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지극히 개인적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최근 어쩌다 보니 HR 시니어들과의 커피챗이 연속적으로 있었다. 당연히 그중엔 나보다 선배인 분들도 있었다. 시니어쯤되면 커리어 조언을 구하지는 않는다. 그저 서로의 애환을 공유하고 생각들을 공유할 뿐이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님을 서로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단지 그것은 스타일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 스타일들은 트렌드에 따라 시장에서 더 선호되기도 하고 덜 선호되기도 할 뿐이며 회사의 근무여부 또한 절대적 역량의 부족보다는 대표들의 취향에 따라 선택될 뿐이다.
배경은 스타트업, 대기업, 컨설팅 등 다양했다. 그중에 최근 스타트업에 이직한 시니어 지인이 고민 상담을 하며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난 고민/이슈에 대한 나의 답을 말하기보단 아래의 내용을 말해주었다.
과거 HR에 일반적으로 필요한 역량이나 태도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글을 썼었다.
• HR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 HR의 역량은 스태머니와 인내심?
• HR을 잘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 HR에도 정무(政務) 감각이 필요합니다(1편)
아직 완결하지 못한 시리즈도 있긴 하지만 오늘 글은 주니어보다는 시니어 그리고 시니어 중에서도 의사결정권한을 가지고 경영진과 직접 일을 하는 리더급이 대상자가 될 것 같다.
그 이유는 단순히 HR 업무의 난이도 측면보다는 정무적이고 복합적인 환경 속에 있다는 것이 어렵다. 단순히 실무자로서 제도를 잘 운영하거나 잘 세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세워질 때부터의 고민과 그리고 운영되면서의 효과까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이 모든 것을 HR 단독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그 관점에서 HR 시니어에게 필요한 역량 3가지를 얘기한다면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① 인내심
② 눈치 (센스)
③ 정무감각
기본적으로 HR 시니어들은 식자우환 (識字憂患)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는 사실 좋기보단 회사생활 내에서는 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래야 하는데 이게 맞는데라는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곳에서나 좋은 의견이고 감사한 의견이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잔소리이자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스타트업 이직 포기해야 할 3가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했던 것 중에 하나는 상식의 부재였다. 상식이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상대적인 것이다. 문명의 발달 과정에서도 각각의 발달 과정에 따라서 상식 수준은 다르다. 이는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를 뿐이다.
다른 말로 시니어들은 어쩌면 쓸데없이 상식 수준이 높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스타트업을 포함한 조직의 발달 과정에서 어쩌면 가장 뒤늦게 고도화되는 영역이 HR이기 때문이다. 대표가 회사 경험이 없거나 리더경험이 없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HR에 관심도 많고 회사/리더 경험도 있는 분들이 창업하는데도 왜 HR이 가장 늦게 고도화되냐고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HR의 고도화는 대표의 관심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너리하게 HR에 관심 많은 대표일수록 회사/조직에는 더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HR이란 것은 최초 방향이나 틀을 잡는 것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후 자연스레 조직이 발전함에 따라 인위적으로 힘을 들이면 들일수록 조직/인력의 변화와 니즈에 자연스럽게 대응하기보다는 딱딱하고 잘못된 관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뜻하지 않게 중세시대로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그 당시엔 전기도 없고 수도시설도 없고 지구가 둥근지도 모르고 계급제가 맞다고 생각했다. 현대의 나로서는 그것이 틀린 생각이고 또 제도나 시설/기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시대를 억지로 바꿀 수 없다. 모든 것은 시대력이 필요하다. ( 링크 ). 내가 지금의 현실에 답답해서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일방적으로 비판하거나 불만을 제기한다면 마녀심판을 받아 처형당할 수도 있다. 그때의 답은 기다림 뿐이다. 티를 내더라도 불만/비판/경멸 이런 류의 감정보다는 이러면 이러면 좋지 않을까 정도의 티저 같은 분위기 형성의 터치 정도여야 한다.
인내심이란 그런 것이다. 인내를 하고 있다고 그 사람이 능력이 없거나 바보/멍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몰라서 그런 사람과 알지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매우 다르다.
기업은 시간이 지나며 변화하게 된다. 성장이라는 말대신 변화라는 말을 굳이 쓴 이유는 시간이 지나더라도 매출이나 규모가 막 상승하지 않는 기업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업조차 시간이 지나며 경쟁상황이 악화되거나 고객들의 구매가 줄어들 수 있다. 그렇기에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만이라도 외형적 성장은 아니지만 내면에서 질적 변화(성장)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진화라는 말은 너무 변화를 단면적으로 진화했다/안 했다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조심한다.
이 피할 수 없는 변화가 바로 ①번의 인내심에 대한 보상이 될 것이다. 사람이나 상황은 변화를 바랄 때까지 인내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과거 일제강점기 / 독재시대에 살았던 분들 중에 모두가 열사가 되지 못했던 이유는 해방되어야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너무도 막연하고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변화의 시작점을 캐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대표가 나 이제부터 권한을 내려놓겠습니다. 갑자기 이제부터는 조금 더 원칙과 기준에 맞춰서 인사 의사결정을 하겠습니다. 절대 이렇지 않다. 대부분은 이런 상황이다.
이 두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다 정말 아주 천천히 아니면 아주 우연&우발적으로 후자의 생각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기 시작한다. 대표가 혼자서 생각을 다 정리하고 앞으로 나 이렇게 할 거예요라고 말한 것을 듣게 된다면 이미 타이밍은 놓친 것이다. 왜냐하면 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굿 타이밍의 시작점은 기존 생각 : 변화된 생각의 비율이 65:35 정도부터라고 생각한다. 이때부터는 슬슬 내가 변화되어야 하거나 변화될 수 있음에 대해 직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변화의 편린들이 보일 때가 중요하다.
그리고 상황 (situation)을 정확하게 보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의 시작점 인지는 인지하고 대표의 변화 모습을 의식적으로 본다면 알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하며 어려운 부분은 상황 인지다. 사실 이 것 때문에 단순히 눈치에서 끝나지 않고 센스라고 표현하였다.
보통 사내에서 정치를 좋아하는 분이거나 시사를 좋아하는 분들은 어떤 사건/현상이 발생하면 그 부분에 대해 해석을 하기를 좋아한다. 표면적인 사건만을 보는 것이 아닌 이 일의 히스토리와 흐름, 그리고 주변 역학들과의 직접적/간접적 이해관계, 마지막으로 그로 인한 영향력과 나비효과까지 각자의 시각/정보에 따라 논한다. 이는 단순 국내 정세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에도 많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이것이 과해지면 음모론이 되기는 하지만 모든 일에는 흐름과 상황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긴 하다.
이제 HR로 돌아와 보자.
내가 직접 회의에 참여하거나 대표와 대화를 하는 자리라면 직접적으로 말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 상황에서도 어떤 지시들에 대해 단순 업무 지시로 이해하기보단 행간 너머를 스스로 분석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직접 참여하지 못한 사건들은 더더욱 나의 직관과 정보들을 바탕으로 판단해보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이런 의사결정을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과연 대표는 왜 이런 생각의 흐름을 가져갔을까? 평상시와 동일한 방향과 기준이라면 이슈가 없지만 조금이라도 그것과 다른 모습이라면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변화의 시작점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변심일 수도 있고 혹은 새롭게 등장한 또 다른 영향을 주는 인물일 수도 있다.
앞에서 말한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은 사실 공부한다고 개발되지 않는다. 사고력/창의력/추리력/비판력에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서사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첫 직장의 첫 사수가 이런 부분에서 베테랑이어 그때부터 회사의 여러 일들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직장에서 만난 사수 또한 이 부분에서 한 단계 레벨이 높은 분이었다. 단순 해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전략적으로 이용까지 하는 분이었다. 학생 시절을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뜻하지 않게 이 영역들이 주니어 때부터 많이 개발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기다렸고 타이밍도 확인했고 이제 표현을 해야 한다. 그런데 ②번에서 말했듯이 아직 50:50도 아니고 65:35 정도면 기존 생각 중심에 가깝다. 그 상황에서 몸으로 꽉 찬 직구를 날린다면 바로 거부당하고 도리어 역살을 맞기 쉽다. 그런 직구에 가까운 조언 (잔소리로 인식되기 쉬운)은 내가 아니어도 그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가장 기본적으로 직접 답을 주면 안 된다.
그러면 결국 그 답을 택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잘못이 되기 때문이다. 답을 택하고 안 택하고는 대표의 영역으로 놔둬야 한다. 분명 그 길을 따라가면 그 답이 있겠지만 답이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고 단순히 길만 알려줘도 된다. 혹은 어떤 생각/상황이 정체에 빠져있다면 사실 모든 방향이 다 막혀있지 않고 (답이 아닌) 이런 방향으로도 열어볼 수 있고 사실 그게 벽이 아니고 문이라는 것만 말해줘도 된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 문을 여는 거야.
이런 문(앞으로 가기 위한 문)이 아니라 이쪽 문을 여는 거야. 바깥으로 나가는 문 말이야. 18년 동안 꽁꽁 얼어붙어있다 보니까 이걸 벽처럼 생각하게 됐는데, 사실은 저것도 문이란 말이지. 그래서 이 바깥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자. 이 얘기야." -설국열차 남궁민수 대사-
다음으로 만약 답이나 솔루션을 제안해야 한다면 그때는 논설문이 아닌 스토리로 전달되어야 한다.
대표는 변화에 대한 필요성만 가졌을 뿐 그 필요성은 나는 모를뿐더러 나의 생각과 전혀 다른 메커니즘일 수 있다. 그러면 그 변화의 단초를 기반으로 이제는 설득의 영역이 필요하다. 그 설득은 논설문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논설문은 동일한 문제의식과 상황을 가진 채로 입장만 다른 경우에 유효하다. 이 경우는 한 편의 소설/서사시와 같이 그런 플롯과 설정이라면 그런 결론이 나올 수 있겠구나 정도의 공감이다. HR은 좀 더 인간의 보편성과 경향성에 맞추는 방향은 있을지언정 정답은 없다. 인간에 대한 이해도 다르고 살아온 역사도 다르다면 한 편의 세계관 속에 같이 들어오는 과정부터가 필요하다. 그것은 지식으로 진행되면 스터디가 필요하다. 보통 이 경우 우리는 스토리를 이용한다. 스토리는 물리나 화학 같은 지식보다는 인간 보편적 감성과 공감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 이 글은 대상을 특정하지는 않지만 사실 ③번은 대표와 직접 일하며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리더/시니어급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상세하고 구체적인 케이스/예시가 필요하다면 이 글에 쓰기엔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언제든 별도 문의나 커피챗을 주면 감사하겠다.
최근 스타트업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면서 경력이 길지 않거나 HR 경험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HR 리더 역할을 하는 경우들이 많다. 나는 이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 또한 변화의 트렌드이며 그로 인해 HR의 다양성이 넓어져 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식에 대해서는 경력이 짧거나 혹은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도 변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앞에 말한 3가지 요소들은 모두 HR 지식이 당연히 단단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내용들이다. 내가 지식이 없다면
• 인내를 하더라도 그게 HR 측면에서의 인내인지 나의 단순 자존심에 대한 인내인지도 알 수 없고
• 타이밍에 대해서도 HR관점에서 제도적으로 혹은 철학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지도 구분하기 어렵고
• 정무감각 측면에서도 결국 도달해야 할 목표와의 얼라인이나 진행과정이 약해지기 쉽다.
아무리 세상과 트렌드가 바뀐다 하더라도 가장 기본적이며 기초적인 지식은 무조건 필수적이다. 수학에서도 응용/심화 문제는 기초 문제 이후에 나오며 기초 문제를 잘 풀 수 있어야 응용/심화도 접근이 가능한다. 추가로 혹시나 오해할까 봐 말하지만 지식은 '유행이 아닌 효과성을 내는 HRBP가 되려면 '에서도 쓴 듯이 단순히 동료들과의 교류에서 얻는 것만으로 그치면 안 되고 교과서로만 봐서 얻는 지식으로도 그치면 안 된다. 실제 업무 관점에서 스스로 단련하고 고민하고 다듬어야 한다.
공명심의 정의는 '공을 세워 자기의 이름을 널리 드러내려는 마음'이라고 되어있다. 혹시나 오해할까 미리 말하면 요즘 유행인 셀프브랜딩과 공명심은 다르다. 셀프브랜딩은 나에 대한 브랜딩이라는 관점에서 나의 색깔을 만드는 것에 가깝지 이를 과하게 드러내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공명심이 버려야 할 태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니어/리더급이 되면 그때부터는 단순히 나의 업무 성과자체가 중요해지지 않는다. 결국 더 거시적 관점에서 일이 진행되고 해결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내 개인의 업무 결과 자체는 잘 인정받지 못하거나 변경되더라도 이로 인해 그와 연결된 일 자체가 해결되면 나는 사실 일을 잘한 것이다. 공명심에 빠지게 되면 결국 내 일 / 내 성과만 중시하게 되면 특히나 HR에서는 워낙 많은 변수가 있는데 그 변수를 다 무시하고 내 관점에서만 일을 진행하게 되고 인정받으려 하게 된다. 결국 분명 내가 이해해야 할 만한 변수나 상황이 있음에도 내 일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밀어붙이면 내가 내세웠던 명분조차 사라지며 개인의 고집으로 치부된다.
또 일이 되게 한다는 관점에서 여러 관계자들과의 조율/화합이 중요해지는데 공명심이 중심이 되게 되면 그 부분에서 결국 분절적이게 상황이 구성된다. 내 이름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프로젝트가 명확히 개별 참가자들의 성과로 구분되지 않는다면 개개인들은 서운할 수 있다. 그 프로젝트의 책임자나 혹은 프로젝트 전체 참여자로 같이 묶이기 때문이다. 시니어가 될수록 개인의 성과가 뛰어나기보다는 결국 회사 / 부서 / 프로젝트 단위의 성과가 그 시니어 개인의 성과로 돌아감은 특히나 HR에서도 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개인이 아무리 명분이 있고 당당하고 자신만의 근거가 있다 해도 결국 그것이 현재의 상황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로 인해 갈등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잘못되고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본인도 회사도 둘 다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인하우스가 아닌 외부에서 편하게 일을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