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히 키워내는 우리의 위대함
며칠 전 이웃 분의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인상적인 영상 하나를 보았다. '사람과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었다.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몰랐다. 당해 회차의 타이틀이 인상적이어서 마우스를 클릭하게 되었다.
캐리어 하나 들고 20년 동안 7개국에 머물며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한 동네에서 10년째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삶이 어떨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키우는 것만이 정답인양 살았던 나에게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유아교육이론에 따라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미디어나 과하게 북적거리는 곳은 피했다. 최대한 유해한 것은 차단해서 아이들을 지켜주려고 했다. 단순하고 안정적인 리듬생활을 통해 심신을 건강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매일 공원이나 산, 바다에 가서 자연과 함께 있게 해 주었다. 아이들 장난감은 엄마들끼리 모여 천이나 털실로 직접 만들었다. 학교 가기 전까지 문자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대신 매일 밤 잠들기 전 동화를 들려주며 듣는 귀를 키워주었다. 음식도 되도록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로 직접 만들어 먹이려고 했다.
이렇게만 열심히 키워내면 아이들이 무탈히 자랄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얻은 것들이 많다. 안정적인 정서를 가졌고 또래에 비해 스스로를 다루는 능력도 탁월하다. 하지만 뭐든 어디에나 빛과 그림자는 존재했고 작용이 있는 곳에는 반작용이 따랐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환경에 오래 놓여있었던 아이들은 지금의 세상을 힘들어했다. 밖은 지극한 현실이었다. 무던히 지나갈 수 있는 일에도 크게 반응했고 강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 두 배로 민감했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서야 알았다.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균실에서만 있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적절한 세균을 만나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너무 온실 속에서만 있다가 갑자기 밖에서 세찬 비바람을 만나면 살아낼 힘이 없다.
영상에 나왔던 가족들은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으로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경험이 많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어디서든 살 수 있는 마인드가 있고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능력치도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깨달은 뒤에는 행동해야 한다. 이제는 아이들이 영유아시기를 지나 학령기 아이들이 되었다. 다르게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2년 정도 전부터 조금씩 삶의 면역력을 키우는 중이다.
이미 혼란스러워지고 AI시대가 된 이 현실을 거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을 더 잘 알고 있어야 그것을 잘 다룰 수 있게 된다. 해롭다고 차단만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게 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키우고 키워도 여전히 어려운 게 육아고 부모노릇인 것 같다. 배운 적도 없고 정답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며 해내야 하는 가혹한 행복이다. 마흔이 되었지만 여전히 덜 큰 것 같은 내가 다른 누군가를 키워야 한다. 나도 아직 세상을 잘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데 그 길을 아이들에게 일러야 한다. 아이들을 키우며 정작 가장 많이 크는 건 부모 자신들이다. 어른이어서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를 키우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키워져야 한다. 내가 나를 잘 키워야 아이를 키울 힘이 생긴다. 나를 키워준 부모의 몫은 내가 성인이 되면서 이미 끝났다. 그 뒤부터는 내가 나를 책임지고 키워야 한다. 어떤 부족함이 있든 어떤 결핍이 있든 남은 건 내가 살면서 해결해야 할 나의 몫인 것이다.
작년 말 문화회관에서 열린 인문학 강연에 갔을 때 김형석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 인격과 지식을 스스로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가 나를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100세 인생을 대비해서 내가 나를 어떻게 키울 건지 고민하세요."
이 말이 내 안에서 자꾸 상기된다. 그러면서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나를 어떻게 키웠나. 어떻게 키우고 있나. 어떻게 키울 것인가. 어떻게 키우고 싶어 하는가.
옛말에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성인이 된 지 겨우 얼마 되지도 않은 때에 그 어리숙한 어른 둘이서 아등바등 아이를 키우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그 도움 손들을 대신 해 기기들이 수고하고 있는지도)
대가족제도나 마을 공동체가 일상이던 시대에는 온 동네 어른들이 부모였을 것이다. 이제는 핵가족을 넘어 핵개인의 시대로 가고 있다. 결국 내가 나를 잘 키워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핵심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키울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가장 크게 자랄 수 있는 존재들이 인간이지 않을까.
한 인간의 성장은 끝이 없다.
아이도 키우고 나도 키우고 열심히 키워보자.
키우는 일의 숭고함을 만끽하자.
무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