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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May 16. 2024

집을 고치며

또 공사다. 올해 전반기는 공사의 날들로 채워지고 있다. 지붕공사와 카페를 글방으로 개조하는 공사, 옥상 방수공사가 올해 계획한 일들이다. 지붕공사를 가장 먼저 하고 글방 개조를 나중에 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순서가 뒤바뀌었다. 글방 개조와 옥상 방수를 거쳐 마지막으로 지붕공사에 돌입했다. 시끄럽고 부산한 날들이다.      


낯선 땅에 터를 잡고 집을 지은 지 십 년이 조금 넘었다.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이 밀려오는 제주에서는 십 년만 지나도 오래된 집이라고 말한다. 견적을 받으며 반복되는 옛날집이라는 호칭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아니 이제 겨우 십 년인데 옛날이라니. 서른이 넘은 뒤로는 시간의 흐름이 워낙 빠르게 느껴져 십 년도 잠깐이다 싶었는데. 그 잠깐 세월에 낡아가는 집을 보자니 속이 쓰렸다.     


곧 다가올 장마에, 태풍을 생각하면 지붕공사를 더는 미룰 수 없었다. 한두 푼으로 할 수 있는 공사가 아니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돈을 끌어와 보태야만 했다. 지금까지는 어찌저찌 공사비를 충당해왔는데 마무리가 잘 될지 미지수다. 부족한 돈을 어디서 메우지. 공사가 끝나면 말 그대로 통장이 아니라 텅장이 되어버릴 텐데, 그때는 또 어쩌나.      


주택에 산다는 건 내가 사는 집을 직접 매만지며 산다는 뜻이다. 매만질 재주도 없고, 몸도 부실한 데다, 직접 할 만한 규모도 아니라 결국은 돈이 필요했다. 부탁할 돈, 대신할 돈. 한동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집을 지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십 년 전 나는 집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일곱 살 무렵 부모님이 직접 집을 지으셨는데, 그 기억이 나를 겁 없이 집을 짓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새로 지은 집에서 채 십 년을 살지 않고 우리 가족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러니 나는 집을 짓는 것만 보았지, 보수 관리하는 건 제대로 보지 못한 셈이다. 그게 얼마나 품이 많이 들고,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모르면 용감하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었다. 그렇게 용감했던 결과를 나는 지금에서야 맞닥뜨린다.      

집도 글도 모두 짓는다는 표현을 쓴다. 설계를 하고 뼈대를 올리고 살을 덧대는 과정이 퍽 비슷하다. 하지만 집은 글이 아니다. 글은 잘못 쓰면 지우고 다시 쓰면 되지만, 집은 그렇지 않다. 돈도 사람도 노동도 자재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니, 한 번 세운 집을 다시 고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집을 고치며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변치 않는 집을 지을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건축업자도 아니면서 오갈 때마다 이 집 저 집을 기웃대며, 어떤 자재를 썼는지 꼼꼼히 들여다 본다. 어떻게 집을 지어야, 어떤 자재로 마감을 해야, 더 튼튼하게 오래 가는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변화무쌍한 제주 날씨를 오래오래 굳건히 버틸 수 있는 자재나 공법은 없어 보인다.      


수백 수천 년을 버텨온 건축물들이 새삼 경이롭다. 특히 여전히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는 건축물의 경우 지속적인 관리 없이는 사용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높은 아파트 줄 하나에 매달려 칠을 하고 유리를 닦는 사람들이 다르게 보인다. 누군가의 노동 없이 지속되는 건축물은 없기에.      


시골에 살면 우리가 당연하게 먹는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져 밥상 위까지 오르게 됐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작물 하나하나 사람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고, 날씨는 농사에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축산업은 아직 익숙지 않지만, 분명 비슷한 과정 속에 있을 것이다. 다른 게 있다면 죽이고 해체하는 작업이 추가된다는 것. 과정을 알면 밥상이 다르게 보인다.      


옷 역시 마찬가지다. 청바지 하나를 만들려면 면사 생산부터 염색, 직조, 워싱, 가공, 후처리까지 필요하다. 여기에 사용되는 물만 7000L,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만 32.5kg이라는 걸 알면 옷 하나 사는 게 쉽지 않다. 싸고 다양한 옷보다 비싸도 질 좋은 하나의 옷을 선택하게 된다.     


집도 그렇다. 다시 집을 짓는다면, 돈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자재를 써서 오래 가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작은 집을 지으리라. 결국 그게 돈과 자원을 아끼는 길이고 나와 세상을 위하는 길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경험을 해야만 알 수 있는 세상 앞에서 종종 무기력해진다. 허물 수 없는 집을 바라보며 오지 않을 미래를 상상할 밖에.      


나는 비싼 돈을 들여서야 집을 어떻게 짓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계속 아파트에 살았다면 몰랐겠지. 관심도 없었을 테고. 인간에게 꼭 필요한 의식주인데도, 우리는 왜 투자가치로서의 주住만 알고 몸을 보호하고 안락을 누리기 위한 집으로서의 주住는 모르는 걸까.      


손수 집을 짓고 식재료를 생산하고 옷을 만들어 입던 시절에서 점점 멀어진다. 이렇게 된 지 불과 백 년도 되지 않았을 텐데.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않으니 분명 대가 끊길 것이다. 무엇이든 개인이 만들기보다 사는 게 쉬운 시대다. 죽임의 과정을 알지 못해 마구 집어 먹을 수 있는 고기류, 생산 과정은 모르나 유행은 잘 알아 때때마다 장만하는 의류, 브랜드가 박힌 아파트면 어떻게 지었든 일단 합격인 주거까지.      


많은 것들이 그럴싸한 포장 뒤로 숨는다. 말끔히 포장되기까지의 과정은 생략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맥락이 실종된 시대. 서사와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와 편리함만 남은 시대를 살아간다. 해서 더 버거운 거겠지. 남들은 거들떠 보지 않는 과목들을 꾸역꾸역 공부해 시험을 치르는 느낌이랄까.     


내가 선택한 삶은 더 갖는 삶이 아니라 더 경험하고 느끼는 삶이니, 이걸로 되었다고 나를 다독인다. 지불의 대가는 경험이라 말하면 너무 그럴싸한 포장일까. 투자가치로서의 집이 아닌 그저 주住로서의 스위트 홈을 위해 돈을 쓴다. 쓰라린 마음은 이만 접고 높은 지붕에 종일 올라 뚝딱뚝딱 일을 해내는 분들의 안전만 생각해야지. 공사를 마무리하는 그날까지 제발 무탈하게 해주소서. 스위트 홈을 매만져 주는 귀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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