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아이들을 가르친다. 어른과 함께 쓰려고 글방 문을 열었는데 아이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 나 자신보다 내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기 때문일까. 나는 글이 치유라고 생각하는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다면, 나 자신의 치유보다 아이들의 치유가 더 우선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쓰는 행위가 결국 학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릴 적 나는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의문이 많은 아이였다. “대체 왜 이걸 배우는데?” “이걸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의문은 내가 관심 없는 과목에만 적용됐다. 과학이라든지, 사회라든지. 잘하는 과목은 대체 왜 배우는지 이해할 수 없어도 꽤 능동적으로 공부했다. 재밌었으니까. 할수록 성적도 나왔고. 물론 수학과 세계사뿐이었지만.
나무를 먼저 보는 사람이 있고 숲을 먼저 보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다. 숲이 파악되지 않으면 나무를 심을 수 없는 사람. 세계사가 좋았던 건 세상이라는 숲을 알려주는 과목이었기 때문일까. 수학이 좋았던 건 나만의 방식을 적용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정확하게 떨어지는 답이, 그저 좋았다. 세상 다른 문제들과는 달리 정리되어 있었고 명쾌했으니까.
사실 숲을 먼저 보는 사람에게 학습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는 바쁘다.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 하고 한 명 한 명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다. 교과서는 숲을 보여주기보다 나무를 내세우기 바쁘다. 그래야 진도를 제때 나갈 수 있고 그래야 아이들을 줄 세울 수 있으니까.
학교가 아닌 곳에서의 수업이니, 나부터가 숲을 먼저 파악해야 하는 사람이니, 나는 내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숲을 먼저 보여준다. 당장 글이 뭔지, 뭘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언어가 무엇인지, 읽고 써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먼저 보여준다. 그런 뒤에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간다.
인간에게 언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려고 빅뱅부터 설명을 시작한다. 138억 년 전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시공간의 창조와 태양계의 생성, 생명의 탄생을 거쳐 인간이 최초로 글자를 만든 5천 년 전까지 이어진다. 여러 인류 중에 왜 호모 사피엔스만이 지구에서 살아남았는지, 정교한 언어로 인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결국 글자를 만든 게 5천 년 밖에 되지 않았기에 우리에게는 글자를 해독할 유전자가 없다는 이야기로 나아간다. 그렇기에 꾸준히 읽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고, 그럼에도 우리의 뇌는 읽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읽고 쓰기를 함께 해야만 하는 이유와 그 효능까지 읊어댄다.
길고 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이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눈망울을 반짝이며 무척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게 무엇이든 어떤 의미가 있든 무조건 하기 싫고 귀찮다는 눈빛을 보내는 아이들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나도 덩달아 신이 나지만 후자의 경우 나까지 힘이 빠져버리고 만다.
가뜩이나 사춘기에 접어들어 말이 없고 표현도 떨떠름한 아이들을 만나면 그나마 남아있던 기운마저 소진하고 만다. 진화고 글자의 발명이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다짜고짜 쓰게 해야 했나 후회가 몰려온다. 어쩌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내가 이 일을 붙들고 있는 건 심플하게 말해 아이들이 좋아서다. 일부의 아이들은 흐리멍덩한 눈으로 내내 앉아있지만,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이 총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바라보면 어릴 적 내가 떠오른다. 믿을 만한 어른 하나 없이 외롭게 십 대를 보냈던 내가.
어느 한 명 예쁘지 않은 아이가 없다. 반항하면 하는 대로 산만하면 산만한 대로 초점이 없으면 없는 대로 안쓰러울 뿐 밉지는 않다. 제대로 마음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혼에게, 세상이 어떤 곳인지 차마 알지 못하고 계속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아이에게, 괜찮은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
나는 글쓰기를 가르치기보다 먼저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따르고 싶은 어른, 어딘가 조금 달라 보이는
어른, 믿을 만한 어른, 어떤 말도 할 수 있는 어른, 함께 있고 싶은 어른. 아이들에게 내가 좋은 어른이어야 눈에 초점이 없는 아이들도 결국 나를 따른다. 쓰기 싫다던 글도 잘 쓰고 싶어지고.
몸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된 밤이다. 처음 온 아이들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신뢰를 쌓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게 청소년기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그걸 알면서도 뛰어든 일이다. 탓하고 싶은 뾰족한 마음을 내려두어야겠다. 모든 건 내 잘못이 아니며 신뢰는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까. 유연하게 진심으로 나아가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