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의 의식, 낭만, 그리고 상실

by 박순우

여행을 갈 때마다 엽서를 샀다. 왜 엽서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경비가 넉넉지 못한 여행객이 가장 손쉽게 살 수 있는 기념품이 엽서였을까. 가볍고 부피가 작으니 지니기에도 적합했을 것이다. 스물다섯, 홀로 떠난 첫 여행지는 유럽이었다. 십육 년 전 일이지만, 개선문이 보이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판매대를 빙빙 돌리며 엽서를 골랐던 기억은 선명하기만 하다. 보통 1유로면 살 수 있는 엽서를 당시 나는 거의 두 배를 주고 샀다. 에펠탑과 샹젤리제 거리, 몽마르트르 언덕이 흑백사진으로 담긴 엽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 같았고, 가난한 여행객의 지갑은 속절없이 열렸다.


내가 수집하려고 산 엽서도 있었지만, 친구들에게 보내기 위해 엽서를 구입하기도 했다. 베르사유 정원에 앉아 보고 싶은 얼굴들을 떠올리며 엽서를 적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친구에게 보낸 엽서가 어떤 그림이나 사진을 담고 있었는지도 완전히 잊어버렸다. 스마트폰이 흔한 시절이었다면 일일이 사진을 찍어 남겨 두었을 텐데… 어쩌면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더 열심히 엽서를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이라면 사진을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혼자가 만족스러웠지만, 숨 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 속에 앉아 있을 때면 그리운 얼굴들이 뭉게뭉게 떠올랐다. 혼자이면서도 함께일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내게는 엽서 쓰기였다. 나누고 싶은 풍경을 담은 엽서에 두서없는 사유들을 나열하곤 멀리 있는 친구에게 보냈다. 감정 표현에 미숙한 사람이었지만 함께 보고 싶다는 마음을,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을, 서툴게나마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


수많은 엽서들. 어떤 시절의, 어떤 공간의 유일한 증거. ©unsplash


엽서를 보내려면 우체국으로 가야 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여행안내소부터 들러 그 지역 지도를 받았다. 지도에서 우체국을 찾아 동그라미를 그렸다. 짧다면 짧은 여행의 순간을 쪼개어 일부러 도시마다 박혀 있는 우체국을 찾았다. 우체국은 도시마다 나라마다 다르면서도, 비슷했다. 사우스코리아로 가려면 얼마 짜리 우표를 붙여야 하는지를 직원에게 묻고, 건네받은 우표를 엽서에 붙이고, 우체통에 마음을 실어 툭 집어넣기까지. 내가 여행 중 가장 사랑했던 순간이다.


유독 모습이 뚜렷하게 떠오르는 우체국은 그리스 로도스 섬의 우체국이다. 섬에 머무는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우산을 들고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걷고, 종종 책을 읽고, 가끔 엽서를 썼다. 어쩌다 해라도 반짝이는 날이면 바닷가를 거닐거나, 언덕에 올라 기둥 몇 개밖에 남지 않은 고대 건축물들이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모습을 오래오래 눈에 담았다.


그 섬에서도 어김없이 우체국을 찾았다. 우산을 접고 우체국 문을 열어젖히자,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소품들, 벽과 천장을 수놓은 눈부신 불빛, 온화하고 다정한 오너먼트가 달린 트리까지. 그제야 나는 장마 같은 날씨 때문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음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체국은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빗물로 얼룩진 세상과 따스하고 포근한 세상으로 나뉘다니.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게, 서른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우체국. 도시마다 꼭 들렀던 추억의 장소다. ©unsplash


낯선 여행지에서도 유별히 위안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몽마르트르 언덕 위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우연히 들었던 오르간 소리, 네팔 룸비니에서 사진을 찍는 나를 향해 인력거꾼이 보여주던 안온한 미소, 이스탄불 블루모스크에서 고사리손으로 내게 간식을 나눠주던 상냥한 아이들, 동이 터올 무렵 툭툭을 타고 모퉁이를 돌자 마법처럼 불쑥 솟아나던 앙코르와트. 로도스 섬에서 크리스마스를 품은 우체국을 갑자기 만난 것도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제주에 카페를 열면서 작은 우체통을 하나 만들었다. 오픈 초창기에 오셨던 손님이 카페 그림을 그려주셨는데, 그 그림을 허락받고 엽서로 만들어 우체통 앞에 놔두었다. 우체국에서 미리 사온 우표도 카운터에 놓았다. 엽서를 쓰고 싶어 하는 손님이 있으면 언제든 엽서와 우표를 건넸다. 손님들은 지인에게 가족에게 혹은 자신에게 엽서를 적었다. 우체통에 담긴 엽서들은 바로 부치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도착할 거라 미리 손님들께 공지를 하고, 수개월이 지난 뒤 쌓인 엽서들을 모아 우체국으로 갔다. 제주의 향기가 엽서를 타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별 것 아닌 소소한 이벤트였지만, 잠깐 멈춰 서서 무언가를 끼적이고 떠올리는 시간이 여행객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랐다. 어쩌면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지에서만 깊은 잠을 자고 여행지에서만 평온한 마음이었던, 그 시절의 공허한 나를 그런 방식으로 달래고 싶었는지도. 제주를 찾은 여행객들 중에는 그 시절의 나와 비슷한 이들이 많았다. 방명록에 적힌 수많은 사연들을 읽으며 마음이 젖어들곤 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결국 섬으로 도피해 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한 숨을 내쉬는 공간이 우리 카페이기를 소망했다.


손님들의 엽서는 절대 읽지 않는 게 철칙이었다. 엽서의 장점은 글을 적을 공간이 작아 부담 없이 쓸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만인에게 내용이 공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장점 때문에 친구들에게는 그렇게 많은 엽서를 보냈으면서, 단점 때문에 정작 나 자신에게는 한 장의 엽서도 쓰지 못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이었기에 내게 보내는 엽서는 금기였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손님의 엽서를 단 한 번도 읽지 않았다. 비밀이기를, 애틋하기를, 훼손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우리 카페에서만 진행하던 이벤트는 인근 카페로 번져갔다. 장사 수완이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제주의 풍경을 담은 수많은 엽서들을 전시해 두고 손님들을 유혹했다. 돈벌이로 시작하지 않은 이벤트가 돈벌이로 전락하는 모습이 탐탁지 않았다. 고유성을 잃었다는 생각에 이벤트를 종료했다. 마침 제작한 엽서가 떨어지기도 했다. 이후 아이들이 태어났고 육아에 집중하는 시기를 거치면서, 엽서는 점점 내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여행지에서 사왔던 엽서들은 한때 카페 한 면을 채우는 장식으로 사용됐다. 지금은 모두 떼어내고 샹젤리제 거리에서 비싸게 사온 엽서 몇 장만이 벽면에 남아있다. 세월이 무색할 만큼 선명한 파리의 풍경이 그대로 박힌 엽서들. 비싼 값을 하는 걸까. 아무 말도 적히지 않은 텅 빈 엽서지만, 들여다볼 때면 풍경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길에서 길을 찾던 그때의 나를, 방황만이 전부였던 그 시절들을 기억하느냐고. 여행에서 길어 올린 몇 장의 엽서들은 그렇게 한 시절의 상징으로 남았다. 이제는 닿을 수 없는, 머나먼 아련한 애틋한 시절.


가장 비싸게 주고 샀던 엽서 세 장은 아직 카페 벽면에 붙어있다. ©박현안


언제부턴가 엽서를 사지 않는다. 그때처럼 여행을 자주 다니지도 않지만, 스마트폰을 많이 활용하게 된 게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여행지에서 더는 종이 지도를 펼치지 않는다. 대신 지도 어플을 이용해 손쉽게 목적지를 찾고 경로를 검색한다. 인공위성은 내가 선 위치를 지도상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영한다. 길을 잃는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성능 좋은 카메라를 탑재한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사진을 찍고, 곧바로 지인에게 전송도 한다.


일부러 기념품 가게에 들러 엽서를 고르고, 한적한 벤치나 풀밭에 앉아 문장들을 끼적이고, 우체국을 물어 물어 찾아가 마침내 우체통에 엽서를 툭 집어넣는 일은 이제 하지 않는다. 인터넷만 할 수 있다면 어디에 있든 시공간은 하나로 연결된다. 모든 게 빠르고 편리해졌는데, 자꾸 무언가를 잃은 것만 같다. 내가 잃은 건 엽서일까, 시절일까, 낭만일까.


다음 여행에서는 오랜만에 엽서를 사고 싶다. 아이들과 각자 마음에 드는 엽서를 고르고, 끼적이고, 지역 우체국을 찾아 부치는 일까지 함께 해보고 싶다. 아이들은 그 시절의 낭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나와는 다른 낭만을 쌓아가며 어른이 되겠지. 서로의 낭만을 자로 재며 비교하지는 말아야지. 대신 알려주고 싶다. 내가 한 시절 동안 사랑했던 어떤 의식을, 낭만을, 그리고 상실을.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우체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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