낸 영화만 600여 편이다.


그 회사가 1996년, 한국의 제일제당, 호주의 빌리지 로드쇼와 손을 잡았다.


지분 구조는 제일제당 50%, 골든 하베스트와 빌리지 로드쇼가 각각 25%. 세 회사의 앞 글자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CheilJedang — Golden Harvest — Village Roadshow.


CGV였다.


1998년 4월 4일, 서울 강변 테크노마트 10층에 'CGV강변 11'이 문을 열었다.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 11개 스크린, 1922석. 단관 극장이 전부였던 시절, 한 건물에 스크린 열한 개는 충격에 가까웠다.


1층 전용 매표소에서 티켓 한 장 사려고 세 시간씩 줄을 섰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개관 첫 해에만 350만 명이 다녀갔다. 당시 IMF 외환위기 한복판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골든 하베스트는 오래 남지 않았다.

2000년, 조용히 지분을 털고 나갔다. 빌리지 로드쇼도 2002년 뒤를 따랐다. 이후 CGV는 CJ그룹 단독으로 운영되며 지금에 이른다.


골든 하베스트 자체도 2007년 중국 자본에 지분이 넘어가며 홍콩 영화의 마지막 상징 하나가 그렇게 사라졌다. 레이먼드 초우는 2018년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 CGV라는 이름 안의 G. 오래전 빠져나간 회사의 흔적.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설명하는 사람도 없지만, 세 글자 안에 여전히 거기 있다.

다음에 CGV 간판을 볼 때 잠깐 멈춰봐도 좋을 것 같다.


저 G가 어디서 왔는지. 둥, 둥, 둥, 둥 하던 그 북소리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가, 저 세 글자 안에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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