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머리 있는 사람들의 기록법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실력이 좋은 사람들일수록 메모가 얇고 단단하다는 걸 알게 됐다.
겉으로는 별거 아닌 메모 같은데, 시간이 지나 다시 봐도 그때 상황이 또렷하게 살아난다.


이 사람들은 먼저 짧게 적는다.

나중에 다시 봤을 때, 한 번 훑어도 그림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만 남겨 둔다.

문장을 더 붙이는 대신 ‘이 중에서 나중에 꼭 기억해야 할 말이 뭐지?’부터 골라낸다.


기록에는 날짜를 빼먹지 않는다.

언제 정리한 판단인지가 드러나야, 몇 달 뒤에 봐도 덜 헷갈린다.

그 옆에 결론, 담당자, 기한을 붙인다.

무엇을 할지, 누가 책임지는지, 언제까지 마무리해야 하는지가 한눈에 들어오게 만든다.


모르는 부분은 흘려보내지 않고 옆에 작은 물음표를 남겨 둔다.

나중에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자리라는 표시다.

보고 싶지 않은 사실이나 불편한 결과도 지우지 않는다.

그 순간 기분 좋으라고 쓰는 기록보다, 시간이 지나도 버티는 기록 쪽을 선택한다.


이렇게 모아 둔 메모가 쌓이면 시야가 달라진다.

내 일과 사람들, 팀이 어디에 서 있는지가 전보다 훨씬 또렷하게 보인다.

기록을 잘 남긴다는 건, 결국 내 일을 선명하게 보는 힘을 조금씩 키우는 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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