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했다면 '후회'는 남을 수 없다

사소하지만 거대한 분별의 힘에 대하여

by 무해




"최선을 다했는데도 후회가 남는다."


이 문장은 겉보기엔 인간적이고 성숙해 보이지만,
사실은 논리적 모순이다.

진짜 '최선'을 다했다면, '후회'는 남을 수 없다.

왜냐하면,
후회란 '가능한 다른 대안이 존재할 때'만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최선은 '그 시점의 나'가 가진 모든 조건과 한계 안에서 더 이상 선택지가 남지 않았던 상태다.

그 상황에서 '다르게 했어야 했다'는 생각은
이미 시간과 조건의 불가역성을 무시한,
'인지적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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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회는 "생각"이지, "감정"이 아니다


사람들이 흔히 '후회'를 감정처럼 사용하지만,
사실 후회는 생각의 오류이기 쉽다.

"그때의 나"가 아니라,
"지금의 나"의 시야로 "그때의 나"를 평가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후회'는 어쩌면,

'진짜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생기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내가 더 성장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후회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후회는 '의식의 진화'가 일어났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건 시간을 통제 가능한 변수로 착각하는 인지 왜곡이 되기도 한다.

'지금의 나'로는 그때의 선택을 바꿀 수 없고,
'그때의 나'는 지금의 시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과거를 전지전능한 시선으로 평가하곤 한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모든 걸 바꿀 수 있었을 텐데."

이건 신의 언어다.


인간의 시간은 단선적이며,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가질 수 없는 제약 속에서 존재했다.



이때의 후회란 결국,
'자의식 과잉에서 비롯된 통제 착각'의 부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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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이 질문이 꼬리를 물다 보면,
언제나 두 갈래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하나. "그때의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있었는데"
→ 여기에 깔려 있는 건 '다른 선택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 그래서 이건 자기비판적 후회로 이어진다.
→ 즉, "나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못 했다.'
→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뜻과 같다.



둘.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 여기에 깔려 있는 건 '인간의 조건과 맥락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 그래서 이건 수용적 아쉬움으로 변환된다.
→ 즉, "나는 그 순간 내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 후회가 아니라 당신의 손을 떠난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두 반응의 차이는 단순한 감정의 차이가 아니라,
'자기 인식의 성숙도' 차이다.

전자는 '자기가 전능하다는 환상'을 붙잡은 상태고,
후자는 '인간의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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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후회'의 핵심 오류


사람들이 말하는 후회의 대부분은 마치,

"내가 공룡시대에 살았었는데 공룡의 멸망을 막지 못해서 후회가 된다."

"(비트코인이 없던 세상에서) 내가 그때 비트코인을 투자하지 못해서 후회가 된다"

따위의 말을 하는 것과 같은 구조로 작동한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자책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불안'을 '통제'로 덮으려는 욕구가 강할수록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전지전능한 존재로 착각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회는 인간이 '자신을 과대평가한 인지 오류'이며,

최선을 다한 사람이 갖게 되는 진실한 인식의 결과는,
'후회'가 아니라 '아쉬움'이나 '그리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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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간의 한계 인식이 후회를 바로잡는다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실로 최선을 다했다면,
이건 변명이나 패배가 아니라
'실존적 진실에 대한 인식'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의미가 숨어 있다.

- 나는 '그 순간의 한계'를 인식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나'를 존중한다.
- 그리고 '지금의 나'로 그것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 혹은 '지금의 나'라도 내가 원하거나 필요하다면 한 번 더 반복할 의향이 있다.

이건 무기력이 아니라, 책임을 품은 수용이다.

진짜 성숙한 사람은
"내가 다 잘했어'라고 합리화하지도 않고,
"내가 다 망쳤어'라고 자책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때 나의 역량과 상황에서 정말 최선을 다했어.
모든 것이 완벽히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 한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지."


그 순간,
후회는 아쉬움이 되고
아쉬움은 지혜의 씨앗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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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후회는 잘못된 생각이지만,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다


사람의 뇌는 '시간'을 객관적으로 분리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쉬움이나 그리움을 '후회'라고 착각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설명이 옳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엄밀하기만 해서는 이 사회를 이해하며 살 수가 없으므로,
조금 덜 엄밀해져 보도록 한다.


사람은 자신 안에서 '인지를 정리하기 전에' 감정을 먼저 느껴버리고,
감정은 대개 현재형으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후회는 잘못된 '생각'이지만,
자연스러운 '감정'이자
인간 감정의 '흔한 오작동'일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건 '인지의 언어',
대부분 사람들이 사용하는 건 '감정의 언어'인 셈이다.


당신은 감정의 언어를 쓰는 사람인가?
인지의 언어를 쓰는 사람인가?
그 둘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사람인가?

깊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나는 감정의 언어를 수용하지 못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둘 다 갖고 살아야 한다.


단지,
감정의 언어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균형을 잡고 싶어졌을 뿐이다.



감정의 언어가 범람하면,

진실은 '가장 큰 목소리를 낸 감정'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설자리를 잃게 된다.

이성은 논리가 아닌 '위로'로 대체되고,

옳고 그름의 기준은 '누가 더 상처받았느냐'로 결정된다.

선동과 기만과 불신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균형은 기준을 잃고,
진실의 눈은 가려지고,

아무도 멈출 방법을 모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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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후회'와 '자책'의 구분


그렇다면,
요즘 사람들의 '후회' 사용법을 반영하여,
내 사고와 균형 있게 조합한 문장을 써보자.

"최선을 다해도 '후회'는 가능하지만, '자책'은 불가능하다."

이 말이 핵심이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은 후회인가, 자책인가.


당신이 자책하고 있다면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은 '후회'도, '아쉬움'도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자기부정'과 '자기기만'의 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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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통제'의 언어이고,
아쉬움은 '이해'와 '수용'의 언어다.

후회는 '자신이 신처럼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할 때' 생기고,
아쉬움은 '자신이 인간임을 받아들일 때' 생긴다.

인간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진실한 자기 인식은 항상 '아쉬움'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후회가 남는 이유는 결국 두 가지뿐이다.

하나. 스스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거나,
둘. 아쉬움을 후회로 착각하고 있거나.



이 둘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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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이토록 엄격하게 '후회'와 '아쉬움'을 구분하는 글을 쓴 건,
단순한 자기이해나 언어 정립의 목적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기만에 빠져 에너지를 소모하는 개인은
자신 안의 진실을 분별하지 못하게 되고,


그런 개인들이 모인 사회는
사소한 언어의 차이조차 가려내지 못하고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잃게 된다.

그리고 그런 대중은,
결코 외부의 '진짜 악을 분별해낼 힘'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일부는
'거짓된 용서'와 '아쉬움의 외피'를 두른 채
더 교묘하고 견고한 자기기만의 늪으로 빠질지도 모른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구원하거나 깨닫게 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을 없애거나 줄이는 것도 내 몫이 아니다.


그들은 그대로 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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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소중한 당신이 그들과 함께 자멸하지 않기를 바란다.



진실의 눈을 가진 이들이
자기 안의 암막을 걷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것,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빛을 자각하고,
거짓된 이들을 무력화할 힘을 갖게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걸
그저 보고만 있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자,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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