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개똥철학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지극히 개인적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최근 핵개인화라는 키워드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약 30여 년 전 초등학교 때만 해도 핵가족화라는 단어가 엄청난 시대 변화인 것처럼 교과서에 쓰여있고 그에 따른 시대 양상들이 막 대두되는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덧 30여 년 만에 이제 핵가족에서 핵개인으로 한 단계 더 심화된 것이다.
사회학을 공부하지 않아 핵개인에 대해 전문가적 소견을 말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래 항목들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 인구의 감소
• 저성장 시대
• IT기술의 발달
• 다양성 증가
• 코로나시대
• SNS의 대중화
각 항목별로 자세하게 쓴다면 하나당 하나의 글이 되겠지만 나는 사회학자가 아닌 HRer 이기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볼까 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핵개인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혹은 (대부분의 문화 사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 들어오며 변질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먼저 일반적인 핵개인화에 따른 HR의 변화 양상인 신입사원 공채에서 경력직 채용으로 전환, 긱 이코노미, 모바일 근무, 연공서열의 파괴, 직무(포지션) 중심, 로열티/장기근속의 약화 등은 핵개인화에 연계하지 않아도 스타트업으로 대표되는 HR의 변화 흐름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그보다는 조직을 이루는 구성원들의 가치관의 변화 측면을 살펴보려고 한다.
대략적으로 약 5년여 전부터 한국에도 위로와 힐링을 베이스로 한 에세이들이 많이 나왔다. 에세이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감정에 대해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타인에게서 어느 정도 안정적 거리를 두는 심리적 위로 내용이 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기만 하지 말고 화가 날 땐 화를 내고 슬플 땐 슬퍼해야 한다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리고 어떤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탓을 하지 않고 그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는 조언도 많았다. 분명 나는 그 트렌드가 굉장히 유의미했으며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잘 알거나 소중히 대하지 못했던 한국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분명 책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겠지만) 일부에게는 내 마음의 소중함만이 너무 강조되다 보니 이것이 잘못된 합리화의 영역으로 발전되었다. 상대만을 의식하고 배려하기보다는 나의 마음'도' 챙겨라는 건데 나의 마음'만' 챙기게 되었다. 내 입장 / 내 상황에 따라 내 마음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영역이 아닌 회사/조직 생활에서도 그런 모습들이 나타나게 된다. 공동체의 생활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매너들이 내가 불편하고 귀찮을 경우 손쉽게 내 마음/감정에 대한 억압으로 여긴다. 그 결과 나는 소중하기 때문에 이런 규칙이나 정책들을 지키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된다.
내 마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타인의 마음도 알아야 하며 인간 자체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나를 챙김이 이기적이거나 독단적인 영역으로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도 돈에 대한 추구로만 빠지게 되면 소위 천민자본주의로 가게 된다.
산업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가 IT/서비스 중심으로 선진화되어한다는 메시지들이 많았다. 미국에서부터 애플, 구글, 넷플릭스, 페이스북과 같은 회사들이 나타나고 한국의 자존심이었던 삼성전자/현대자동차를 시총 규모에서나 영향력 면에서나 압도하기 시작했다. 사실 한국 기업 역사에서 사대주의는 부정적 의미가 아닌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존재해 왔다. 일본이 경제대국일 때는 도요타, 소니, 파나소닉 등에서 그것을 배웠고 미국이 강국이었을 때는 GE 잭웰치 등에서 배웠으며 그 결과 2000년대는 컨설팅 업체들이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현재의 상황과 해외 케이스를 비판적으로 검토 후 현실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무조건적 적용이 쉽게 이루어졌다. 사실 그런 빠른 도입이 기존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의 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한국은 성숙도가 0에 가까웠기에 뭐든 새로 투입만 하면 다 플러스로 전환될 수 있었지만 이제 한국은 이미 자체 레거시(부정적 의미가 아닌)가 꽤 성숙해졌으며 구조화되어 있다. 이 상황에서 외부 사례가 빠르게 도입되기 위해서 제일 쉬운 방법은 현 체제에 대한 부정이다. 분명 각각의 체제는 다 이유와 맥락이 있으며 장단점이 있다. 단지 또 다른 성장을 하기 위해 새로운 방향으로 고민과 도전을 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엄연히 부정과는 다르다.
수평적 조직문화, 역할 중심의 업무 구조, 연공서열이 아닌 능력중심,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 등등 사실 이 항목들은 IT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 더 유효하며 도움이 되는 조건들일뿐이다. 여기에는 어디도 과거는 이래서 잘못되었으니 이렇게 바뀌어야 되요라는 말이 없다. 미국 IT회사들의 문화가 저렇게 갖추어져 있지만 여전히 미국의 IB / 컨설팅 회사들은 과거처럼 하향식 의사결정, 극단적 성과중심, 수직적 조직문화, 직급 중심의 구조 등이 있다. 단지 업과 환경이 다를 뿐이다.
과거에 대한 부정이 업무 프로세스/ 시스템이나 기업의 일하는 방식에만 한정되었다면 나는 개인의 가치관 영역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부정은 한국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상식 영역 구체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의식들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과거 중국도 엄격한 유교중심의 문화에서 문화 대혁명 등을 거치며 많은 가치적 상실이 나타났다.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규범이 사라지고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개인적 불안정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아노미 상태에 빠지면 삶의 가치와 목적의식을 잃고, 심한 무력감과 자포자기에 빠지며 심하면 자살까지 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대중사회로서의 거대도시의 내외에 있어서 일어나는 사회해체는 또한 아노미의 문제이기도 하다. - 위키백과 아노미 정의 -
단순히 사회적 규범뿐만 아니라 경제에 대해서나 커리어에 대해서나 나아가 윤리/도덕에 대해서도 다양한 가치들이 범람한다고 생각한다. 저성장 시대를 도래하며 부(富)만이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는 관점들이 많이 나타나며 노동의 가치보다는 코인, 부동산 청약, 유투브 인플루언서, SNS 광고 등으로 상대적으로 좀 더 손쉽게 부를 얻고 싶어 한다. 본인의 중심축을 가진채 다양한 가치 속에서 선택의 고민을 하는 것이 카오스라면 다양성의 축들로 인해 중심축마저 흔들리거나 무너지게 되는 것이 아노미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사회에서 '맞다'라고 말할 수 있는 'The Right'의 영역이 많이 약해지고 축소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럴 수도 있지와는 다른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해야할 가치들도 이제는 흔들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손쉽게 'The Right'보다는 'The Major'를 택하게 된다. 왜냐하면 'The Right'를 택하기 위해서는 나의 올곧은 신념과 의지가 필요한데 그것들을 유지하기엔 너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둘이 놓기 시작하며 결국 그렇게 형성된 대다수의 집단이 선택하는 'The Major'를 택하는 것이다. 두개가 같은 시대는 모두가 굉장히 성숙하고 도덕적인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한다. 'The Major'를 택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자신의 가치관이 아니기에 그만큼 더 책임도 약해지고 언제든 사회 여론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내가 일한 경력이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 경력 안에서도 구성원들의 변화는 두드러진다고 느껴진다. 핵개인화 시대를 거치며 나는 사실 세대라고 부르고 싶기도 하다. 핵개인화에 영향을 주는 사건들이 많았지만 그것이 유독 강하게 나타나는 계층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HR을 하며 실제로 내부 고객으로서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사내 규칙/정책에 대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보수적인 회사들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대다수의 회사는 소위 시대를 거치며 많이 선진화되고 최소한의 범주들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개인의 개성을 억압하거나 탄압하기 위함이 아니고 같이 일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고 배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핵개인화 시대에는 그 약속들조차 부당하다고 인식되는 경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힌 예로 출근시간을 들어보면 요즘 유연근무 등이 많이 나옴에 따라 사실 출/퇴근이 자유로워진 회사들이 많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회사들은 출근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부모님 세대처럼 8시 고정 출근 이런 곳은 사실 많이 없어졌다. 어느 정도 자율성을 존중하여 10시 전까지 출근해서 각자 업무 스케줄을 고려해 유연하게 근무하게 하는 곳들이 많아졌다. 출근시간은 개인적으로는 회사와 나, 그리고 나와 동료들 간의 약속이자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랜서가 아니고 동아리가 아니기에 어느 정도 업무/근무에 대한 예측성이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출근시간에 대해서도 전날 야근을 했기에 본인이 당당하게 늦게 와도 되는 것 아니냐는 당당한 주장을 하는 직원들이 많아지고 있다. 내가 회사에 맞추기보다는 각 구성원들에 회사가 맞추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구도 당연스럽게 한다. 분명 과거와 달라졌기에 그 부분은 고려되고 존중되지만 그래도 될 영역과 아닌 영역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 HR담당자들은 답답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너무 상식적이고 너무 당연한 건데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에서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논리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이는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세계에는 각각의 가치관과 기준이 있다. 과거에는 적어도 한 세계 안에서 공유되는 규범이 있었다면 핵개인화의 여러 요소들로 그 세계들이 분리되고 끊어지며 다 섬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위와 같은 경우를 결국 설득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세계를 들어가서 그 세계관 속에서 설득하거나 나의 세계로 데려와야 한다. 개인의 영역은 난 그래도 개인의 판단/선택을 존중한다. 하지만 회사는 그렇게 논할 레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일을 하기 위한 곳이며 회사 전체의 영리 활동이 추구되어야 하며 그로 인해 급여를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핵개인화에 앞서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가 성숙했다고 생각한 미국/유럽 들을 생각해 보자.
분명 해당 국가들에서는 개개인의 자유/인권을 굉장히 중시하지만 의외로 사회 속에서는 상식이 존재한다. 이를 다른 말로 시민의식이라고도 표현한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당연한 듯이 이루어지며 기부/봉사활동도 활발하며 (도리어 이제 한국에서 생각하면 이상할) 드레스코드가 있는 식당들도 있고 엄격한 비즈니스 매너들이 있다.
사회적 측면에서 계약주의 중심적인 사고에서는 서로가 합의하고 계약을 했기에 준수해야할 의무가 발생한다. 그 의무를 충실하지 않을 경우 막대한 손해배상 혹은 벌이 발생한다. 개인적 측면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경계 & 조심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면 조심하게 된다. 미국의 총기 소유가 가지는 서로에 대한 조심과 존중은 필요악의 요소지만 그로 인해 사회의 안정적 구성을 유지시켜 준다고 볼 수 있다.
개인화로 인해 다른 사회적 가치, 시민의식이 무너질 필요는 없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글로벌 회사를 다녀보면 의외로 회사 정책들은 엄격한다. 세세한 부분은 터치하지 않지만 정해진 영역에선 타협을 하지 않는다. 내가 과거 한 구성원에게 이런 예시를 든 적이 있다. 어떤 도로에서 과속금지라는 규칙을 적용했을 때는 가족이 죽기 직전의 상황에 대해서 예외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만약 경찰관에게 도의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사회에서 다 같이 약속을 한 규칙인 법에 대해서조차 부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핵개인화 시대가 오더라도 분명한 전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영역이 중요하더라도 사회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서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분명 공동체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핵개인화가 사회 공동체를 부정하고 무너뜨리기 시작한다면 이는 말 그대로 시대 변화가 아닌 사회 해체에 가까워질 것이다. 핵개인화시대에도 여전히 지킬 것은 여전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