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맞은 집중력 지키기
고등학생 시절 반에서 한 때 많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건 바로 학습용 집중력 향상기 '엠씨스퀘어' 보유자. 우리 반에는 두 명이 그 물건을 보유하고 있었다. 써보지 않았기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몰랐다. 신문물이었고 그러니 당연히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효과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그 물건을 가지고 있는 애들이 부러웠다. 엠씨스퀘어 등장 이후로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때마다 내 집중력을 탓했다. 집중력을 도와줄 그것이 있다면 분명히 더 공부가 잘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교는 예체능 지원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9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의무적으로 하던 학교였다. 엠씨스퀘어를 쓰면 대체 어떻게 집중력이 좋아지는 건지 너무 궁금했다. 친구한테 빌려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그거 한 번만 써도 돼?" 엠씨스퀘어 보유자 중 한 명에게 야자시간을 이용해서 한 시간만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뚜뚜뚜.. 뚜뚜뚜뚜'
'뭐지?'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30분 정도 사용하다가 도저히 공부가 되지 않아서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버렸다. 그걸 끼고 있었더니 공부에 집중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작은 소리에 계속 집중을 하고 있었다.
엠씨스퀘어만 끼면 집중력에 날개가 달릴 줄 알았는데 날개는커녕 나의 집중력은 바닥에서 고개도 안 드는 느낌이었다. 엠씨스퀘어는 그렇게 나에게 사기꾼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엠씨스퀘어 주인은 그 물건이 있으나 없으나 여전히 공부를 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용한 야자시간에 공부를 하려고 하면 항상 작은 소리들이 내 집중력을 앗아갔다. 교실 끝에서 친구끼리 소곤거리는 소리, 볼펜 똑딱 거리는 소리, 슥슥슥 다리 떠는소리. 세상이 조용해지면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살아났다.
하루는 뒷자리에 있던 친구가 작은 소리로 중얼중얼 문제를 읽으며 문제를 풀고 있었다. 집중을 해보려고 노력을 해봐도 자꾸 그 친구의 중얼거림에만 집중이 되었다. "야! 말 좀 하지 말고 해." 결국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다. 그 소리가 얼마나 거슬릴지 몰랐을 친구는 엄청 황당해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미안하지 않기도 하고 그렇다 친구야)
그 뒤로도 작은 소리들은 자꾸 내 귀를 괴롭혔다. 자려고 누우면 들리는 시계 초침소리. 한밤중 거실에서 누군가 켜놓은 미세한 TV소리. 늦은 새벽 창 밖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작은 소리들은 공부하려고 해도 힘들게 했고, 잠을 자려고 할 때도 힘들게 했다.
참 신기한 건 그럴 땐 오히려 노래를 틀면 집중이 잘 되었다. 시끄러운 노래를 들으면 분명 더 정신이 없어질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오히려 더 집중이 잘 됐다. 야자시간에도 집중이 안되면 음악을 들었다. 작은 소리들 때문에 잠이 안 올 때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잠들었다.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리니 오히려 내가 하려고 하는 일에 집중이 되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작은 것들을 보고, 남들은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것에 마음을 기울이는 나의 이런 부분 때문에 힘들 때도 참 많았다. 하지만 그래서 세상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사소한 것들이 주는 기쁨들을 만끽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힘든 마음도 많이 겪었지만 반대로 아름답고 풍요로운 마음도 많이 만났다.
쉽게 도둑맞는 집중력을 가져서 비록 학문에 힘쓰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두루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쁘다. 이렇게 태어난 이대로의 내가 좋다. 나를 잘 이해한 덕분에 음악이라는 도구를 잘 이용해서 필요할 땐 집중력을 찾고 때에 따라 집중력을 도둑맞으며 살아간다.
세상을 보고 싶을 땐 귀를 열고, 세상을 닫고 싶을 땐 귀를 닫는다. 지금도 나는 카페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음악은 내 신경을 빼앗아가는 소리들을 막아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패다. 음악만 있으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나만의 세상으로 초대된다.
자극 많은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집중력을 지켜낼 수 있는지 궁리하지 못한다면 결국 인생도 도둑맞을지 모른다. 남들의 모습에 뺏기고, 새로운 숏츠에 뺏기고, 누군가의 카톡연락에 또 뺏긴다. 살아가야 할 내 삶에 쓰일 시간들과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 써야 할 시간들이 자꾸 도둑맞는다. 나라 잃은 설움은 알고 나를 잃은 설움은 왜 모르고 살아갈까?
달콤한 세상에 나를 뺏기지 말자.
나라를 지켜냈듯 나를 지켜내고,
나라를 되찾았던 것처럼 나를 되찾자.
내 삶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