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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Aug 16. 2023

신과 함께 거닐고자 했던 소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고

학교 독서모임에서 <월든> 책이 선정됐을 때, 나는 이 책은 물론 작가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바가 거의 없었다. 고전이라기에 소설인가 하고 오해했을 정도로 나는 무지했다. 오백 쪽이라는 만만찮은 분량 때문에 독서가 익숙지 않은 다른 멤버들이 혹시 힘겨워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읽다 보니 중간에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아 남의 걱정만 할 때가 아니란 걸 절감했지만.


독서모임은 한 달에 한 번이다. 책을 손에 받아보면 고민에 빠진다. 지금 읽을까, 나중에 읽을까. 궁금한 마음에 앞부분을 좀 읽다 보면 나중에 모임을 할 때쯤에는 잊어버릴까 염려가 된다. 그래서 보통 후반부는 모임 직전에 읽는 경우가 많다. 멈출 수 없는 책이라면 그냥 읽어버리지만. <월든>은 길고 긴 에세이이고, 중간에 잘 읽히지 않는 부분이 있어 고민이 됐다. 계속 읽어 말어. 


다른 책을 잡아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결국 다시 <월든>을 들고 며칠을 끙끙 대며 마의 구간을 간신히 통과했다. 그렇게 만난 마지막 장. 이래서 고전이 되었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힘겹게 마쳤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이 있다. 이 맛을 잘 알아 읽히든 읽히지 않든 또 책을 펼쳐든다. 각종 유혹을 떨치고.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은행나무 출판


잘 알려진 것처럼 <월든>은 소로가 월든 호수 근처에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생활한 2년 2개월 2일의 기록이 담긴 책이다. 탐욕과 성공만을 향해 가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스스로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아보고자 했던 도전의 삶은 그렇게 방대한 기록으로 남았다. 책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숲 속에서의 삶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사실 1장에서 소로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다 털어놓는다. 굵직하고 밀도 있는 이야기들이 초반에 잔뜩 등장하기에, 오히려 자연 속에서의 삶과 풍경을 그리는데 대부분을 할애한 중간 부분을 읽어내는 게 힘들었다. 아니 소로는 뭣하러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로는 그곳에서 만난 동물과 사람, 풍경을 그리는 데 많은 종이를 할애한다.


1장에서의 소로 이미지는 무척 오만했다. 소로는 성공을 향해, 풍족한 삶을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자신이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듯하다. 그런 태도가 좀 불편했다. 깨달았다는 이유로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위에 군림한다면, 그걸 진정한 깨달음이라 할 수 있을까. 


글쓴이에 대한 의심을 품고 읽어 내려가던 내가 결국 마지막 장에서 그에 대한 오해를 푼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장황하게 설명한 바로 그 대목 때문이었다. 숲 속에서 계절의 미세한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예민하게 주변의 사물과 동물들을 포착하며, 자연과 인간을 직접 탐구했던 소로. 소로는 진실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바랐구나, 자연을 탐색하고 자연 속에 있는 걸 사랑했구나. 그 순수함을 맞닥뜨리자 소로가 더 이상 오만해 보이지 않았다. 평생 목수나 측량 일을 하며 소박하게 살아온 진짜 삶의 모습도 그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자신에게 온 기회나 능력을 쉽게 돈으로 환원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돈 없이 생활할 수 있고 돈 없이 지혜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던 소로. 아무리 말로 전하려 해도 일반 대중들이 그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고 내면화하는 게 어렵다는 걸 깨달으며 절망에 빠지기도 했던 소로. 깨달음은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와 연결되는 지점이 반가우면서도 무척 답답했다.


<싯다르타>에서 주인공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 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깨달은 자가 깨닫지 못한 자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그에 반해 소로는 그런 세상의 진보보다 개인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의 가치에 더 주목한다. 개인들의 내면의 성장이 사회 전체의 발전이나 성장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근본 사상이 바탕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인생책으로 꼽는 이유는 아마도 성공과 탐욕을 부정하지 않고 살아온 지난 삶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제주에 내려오며 스스로 가난한 삶을 선택했다 여겼던 나라서 그런지, 이 책은 내게 커다란 도끼는 아니었다. 신문물에 대한 욕망도 유행에 대한 좇음도 없는 삶을 살다 보니 더욱 그랬다. 그런데도 그가 끝까지 진실을 추구하고, 스스로 본이 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 데에 대해 존경스러운 마음이 우러났다. 수많은 반짝이는 것들을 뒤로하고, 세상과 내면의 진실을 알아보는 힘을 기르고자 분투하는 한 사람의 서사를 보는 것만큼 큰 감동이 있을까.


이제 나는 지루했던 마의 구간을 다시 펼치려 한다. 삶의 쉼이 필요할 때마다 문득문득 그가 찬양하던 깊고 푸른 월든 호수와 재잘대고 바스락거리는 동물들, 빗물과 식물이 한데 엉켜 흘러 내려가던 모습, 호수와 대지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하얗고 두텁게 눈 덮인 풍경이 떠오를 것만 같다. 그 풍경 속에서 쉬고 싶을 때마다 나는 그의 문장을 떠올리게 되리라. 그리고 그처럼 내 삶에 더 많은 여백을 내리라. 나의 월든에서.



"시 한 줄을 장식하는 것이

나의 꿈은 아니다.

내가 월든 호수에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

나는 나의 호수의 돌 깔린 기슭이며

그 위를 스쳐가는 산들바람이다.

내 손바닥에는

호수의 물과 모래가 담겨 있으며,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내 생각 드높은 곳에 떠 있다."   


"나이 많음이 젊음보다도 더 나은 선생이 될 수 없고 어쩌면 그보다 못하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나이 먹는 과정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인생의 과정에서 절대적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배우지는 못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p24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심오한 사색을 한다거나 어떤 학파를 세운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너무나도 사랑하여 그것의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 너그럽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자가 되는 것은 인생의 문제들을 그 일부분이나마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p33


"나 역시 하나의 바구니, 올이 섬세한 바구니 하나를 엮어놓았으나 그것을 남이 살 만한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경우에 그 바구니는 역시 엮을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남이 살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팔지 않아도 될 것인가를 연구했다.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한 가지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p40


"만약 우리가 필연적인 것과 당연히 존재할 권리가 있는 것만을 존중한다면 음악과 시가 거리에 흘러넘칠 것이다. 우리가 서두르지 않고 분별력을 발휘할 때, 오직 위대하고 가치 있는 것들만이 항구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사소한 두려움이나 사소한 쾌락은 참된 현실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숭고한 진리는 항상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p147


"그 당시 나는 정말로 부유했다. 금전상으로가 아니라 양지바른 시간과 여름의 날들을 풍부하게 가졌다는 의미에서 그러했던 것이다." p288


"자기 내부에서 동물적인 요소가 날마다 조금씩 죽어가고 신적인 면이 확립되어가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매우 행복한 사람이다." p329


"진실로 바라건대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 그리하여 무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위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라."p473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박자가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p482


"지는 해는 부자의 저택이나 마찬가지로 양로원의 창에도 밝게 비친다. 봄이 오면 양로원 문 앞의 눈도 역시 녹는다. 인생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런 곳에 살더라도 마치 궁전에 사는 것처럼 만족한 마음과 유쾌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p485


"나는 내 자신의 본연의 자세에 돌아와서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나는 남의 눈에 잘 띄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화려하게 과시하며 돌아다니기보다는, 가능하다면 우주를 창조한 분과 함께 거닐어보고 싶다." p487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이 단순한 시간의 경과만 가지고는 결코 동트게 할 수 없는 저 아침의 성격인 것이다. 우리의 눈을 감기는 빛은 우리에겐 어두움에 불과하다. 우리가 깨어 기다리는 날만이 동이 트는 것이다. 동이 틀 날은 또 있다. 태양은 단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p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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