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마냥 봄날인 줄로만 알았는데, 언뜻 마주한 미세먼지 수치에 화들짝 놀랐다. 수치 위쪽에 뜨는 두 글자, 최악. 살갗에 닿는 온도만으로 봄인 줄 알았는데, 공기의 질을 따지지 않았구나. 겉보기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썩어 문드러진 우리 사회의 모습 같아 마음이 한겨울 칼바람을 맞은 듯 얼얼하다.
바깥은 여름인데 실내는 오히려 서늘하다. 공기도 정화할 겸 냉난방기를 가동한다. 별 생각 없이 열어본 스마트폰 창에 홍세화 선생님의 부고가 뜬다. 손끝이 얼어붙는다. 사월인데, 사월인데. 사월이면 날씨와 상관 없이 마음이 시리곤 하는데, 선생님이 가셨다는 말에 시린 가슴이 쿵 내려앉기까지 한다.
딱 한 번 지근거리에서 선생님을 뵈었다. 동네 책방에서 열린 만남이었다. 당시 나는 아이들만 키우다 카페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첫째를 병설유치원에 보내자니 믿을 수 없는 한국 교육으로 밀어넣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도무지 안정되지 않았다. 그때 선생님의 강연을 용기 내어 찾아갔다. 홍세화가 누구인가. 젊은 날, 내가 생각이라는 걸 조금씩 갖게 되었을 무렵, 내게 새로운 통찰을 한 무더기씩 얹어주신 분이 아닌가.
당시 뵈었던 선생님의 모습은 많이 야위고 연세가 드셨지만, 속만은 여전히 파릇한 청년이었다. 여전히 매년 백 권 가까운 책을 읽으시고, 비판적 사고를 놓지 않으며,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세상에 일갈하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당시 길을 잃었던 내게 좌표가 되어준 문구 하나.
“교육이라기보다 차라리 집단 광란 상태라고 불러야 마땅한 그 도가니 속으로 자식을 보내면서 고민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생각의 좌표, 홍세화, p78>”
시대를 한 발도 아니고 두 발 앞서 가는 분들을 아주 가끔 목도하는데, 내게는 홍세화 선생님이 그런 분이었다. 끝까지 약자의 편에 서서 힘을 보태시고, 자칫 잘못하면 적을 만들 수 있는 어려운 발언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싸우셨던 홍세화 선생님의 세상을 향한 진심을 떠올린다.
어른임을 부정하는 나이에 글로 처음 뵈었는데, 어른임을 부정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글로 남은 고인의 생각을 매만지며. 글이 있어 다행이라고 되뇌며.
선생님의 마지막 칼럼을 나눈다.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 말할 수 있는 것도 특권에 속하는데, 적잖은 입이 말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삶은 신자유주의를 산다.”
“우군이 된 자연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도 소유주의가 끝없이 밀어붙인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성장하는 게 아니라 성숙하는 것이다.”
가장 정성껏 부고를 올린 프레시안 기사도 소개한다.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41814482840341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남긴다. 2년 전 인터뷰인데도 총선이 막 끝난 이 시점에, 정말 중요한 우리 사회의 화두가 다수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