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홍수 속에 단비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뜨거운 안녕을 맞이한 뒤 내려진 결론이 흥미로워 몇 자 적어본다. 내가 흥미로웠던 지점은 이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세 명의 가수에 대한 면면이다. 탑3가 된 이승윤, 정홍일 그리고 이무진이 그 주인공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상당히 시스템화 되어가고 있다. 기업이 시스템화 된다면 그건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재벌 총수가 구속이 되어도 시스템화 되어 있기에 기업 운영에 큰 타격이 없다. 지자체나 정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탄핵과 자살 등 일련의 충격적인 사회적 결과 속에서도 굳건히 굴러가는 시스템을 보아왔다. 그만큼 시스템이 사회 곳곳에 갖추어져 있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헌데 그 시스템이 사람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적용된다면 어떨까. 언제부턴가 연예계 특히 음악계는 시스템 속에서 굴러가기 시작했다.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키우기 시스템은 이미 탄탄한 역사를 갖게 되었다. 수많은 아이돌들이 이 시스템 속에서 자리를 잡았고 K팝이란 이름으로 전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예전과는 다르게 아이돌 출신이라고 하면 우선 믿음이 간다. 지난한 연습과정 속에서 탄탄하게 다져진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믿음말이다.
<싱어게인> 참가자 중에도 아이돌 출신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초아, 이소정, 태호 등은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다. 이들의 실력은 라운드가 거듭되면서 빛이 났다. 외모, 춤, 편곡, 가창력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다. 끼만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성실함과 열정으로 가득찬 이들의 노력으로 빚어낸 무대는 분명 대단했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분명 이들이 뛰어난 데도 왜 탑3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까. 탑3를 결정하는 데는 대중의 선택이 상당 부분 차지했다. 흥미로운 건 이번 탑3를 향한 평가는 심사위원단과 대중의 선택이 상당히 일치했다는 점이다. 시스템 속에서 실력을 갖게된 이들과 탑3는 무엇이 달랐을까. 대중은 왜 시스템과 관련이 없는 이들을 탑3로 뽑았을까.
탑3는 모두 시스템 속에서 자란 이들이 아니다. 이승윤 가수는 자신의 세계 안에서 음악을 하던 사람이다. 방구석에서 음악을 듣고 음악을 만들어왔다. 기존 기획사의 틀에서 자란 가수가 아니다. 장르가 30호라고 불리는 것처럼 그의 음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음악의 흐름을 깬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음악 안에 녹였고 대중의 사랑까지 얻었다.
정홍일 가수 또한 시스템 속에서 자란 가수가 아니다. 그는 성인이 된 뒤 일반 직장 생활을 하다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십대 때부터 일상을 올인하며 준비하는 아이돌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그는 어찌 보면 뒤늦게(?) 음악을 시작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장르에 올인해왔다.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며 깊이 있게 헤비메탈을 지켜온 인물이다.
이무진 가수 역시 시스템과는 거리가 있다. 다소 늦은(?) 고3 중반에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재수를 거쳐 서울예대에 합격했다. 역시 기획사가 키워내는 시스템 속에서 자란 아이돌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자신만의 색깔을 어린 나이에 이미 갖고 있는 독특한 존재다. 오래된 음악들이 그의 손을 거치고 그의 목소리로 불리우면 옛향수를 지닌 최신 음악으로 탈바꿈한다.
코로나로 인해 교육의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교육이 통째로 사교육화 되어 있는 한국사회에 코로나가 닥쳤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부모들은 자식이 관심이 있는 분야라면 그게 영어, 수학이든 미술, 음악이든 일단 학원으로 향한다. 학원은 시스템이 갖춰진 곳이다. 어떻게 공부하고 연습해야 그 분야의 한복판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는 곳.
요즘 부모들은 그런 시스템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 길로 갈 수 없다고 믿는다. 아이들을 하루라도 빨리 그 시스템 속으로 끌어들여 재능을 개발하고, 관심사를 축소한다. 남들보다 하루라도 먼저 그 길에 들어가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이전 시대에 경기고, 서울대가 있었다면 이제는 그 라인이 더 세분화되고 구체화된 게 지금의 한국 사회다. 어떤 대학 전형이 나오더라도 그 전형에 맞춰 기가막히게 또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학원이 있고 그 곳에 아이들을 떠미는 부모들이 있다. 연예계 기획사는 그런 학원과 괘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치뤄진 경연 프로그램에서 탑3에 들어간 가수의 면면이 그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다는 건 많은 시사점을 준다. 유희열 심사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야 노래도 깊이 있게 좋아하게 된다. 그 매력이란 것은 결코 시스템 속에서 길러지는 게 아니다. 시스템은 사람의 실력과 매력을 획일화시킨다. 면면이 뛰어난 데도 매력을 느낄 수 없는 건 고유한 색이 없기 때문이다. 실력을 쌓긴 했지만 그 속에서 나만의 개성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대중의 사랑을 받기가 어렵다. 실력은 있지만 뭔가 한끗이 부족해 보이는 건 바로 이 사람의 매력과 개성의 결여에서 온다.
다시 시스템화 되어 있는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아이를 기르면서 우리는 수많은 유혹들에 놓이게 된다. 지금쯤 영어를 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아이들을 이렇게 놀려도 되는 걸까. 옆집 아이처럼 우리 아이도 사교육을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너무 적게 투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웬만한 강단이 아니고서야 사실 한국사회에서 나만의 가치로 중심을 잡고 아이들을 키운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시스템 속으로 보내는 건 아이를 키우는 가장 쉬운 방법인지도 모른다. 부모라고 해서 모든 분야를 알 수는 없으니 학원이 발달한 나라에서 하루빨리 학원을 보내 정해진 길을 가도록 서포트하는 게 맞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회에서 우리 아이는 정말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는 매력적인 사람으로 커갈 수 있을까. 혹여 그렇고 그런 스펙을 가진 획일화된 사람 중 하나로 자라는 건 아닐까.
강단이 있는 부모가 되어 자유롭게 아이들을 키우고 그 아이들이 보답해 개성있는 존재로 자란다 해도 이 사회에 존재를 알릴 기회가 없다면 모든 노력은 수포가 된다. <싱어게인>의 탑3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자신의 색을 갖고 있다 한들 대중에게 소개되는 기회가 없다면 그들의 색은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만 했을 것이다.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그들이 설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준비돼 있던 그들이 대중과 마침내 만날 수 있었다. 대중은 한 눈에 그들의 색깔을 알아보고 마음을 열었다. 코로나 시대에 단비같은 만남이었다.
우리 사회는 기회가 별로 없다. 길을 한 번 잘못 들어서면 다시 뒤돌아나온다 해도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나이를 따지고, 학력을 따지는 사회에서 뒤늦게 자신을 알고 길을 고쳐 잡아도 사회는 그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단지 남들보다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 방황을 실수로 여기는 사회에서 우리는 대체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부모들이 아이들을 하루빨리 시스템 속으로 들여보내려는 이유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길을 찾고 실수없이 한 길을 제대로 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말이다.
기회가 많은 사회라면 어떨까. 실수를 당연한 과정이라고 인정하는 사회라면 어떨까. 부모들이 어린 나이의 자녀들을 조급하게 내모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자식이 어떤 선택을 하든 실수해도 좋으니 한번 걸어가 보라고 맘껏 응원할 수 있지 않을까. 실수가 있었던 사람에게도, 한눈을 팔았던 사람에게도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라면 우리는 아마 더 많은 모험을 하고,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언제든 다시 일어날 기회가 있으니.
코로나로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거나 가게를 내놓는다. 그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그들은 기회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다시 일어설 기회, 다시 시작할 기회. 예고없이 불어닥친 전염병에 스러져가는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다. 사회 초년생 뿐만 아니라 그 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필요하다.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은 그 기회로부터 나온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싱어게인>이 필요하다. 그들의 의지를 붙잡아주고 다시 해볼 수 있다고 어게인 버튼을 기꺼이 눌러주는 터전이 절실하다. 다시 한번 공정한 경쟁 속에 뛰어들 수 있다는 믿음이 간절하다. <싱어게인>이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