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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2시간전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인생

초단기 단막극 인생을 붙여 만들어가는 삶

어릴 때부터 가진 요상한 버릇이 하나있다.


 '한 입 먹기 버릇'


그것이 무슨 말인고 하면 한 가지를 끝까지 먹는 걸 지겨워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과자를 먹다가도 1/3 정도 먹으면 물려서 다른 과자를 뜯는다. 그래서 늘 먹다 남은 봉지들이 돌돌 말려있다. 엄마는 내 취향을 잘 알았었나 보다. (그렇게 길러져서 이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간식 시간이 되면 언제나 널따란 쟁반에 과자 종합 세트를 만들어 주셨다. 한 뭉치씩 꺼내어 네다섯 종류를 함께 주셨다. 그래서 이 과자 저 과자 집어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분명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었는데 밥이든 간식이든 푸짐했던 걸 보면 부모님은 먹는 데에는 아끼지 않으셨던 것 같다. 




신혼 초에 신랑이 빵을 사 왔다. 팥빵, 소보루빵, 카스테라, 바게트. 여러 종류를 한 보따리 사 왔었다. 신랑이 주방으로 갔다가 경악했다. 쥐가 파먹은 것 마냥 한 꼭지씩만 뜯어 먹고 남긴 빵의 흔적을 보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범인은 나였다. 다행히 그런 일로 핀잔을 주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분명 그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이해할 수 없음을 해석했다. 누군가는 남들 못 먹게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가족들 먹다 남은 것들도 잘 먹는 성격으로 그저 나답게 살아갔다고 보면 된다. 이런 나를 개념 없다고 한다면 '네 맞아요.' 할 수밖에 없다. 많이(양) 먹는 것보다 많이(종류) 먹는 게 좋으니까. 


공원에서 개들이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 나의 모습이 투사된다. 여기 킁킁, 저기 킁킁. 그러고는 영역표시. 한곳에 머물지도 않는다. 나의 터가 되지도 못할 곳에 쌈장 찍어 먹듯 다니는 형국을 보면 저 아이는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모습이 싫은 이유는 그렇게 살아가는 내가 나도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메뉴 하나만 고르는 게 힘들다. 단 하나를 고르기란 그 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과도 같으니까. 직업도 하나만 고르는 게 어렵다. 늘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그런다. 딱 과자 먹는 습관이랑 똑같다. 주의력 부족은 아닐지, 혹시 성인 ADHD는 아닐지 가끔 의심을 해보지만, 어차피 검사할 생각도 없고 고칠 생각도 없으니, 원인을 찾는 건 무용지물이다.


늘 나와 반대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대단하고 신기하다. 친구 중 한 명은 어릴 때부터 한자를 좋아하더니 일어교육과에 진학해서 박사까지 하고 얼마 전엔 교수님 방까지 생겼다. 그렇게 일편단심 스타일인 줄 몰랐는데 어떻게 한 우물만 그렇게 냅다 팔 수 있는지 신기했다. 그 친구의 삶과 비교를 해본다면 나의 삶은 바람둥이다. 한 곳에 마음을 주지 못하고 늘 어디 또 더 괜찮은 게 있을까 기웃거린다. 이왕 정처 없이 살 거면 유럽 각지를 떠돌았던 카사노바처럼 맹활약이라도 해볼 것이지 나는 철저히 동네 나와바리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줄치기, 구획이라는 단어로 순화하여 사용하도록 권하지만, 일제강점기 시대를 보낸 할머니와 평생 살았던 나에게는 이 단어가 착 붙는다.)




늘 이것저것 탐험하듯 맛보고 산다. 그러다가 최애가 생기면 그것만 들고 판다. 31가지 아이스크림 파는 가게에 가면 레인보우 샤베트 하나만 먹는다. 라면은 늘 튀김우동만 먹었었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회라는 불면의 취향은 변하지 않는다. 한 노래에 꽂히면 백 번 이상 듣는다. 아이는 엄마가 직접 키워야 한다는 신념 하나 때문에 십 년째 놀고 있다. 구미에 맞는 걸 찾겠다고 온갖 음식에 손대며 사는 것 같기도하다.


개들이 공원을 순회하던 모습이 다시 생각난다. 내 마음에 공명하는 삶이라는 짝을 찾기 위해 떠도는 나라는 인간. 평균 수명이 길어서 다행이다. 이 마음이라는 녀석은 대체 몇 살까지 떠돌건지 모르겠다. 청소년기에도 하지 않았던 진로 찾기는 이제 시작일 뿐인 것 같다. 곧 우리 집에 한 녀석은 사춘기라는 알을 품을 텐데 아무리 봐도 사십춘기인 내가 이길 것 같다. 더 큰 알을 품고 있다. 언제 터트릴지 모르는 빵빵한 알.


내 인생의 항로가 어디로 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떠냐. 인생은 원래 장편소설이지만 내 삶은 그 속에 잘게 잘게 쪼개진 초단기 단막극의 합이라고 여기면 된다. 서로의 이야기가 이어지지도 않고, 전혀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수많은 장면들 속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만 변함없으면 된다. 스펙타클한 서사도 없고 예상되는 맥락도 없지만 내 과자취향처럼 두서없는 지금 이대로의 내 인생이 좋다. 현재의 삶에 집중하면 어떤 이야기든 펼쳐질 것이다. 그러다 또 과자처럼 물리면 미련 없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면 된다. 다양한 이야기들의 합으로 고유한 내가 될 것이니까. 벌써 다음 단막극이 기대된다. 또 어떤 삶이 펼쳐질까. 그 삶은 또 어떤 맛일까.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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