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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Sep 27. 2022

생각을 기르는 법

아홉번째 글쓰기 모임을 앞두고

어느덧 아홉번째 글쓰기 모임을 앞두고 있다. 모임 초반인지라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다보니 멤버에 따라 쓴 횟수는 차이를 보인다. 가장 많이 쓴 사람이 아홉번의 글을 썼고, 가장 적게 쓴 사람이 첫 글을 써냈다.


모임을 하면서 강조한 것 중 하나는 타인의 글과 내 글을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글도 삶과 같아서 속도와 방향이 차이날 수밖에 없는데, 그걸 비교하기 시작하면 치유를 위해 시작한 글쓰기가 스트레스가 된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글쓰기가 자신을 향한 채찍이 된다.


글은 쓸수록 실력이 늘어난다. 글도 기술과 같아서 반복하면 표현이 다채로워지고 문장이 매끄러워진다. 오래 쓴 멤버들은 따로 내가 세부적인 첨삭을 하지 않았는데도 금세 좋은 문장들을 써내기 시작했다. 글을 쓸수록 글을 많이 읽게 되니 자연스런 결과였다.


하지만 생각은 달랐다.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를 서술하는 실력은 점점 좋아졌지만, 글 실력이 늘어난다해서 생각이 깊어지진 않았다. 에세이는 잘 찾은 에피소드에 나의 생각을 얹어야만 하는데 생각이 빠진 채 에피소드만 나열하는 것으로 고착화하는 글들이 눈에 띄었다.


어떻게 하면 생각이 깊어질 수 있을까. 그 깊어진 생각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게는 익숙한 길이지만 방법을 알려주기는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망설이던 찰나 한 멤버의 글을 보게 되었다.


이 멤버는 마감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글을 제출했다. 늦게라도 좋으니 내기만 해달라고 말했지만, 멤버가 조급해진 마음 때문에 중간에 포기할까봐 염려가 많이 됐다. 멤버는 글이 자꾸 산으로 가 마무리가 잘 되지 않는다며 속상해 했고, 나는 산으로 갈수록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거라 독려했다. 글 안에서 길을 잃어봐야, 글 안에서 스스로가 펼칠 수 있는 생각들을 마음껏 펼쳐봐야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기에.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멤버가 글을 올렸다. 조급하단 말이 엄살이었을까. 멤버의  속에는 풍부한 사유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읽고난  눈물이  돌았다.  글을 쓰기 위해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물음을 던졌을까 싶은 마음에, 그리고 조급한데도 불구하고 결국 완주한 멤버의 성실함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 멤버의 글을 보면서 나는 정말 행복했다. 글을 통해 생각의 힘을 길러가고 끈기와 인내로 결국 그 생각을 활자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좋은 글을 쓴 멤버에게 질투가 나거나 위기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기쁨과 환희를 느끼는 내 자신도 조금 대견했다. 이 맛에 모임을 하는 걸까 싶었던 순간이었다.


글쓰기는 시험이 아니다. 글쓰기를 달리기에 비유하자면 단거리보다는 장거리와 유사하다. 기록 싸움이 아닌 완주가 목표인 달리기. 매일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생각의 끈을 놓지 않는 것. 생각은 힘이 세다. 그 생각의 시작은 물음이어야 한다. 나에 대한 물음, 상대에 대한 물음, 세상에 대한 물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이 혹여 엉성하더라도 찾은 데까지라도 활자화해야 한다. 그래야 그 글이 비로소 완전한 내 것이 된다. 나만의 생각과 글이 된다.


생각의 힘을 기르는 방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내게 답을 쥐어준 멤버가 너무나 고맙다. 내게 습관이 된 것들을 누군가에게 체계적으로 보여주기는 참 어렵다. 오래 전 나를 깨웠던 수많은 질문들을 떠올린다. 나로 살고 싶어 몸부림쳤던, 스스로가 이방인이란 사실에 괴로워했던 그 많은 밤들을 기억한다.


글을 매일 쓴 건 겨우 일 년이지만, 내가 마치 기다렸다는듯 글을 쏟아낼 수 있었던 건 늘 생각했기 때문이다. 쓰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나는 늘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은 좋은 사람이 쓴 글이었기에,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생각에 한 사람의 말과 행동도 허투루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세상의 수많은 부조리에 함께 아파하고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어야 했다. 그 시간들이 나를 결국 쓰는 삶으로 이끌었다. 보이지 않는 내 안의 분투를 보여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글이었다.


그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늘려야 하는 건 글쓰기 실력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라고 힘주어 말해야겠다. 그렇게 멤버들이 사유의 힘을 기르고, 글쓰기를 통해 그 사유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고, 그걸 바탕으로 더 단단한 자신으로 거듭나라고, 그리고 그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라고, 그렇게 말해야겠다. 떨리는 모임 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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