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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Jul 09. 2024

초보 토론선생님, 나를 위한 책

최재천 교수의 <숙론>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 덜컥 토론글쓰기 수업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내 오랜 욕망 때문이었다. 말과 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믿음과,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토론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은 욕망. 세상 모든 분야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있고, 대다수의 문제는 대화 부족에서 오는 경우가 많으니. 말로 소통하고 글로 깊이 들여다보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생각이 내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빨리 아이를 길러서 함께 토론하고 싶었다. 편견이 적은 아이들의 생각은 늘 신선한 자극이었고, 사안의 정곡을 찌를 때가 많았다. 그 귀한 생각들은 현실에 치여 쓸데없는 소리가 되거나 주입식 교육 아래 납작해지기 일쑤다. 그러니 토론에 대한 나의 갈망은 늘 흘러넘쳤다.


어릴 적부터 아빠와 논쟁을 즐겨 했다. 아빠를 생각하면 복잡한 심경이 들지만, 그럼에도 내가 가장 인정하는 부분은 권위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할아버지도 아빠도 우리집 남자들은 그 시절 다른 어른들에 비해 권위적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심부름을 자처하는 분이었고, 화를 절대 내지 않는 살아있는 부처같은 분이었다.


내가 아빠와 논쟁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성향에서부터 시작한다. 남들이 보면 싸움인데, 내게는 흥미로운 놀이였다. 물론 언성을 높이며 끝낸 적이 대부분이다. 머리가 커갈수록 아빠와 나의 의견 차는 커졌고, 아빠도 나도 토론을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뼛속 깊이 반골기질이 박힌 아이였다. 아빠의 말에 따르자면 따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고.


비록 싸움으로 끝날지라도 그 속에서 아빠는 나를 인정하고 나는 아빠를 인정하는 묘한 심리가 피어났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랐다 보니 자연스레 ‘어떻게 하면 논쟁이 아닌 진짜 토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오래 지니고 있었다.


대학에 와서야 나는 제대로 토론이라는 걸 하기 시작한다. 대학 새내기 시절의 독서토론 모임은 아는 게 많은 선배의 일방적인 강연 같았고, 언론고시 스터디를 할 때는 조금씩 생각이라는 게 생기면서 꽤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글을 쓰면서는 공론장을 표방한 플랫폼에서 글로 토론을 하곤 했다. 토론이나 대담 프로그램을 즐겨본 것도 경험이라면 경험일까.


그 미천한 경험으로 토론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기회를 준 분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수업 속에서 아이들의 한계 없는 생각을 바라보는 게 기쁘고, 진행자로서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게 행복하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명확한 단어나 개념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들을 짚어주고 이 거대한 세상이 돌아가는 대략의 흐름을 알려주려 노력한다. 아이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키워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2학기 수업을 앞두고 고민이 깊어졌다. 아이들이 토론은 즐기는 데 비해 글쓰기는 힘겨워 했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로 토론을 해야 아이들이 더 흥미를 느낄까,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글쓰기의 유익함을 알까, 하는 생각 속에 한동안 방황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들여다 보며 아이들이 피부로 느낄 만한 일들을 추리고, 그에 맞는 그림책을 고르고, 함께 토론하며 이야기가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본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최재천의 <숙론 熟論>. 나를 위해 책을 써주셨나 싶을 만큼, 지금의 나를 위한 책이었다. 토론 글쓰기 수업 말고도, 학교 일을 진행하면서 엇갈린 의견을 통합해야 할 때가 적잖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함께 문제를 인식하고 효과적으로 일을 추진해 나가려면 어떤 의견 수렴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좋은 리더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이어가던 차였다.


최재천 교수가 6~7년 가량 고심하고 썼다는 이 책은 200쪽 정도로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곳곳에 논쟁이 아닌 숙론을 적용할 수 있는지, 오랜 시간 고민하고 실천해 온 내용이 딱 필요한 만큼 담겼다. 통섭을 주장해 온 학자로서, 한 시대의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진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서는 다른 에너지가 나온다.


책을 덮으니 이슬처럼 방울방울 생각들이 맺힌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요란한 장맛비 속에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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