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인플레이션은 못 막는다

그나마 버티는 나라는 북한뿐이다. 이란은 북한이 아니다.

역사를 보면 한 가지 사실이 반복된다.

어떤 이념도, 어떤 신앙도, 어떤 강한정부도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앞에서는 결국 무릎을 꿇는다.

정확히는 한 나라만 예외처럼 보인다. 북한이다. 그런데 그 예외가 오히려 법칙을 증명한다.


2025년 이란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IMF 집계 기준 평균 42.5%에 달했다.

식료품 가격은 1년 새 72%, 의료용품은 50% 급등했다.

이란 리알화 가치는 최근 3년 사이 5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3년 전 100만 원짜리 지갑에 넣어둔 돈이 지금은 20만 원어치 물건밖에 못 산다는 뜻이다. 이란 언론은 2022년 기준으로 이미 인구의 절반이 하루 최소 권장 칼로리인 2100칼로리를 채우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역사는 반복해서 같은 장면을 보여준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모부투는 32년을 버텼다. 초인플레이션이 깊어지자 임금을 받지 못한 군인들이 수도 킨샤사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경제 붕괴가 군의 충성심을 먼저 무너뜨렸고, 정권은 그 뒤를 따랐다.


소련도 다르지 않았다. 핵무기 수천 기를 보유했던 초강대국이 쓰러진 건 전쟁 때문이 아니었다. 빵집 앞에 늘어선 줄, 상점에서 사라진 소비재, 군비 경쟁으로 빈사 상태가 된 계획경제가 체제를 안에서부터 삭혔다. 짐바브웨의 무가베는 사실 초인플레이션을 직접 만들고도 권좌에서 버텼다. 2007년 가격을 강제로 반값으로 낮추는 명령을 내리자 기업들이 줄줄이 생산을 중단했고, 외국계 기업들마저 떠났다. 그를 끌어낸 건 굶주린 민중이 아니라 권력 승계를 노린 군부였다. 경제 파탄이 체제를 즉각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군의 이탈을 불렀고, 이탈한 군이 체제를 끝냈다. 베네수엘라의 마두로는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물려받고도 포퓰리즘과 통화 남발로 2015년부터 수십만 퍼센트 초인플레이션을 불렀다. 혁명의 언어도, 반미의 구호도, 총칼도 밥값을 낮추지는 못했다.


그런데 북한은 다르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 최신 학술 추정치 기준으로 약 50만에서 1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전체 인구의 2~4%가 아사한 것이다. 이 참혹한 수치에도 체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왜인가.


북한은 종교가 없는 나라다. 김일성 탄생 전부터 이미 종교는 체계적으로 제거됐고, 그 자리를 주체사상이 채웠다. 이란의 신권체제가 알라를 앞세웠다면, 북한의 수령체제는 수령을 신격화했다. 차이는 그 통제의 밀도다.


북한 주민이 세상을 모른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북한에 이런 말이 있다. '한국 드라마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USB는 국경을 넘고, 뇌물은 단속원의 눈을 감기고, 드라마 속 자동차와 공항의 풍경은 '조작할 수 없는 진실'로 가슴에 남는다. 북한 당국이 이것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었다. 한국 드라마를 시청했다는 이유로 중학생들이 공개 총살됐다. 부모도 함께 끌려갔다.


문제는 정보가 없는 게 아니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이다. 이란에서는 광장에 나가면 연대가 생긴다. 북한에서는 옆집 사람이 보위부 정보원일 수 있다. 인민반 주민 중 3~5명이 비밀 정보원으로 선정되어 주민 동향을 24시간 감시하고 보고한다. 분노를 나눌 사람을 찾는 행위 자체가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알면서 침묵하는 것. 그것이 북한식 통제의 본질이다.


게다가 탈출이 불가능하다. 이란에서는 고학력자와 청년층이 나라를 떠났다. IMF가 선정한 두뇌 유출 1위 국가가 이란이었고, 이들의 귀국률은 단 1%에 불과했다.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안전밸브가 있었던 셈이다. 북한엔 그 밸브가 없다. 압록강을 건너다 사살당한다. 분노가 축적되어도 분출할 공간이 없으니, 체제 입장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안정'처럼 보인다.


이란은 북한이 아니다. 이란에는 인터넷이 있다. 검열받지만, VPN으로 뚫린다. 테헤란의 대학생은 미국 유학생 친구와 인스타그램을 공유한다. 바자르의 상인은 달러 환율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가난해졌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모르면 참을 수 있다. 알면 분노한다. 이란 Z세대는 알고 있고, 거리로 나갈 수도 있다.


1979년 혁명을 직접 겪은 세대에게 신권체제는 선택의 결과였다. 팔레비 왕조의 부패와 서방 종속을 목격하며 호메이니를 택했다. 그 기억이 체제에 대한 정서적 유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20대는 그 혁명을 교과서에서 읽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슬람 공화국은 그냥 있는 것이었고, 도덕경찰은 일상의 억압이었으며, 핵 제재는 배경 소음이었다. 이 세대에게 혁명의 서사를 설파하는 것은 공허하다. 당장 오늘 저녁 밥상이 문제니까.


이란 시위 현장에서 '개혁주의자든 원칙주의자든 이제는 끝났다'는 구호가 나왔다. 체제 내부에서 답을 찾겠다는 기대 자체를 버린 선언이다. 이것은 종교적 반란이 아니다. 경제적 포기 선언이다.


하메네이가 시위 초기 내놓은 유화책이라는 것이 1인당 월 7달러짜리 바우처였다. 42%의 인플레이션 앞에 월 7달러. 그 발표는 오히려 시위대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북한이라면 그 바우처조차 없어도 통제가 된다. 알아도 말할 수 없고, 말해도 행동할 수 없고, 행동해도 연대할 수 없으니까. 이란에서는 그 바우처가 조롱이 됐다. 알고, 말하고, 광장에 나갈 수 있으니까.


결국 경제 통제의 가능 조건은 두 가지다.

정보의 완전 차단, 그리고 행동 불능 상태.

북한은 둘 다 달성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란은 하나도 완성하지 못했다.

종교가 아무리 강해도, 신권체제가 아무리 단단해도, 국민이 스마트폰을 쥐고 광장으로 나올 수 있는 한 물가 42%의 고통은 억압으로 덮을 수 없다.


어떤 체제도 인플레이션을 영원히 억압으로 덮을 수 없다.

예외는 북한뿐인데, 그 예외의 조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폐쇄성과 공포다.

그 조건을 갖추지 못한 나라라면—이란이든, 베네수엘라든, 짐바브웨든—물가는 결국 체제보다 먼저 말을 한다.


이란의 Z세대가 거리로 나온 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살아남는 문제다. 그리고 그들은 밖을 볼 수 있고, 광장에 나갈 수 있다.

그것이 북한과의 결정적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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