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마냥 쉬고 싶은 날. 쉬어갈 수 있는 글을 읽거나 쓰고 싶은 날. 힘을 준 문장도, 애써서 하고 싶은 말도 없는 그저 물 흐르듯 따라갈 수 있는 그런 글. 오늘이 마침 그런 날이다. 그런 글을 읽을 수 없을 때는 내가 그런 글을 써야지 마음을 먹는다. 그러려면 우선 몸부터 힘을 빼야 한다. 어깨도 손가락도 최대한 힘을 빼고, 노트북 위에 털썩 올려놓는다. 이런 글을 쓸 때는 머리도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운다. 그 어떤 무게도 싣지 않는 글을 쓰리라. 마음 가는 대로 쓰리라. 읽어도 읽어도 더 읽고만 싶은 글을 쓰고 싶다.
매주 토요일은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는 날이다. 일요일도 아니고, 월요일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토요일이 되었다. 아직 쥐어주는 돈은 많지 않다. 깡시골이라 돈을 쓸 곳 자체가 없기도 하고, 시험 삼아 주는 용돈이라 적은 금액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둘째가 지갑을 들고 돌아다니며 용돈을 외친다. 지갑 두둑이 돈이 있는 첫째와 달리 둘째의 지갑에는 고작 600원이 남았다. 지폐를 채우고 싶은 욕심에 아침부터 성화다.
장사를 하는 집이라 다행히 각종 지폐가 늘 구비돼 있다. 돈지갑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 일부는 첫째 몫으로, 일부는 둘째 몫으로 준다. 둘째는 받자마자 신이 나서 용돈기입장을 꺼내든다. 쓰는 법을 알려주었더니 이제는 자신들이 알아서 적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필을 쥐고 남은 돈이 얼만데, 얼마를 더 용돈으로 받아 총 얼마가 되었다고 적는다. 삐뚤빼뚤 글씨도 맞춤법도 엉망이지만, 무언가를 적는 것만으로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그냥 둔다. 수천 원의 돈을 수십만 원으로 적었기에, 그것만 고쳐주었다.
"엄마 나 껌 사러 가도 돼?"
동네에는 아주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있다. 작고 작은 말 그대로 구멍가게. 이웃 삼춘이 가게에 딸린 방에서 기거하면서 운영하는 오래된 가게다. 용돈을 주기 전에도 가끔 아이들 손에 오백 원짜리를 쥐어주면, 아이들은 그 동전을 들고 쪼르르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가게 앞에 놓인 뽑기 기계에 오백 원짜리를 넣어, 별 필요는 없지만 나오면 신기한 잡다한 물건들을 뽑아오곤 했다.
요즘은 뽑기보다는 껌을 사 온다. 풍선을 아직 불 줄 몰라 입에서 오물오물 시도만 하다 결국 단물이 빠지면 뱉어내지만, 오래도록 입안에서 우물댈 수 있는 껌이 좋은 모양이다. 둘째는 지갑을 들고 호기롭게 혼자 구멍가게로 갔다가 울상이 되어 돌아왔다. 방에 있는 삼춘이 아이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모양이다. 혼자서는 자신이 없는지 형아를 부른다. 블록을 조립하다 말고 엉거주춤 신발을 꿰어 신고 못 이기는 척 첫째가 나온다.
"차 조심해!"
바람처럼 골목을 달려가는 아이들 뒤통수에 소리를 친다. 아이들은 봄날의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며 구멍가게로 내달린다. 잠시 뒤 또 바람처럼 달려오는 아이들. 아이들이 뛰는 데는 이유가 없다. 단지 뛴다. 그저 달린다. 몸과 마음이 가벼운 아이들만의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잰 발걸음을 놀리는 둘째의 손에 딸기맛 풍선껌이 들어있다. 드디어 원하던 걸 손에 쥐어 얼굴에는 기쁨이 한가득이다.
오백 원짜리를 내면 되는데 천 원짜리를 내 오백 원짜리가 두 개가 되었다며, 천 원으로 바꿔달라고 한다. 가게 돈통에 오백 원짜리 두 개를 넣고 천 원을 꺼내준다. 이왕 연 김에 오십 원짜리를 보여준다.
"오십 원짜리 처음 봤지?"
아이는 신기하다며 눈을 반짝인다.
"십 원짜리도 갖고 싶다고 했지?"
아이는 이제는 잘 쓰지 않는 돈에도 관심을 보이고 갖고 싶어 한다. 돈통에서 오십 원짜리 두 개, 십 원짜리 두 개를 꺼내어 둘째 손에 쥐어준다.
"형아랑 하나씩 나눠 가져."
아이는 너무 고맙다고 펄쩍 뛰며 동전을 꼭 쥐고 형아에게 뛰어간다. 아이들은 아마 집에 가서 또 용돈기입장에 오늘 공짜로 얻은 60원을 적고 있을 것이다. 딸기맛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추억에 대해 곱씹는다. 지금 어른들은 모두 가슴속에 어릴 적 드나들던 작은 구멍가게 하나씩을 갖고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 가장 부러웠던 건 그런 가게의 주인을 부모로 둔 아이들이었다. 뭐든지 집어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아 부러워했던 친구. 구멍가게가 남아있는 동네는 몇이나 될까. 동네마다 깔끔하고 세련된 편의점이 들어섰으니, 낡고 허름한 구멍가게는 많이 사라졌겠지. 학교 앞 문방구도 온라인과 대형 문구점의 영향으로 사라지는 추세라고 한다. 우리 동네만 너무 시골이어서 학교 앞에 문방구 하나 없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일한 내 죽마고우의 집은 학교 앞 문방구였다. 꽤 학생수가 많은 학교여서 학교 앞에만 네 개의 문방구가 있었다. 그중 가장 작은 곳이 친구네 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친구는 내게 지나가듯 이런 말을 뱉었다.
"아빠가 50원짜리 도화지 팔아서 번 돈으로 우리 가족이 먹고사는 거야."
그 말이 한동안 잊히지 않고 귓가를 맴돌았다.
다른 문방구들은 종이로 된 오십 원짜리 뽑기나 백 원짜리 달고나 등으로 부수익을 올리는데, 친구네는 그런 게 없어 아이들 사이에 인기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친한 친구네라는 이유로 작아도 꼭 그곳으로 가서 학용품이나 준비물을 샀다. 뭘 사기 위해 가기도 했지만, 주로 친구를 부르러 갔다. 친구 아버지는 웃는 모습을 좀체 보이지 않는 엄한 분이었는데, 내가 갈 때마다 성난 목소리로 친구를 불러주셨다. 친구가 아버지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나오면 우리는 같이 학원을 가기도 하고, 고무줄놀이를 하기도 했다.
많은 것들이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구멍가게라는 말도 조만간 사라지겠구나, 이 생각을 하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린 시절 쏘다니던 거리와 가게들이 소환됐다. 길은 변치 않는 것 같은데, 길을 바라보는 건물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또 변한다. 변치 않는 것들이 조금 그리워진다. 이제는 낡았다고 허름하다고 더럽다고 취급받는 것들이, 이따금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내가 그리운 건 잃어버린 공간일까,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일까.
먼 훗날 아이들에게 기억될 골목과 구멍가게를 떠올린다. 나보다 더 큰 어른이 된 어느 날, 아이들은 용돈을 들고 뛰어가 이것저것 간식을 사 오던 지금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한 기억이라면 참 좋겠다. 떠올리기만 해도 진저리 나는 지긋지긋한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억은 다르게 새겨지고, 내 자식이라고는 하나 타인인 아이들의 기억까지 내가 욕심을 내서는 안 되겠지만.
늘 제 갈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시간 덕분에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예년보다 따뜻한 기온에 벌써 모기들이 보이고, 벌들이 꽃을 찾아 비행한다. 마당 수국 나무의 연둣빛 잎은 한두 개에서 수십 개로 늘어났다. 잔디보다 먼저 자라난 잡초가 초록 얼굴을 말갛게 드러낸다. 미세먼지가 좀 잠잠해지면 잡초부터 뽑아야지. 작은 것에 마냥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웃음을 닮고 싶은 날이다. 너희들 덕분에 잠시나마 다시 아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