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배고파

가래떡 구이

by 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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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하교 후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엄마, 배고파"


다행히 축 처진 말투는 아니었다. 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엄마, 나 왔어" 대신 "엄마, 배고파"가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며 귀가 인사를 대신 한 것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또 간식 챙겨줘야 하네'라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을 텐데 어쩐 일인지 오늘의 나는 조금 달랐다.





딱 세 살까지만 내 손으로 키우자고 생각했던 육아는 둘째까지 낳고 삼 년이 더 길어졌고, 둘째는 이미 세 살배기가 아닌 삼 학년이나 되었는데 나는 아직 집에서 붙박이 엄마 노릇을 하고 있다. 가끔 낯선 이들이 "뭐 하시는 분이세요?"라는 질문을 하면, "아, 저는 그냥 주부예요."라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혹시나 우리 집이 부자라서, 내가 팔자가 좋아서 일하지 않고 논다고 생각할까 봐 마음이 졸아든다. 드문 경우긴 하지만 간혹 "좋겠어요. 저도 주부로만 살고 싶네요."라는 말이라도 돌아오는 날이면 아무것도 모르고 부러워하는 그가 답답해 나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 들려주고 싶지만, 그냥 꾹 참는다.


아직은 내가 전업주부로 살고 싶어서 사는 건 맞지만 워킹맘이 되는 것보다 훨씬 낫고, 꽤 흡족해서 이렇게 사는 게 아니고, 일하지 않아도 걱정이 없어서 이렇게 사는 것도 아니며, 하물며 전업주부로 사는 걸 꽤 즐겨서 이렇게 사는 건 더더구나 아니다. 길이는 짧지만, 사건은 무수했던 결혼 이후의 삶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냥 내가 일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우리 부부의 판단과 선택이 있었을 뿐이다.


양가 집안 식구를 다 털어봐도 애 봐줄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우리가 그 집안을 돌봐주어야 했으며, 과거 결혼 전에 일했던 내 직업군의 평균 월급이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아이 봐줄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내가 쉬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었을 뿐이고, 첫째가 어릴 적 잔병치레하던 나를 닮아 매달 4주간 중 1주간은 늘 아픈 상태여서 나는 집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추가로 하나 더 말하자면 나는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이 매우 낮아서 우리 둘 다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신경 써야 할 많은 일들과 불시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경우까지 생각하느라 도저히 나갈 수 없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아이를 혼자 집에 오래 두어도 우리의 마음이 편한 나이, 또는 아이가 아플 때 혼자 병원에 다녀와서 집에서 쉴 수 있는 정도의 나이가 되어야 가능할 텐데 그러려면 아직 3년 정도가 더 남았다.





일하는 엄마로 사는 것도, 일하지 않는 엄마로 사는 것도 뭐가 더 좋다고 말할 수 없으며, 어떤 삶이 더 부러울 일도 아니다. 뭐든 내가 가지지 않은 건 부러워 보이고 좋아 보이니까. 그리고 비교란 어디에서든 의미가 없는 짓이다. 만약 전업주부로 사는 누군가가 부러워 보인다면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 다른 어떤 노동을 하고 있을 것이며, 오늘도 커리어를 쌓는 당신을 부러워하며, 덜 벌고 덜 쓰는 삶을 선택했기에 가계부 엑셀표를 눈으로 물고 뜯으며 사투를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조목조목 따지고 들자면 나는 '직장'과 '직업'이 없었을 뿐 항상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일의 종류가 어느 기간엔 내 아이를 위한 주간교육계획안과 교구를 만들어 일과에 맞게 하루를 보내는 일을 하는 방구석 어린이집 교사였고, 어느 기간엔 아버지라는 환우를 돌보고 치료를 돕는 일을 하는 가족 전용 요양보호사(생각해 보니 실제로 자격증도 땄음)였으며, 마음 맞는 부모들이 함께 모여 대안교육 유치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일을 하는 공동체 조합원이었다. 10년 동안 내가 했던 모든 일이 돈을 받지 않고, 커리어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었을 뿐 전업주부라고만 하기에는 많은 일을 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부'라는 정체성이 가장 커서 남들의 눈총이 따갑게 느껴지고 종종 자격지심에 시달린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며칠 집안일을 등한시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겠지만, 전업주부는 그렇게 될 시 본직을 내팽개친 죄인이 되는 기분을 스스로 느껴 마음이 매우 불편해진다. (당연히 나와 같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가장 최악은 사회에서 인정해 주는 '거창한 일'이 아닌 만들고, 치우고, 먹이고, 정리하고 같은 아무리 해도 티 나지 않고 성과도 없는 '일상의 일'만 하고 사는 게 나의 하루라서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느끼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결혼 이후로 한 번도 쉰 적 없이 일하는 남편이 가끔 '내가 일하는 기계인가'라는 의문을 스스로 품는 날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당사자에게 물어보니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사실은 내가 가족들 몰래 속으로 '내가 밥하는 기계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떠올렸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성취감', '자긍심', '자아효능감' 같은 멋진 단어를 떠올리기는 어려운 게 내가 하는 집안일이니까.






그런데 오늘 "엄마, 배고파"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들어오는 아들을 보며 그 순간 "배고프면 안 되지. 손 씻고 와. 간식해 줄게."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서 좋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 학교에 다녀온 아이에게 간식을 챙겨주는 일. 바로 이 순간이 어린 내가 그토록 받고 싶었던 순간이라는 걸 알았다. 태어나서 나의 육체적 허기를 가장 먼저 채워준 건 분명 엄마였을 것이다. 먹을 것을 섭취하며 주린 배를 채웠겠지만, 엄마가 내게 주고 내가 엄마에게 받은 건 분명 '음식' 그 이상이의 무엇이었다.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 감정도 함께 먹는 것 아닐까. 배가 부를 때 느끼는 포만감이 주는 충족감도 있겠지만, 누군가 나의 생명에 에너지를 채워준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사랑'의 표석이라고 느껴진다.


여자들은 결혼하면 엄마가 해준 밥을 그리워한다. 당연하게 먹을 땐 몰랐던 그 사랑의 맛을 지금은 내가 받지 않고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엄마가 해준 밥이 그립다."라는 말도 그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은, 엄마가 해주었던 밥맛을 기억하는 사람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너무 오래전에 먹은 엄마의 밥은 도통 기억나지 않아서 그리워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먹을 수는 없어도 그리워하기라도 하고 싶은데, 내가 먹은 엄마의 밥은 열네 살의 끼니가 마지막이라서 아무리 떠올려봐도 나의 감각은 이미 오래전에 소실되었다.


내가 오래도록 받지 못했다고 오래 해주고 싶은 단편적인 마음이 아니라 그 시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기에 지금 해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귀하고 애틋하게 보려 한다. 나는 밥하는 기계가 아니라 열심히 사랑을 기억시키는 중이고, 그 수단이 '밥'이든, '돈'이든 모든 건 표면일 뿐 '사랑'이라는 같은 이면을 가진 엄마의 사랑일 테니까.


쩝쩝쩝.

간장에 찍은 구운 가래떡을 맛있게 씹어 먹는 아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주고 있는 게 아니라 받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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