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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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HR로 10년 넘게 조직 안팎을 경험하며 가장 자주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동료들이 하나둘 인하우스를 떠나는 모습이다. 비슷한 시기에 HR을 시작했던 사람들, 같은 고민과 방향을 품고 일했던 동료들. 이제는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방식으로 조직을 떠나고 있다. 누군가는 운 좋게 임원이 되었고, 누군가는 개인 컨설팅이나 교육처럼 독립적인 일을 택했다. 전혀 다른 직무로 변경하거나, 아예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도 있다.
공통점은 하나다. HR을 그만두려는 게 아니라, 인하우스를 떠나려 한다는 것. 내가 그들을 보며 느끼는 건 단순한 번아웃이 아니다. 조직 안에서 HR이라는 직무가 담당하는 것보다 감당해야 할 것이 훨씬 많다는 현실 때문이다. 이 역할은 구조 위에 서 있지만, 감정과 정서의 중심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어색한 자리에서, HR만이 겪는 특수성과 이중성이 계속해서 누적된다. 최근 한 지인도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버텨왔는데, 더는 감당이 안 된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문득 생각했다. HR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설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나쯤은 남겨야겠다고.
※ 이 글은 다른 직무에 있는 사람들에겐 낯설고 동떨어져 보일 수 있는 점 미리 공유한다.
조직에는 수많은 의사결정이 있다. 하지만 인사라는 역할은 유독 이상한 위치에 있다. 결정은 대표가 하는데, 비난은 HR이 받는다. 정책을 설계했을 뿐인데 분위기를 망친 사람처럼 낙인찍히고, 대표의 의도를 정리했을 뿐인데, 대표를 바꾼 사람처럼 몰린다.
실제로 나도 겪은 적이 있다. 대표는 빠진 자리였고, 나 혼자 직원들과 청문회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했다. 그 자리에서 들은 말은 이랬다.
“우리 대표님은 갑자기 이렇게 바뀔 분이 아닌데요. 솔직히 이드님이 대표님을 현혹시킨 거 아니에요?”
“이건 우리 회사 스타일이 아닌데… 혹시 이드님, 투자사에서 꽂힌 분이세요?”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한다. “대표는 아무도 못 바꿉니다.HR도, C레벨도, 이사회도, 심지어 부모도." 대표는 자기 판단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변화가 생기면, 가장 먼저 비난받는 사람은 HR이다. 왜일까?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 속에서 HR은 공식적으로는 중간자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모든 감정의 도착지가 된다.
구성원은 알고 있다. 대부분의 인사 결정은 대표가 한다. 채용, 보상, 평가, 조직 개편까지. 그러나 그 결정을 막지 못한 사람에게 감정이 향한다. 대부분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HR이다. 대표가 한 결정에도 HR은 묻는다. “왜 막지 못했어요?”, “왜 그렇게 따라갔어요?”, “HR은 도대체 뭘 한 거죠?”
대표가 특정 인원을 정리하겠다고 지시했고, HR은 감정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통을 설계했다. 하지만 대표는 정작 대면을 피했고, 퇴사자들은 말했다.
“대표님은 좋은 분이잖아요. HR이 너무 날카롭게 말하더라고요.”
이때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대표는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HR은 나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구조. 결국 HR은 결정 이후의 정서적 책임자다. 누구나 알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구조다.
✅ 대표가 인사 결정 → HR이 왜 막지 못했는가
✅ 구조조정 후 소통 부족 → HR이 너무 무심했다
✅ 리더 교체 후 갈등 → HR이 왜 이런 사람을 데려왔는가
조직 안에서 대표는 비판이 어려운 존재다. 무형의 권력, 실질적 결정권, 분위기를 좌우하는 영향력 때문이다. 그래서 구성원은 대표에게는 동의하고, HR에게는 불만을 쏟아낸다. 회의에선 모두가 “좋습니다”, “잘 이해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회의가 끝난 직후 HR은 메신저로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이게 말이 돼요? HR은 도대체 뭐 했어요?”
“이건 HR이 설계부터 잘못한 거예요.”
“이 구조, 대표가 하자고 해도 HR이 막았어야죠.”
연봉 동결 공지가 나가면 슬랙에는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말이 올라온다. 동시에 HR에게는 DM으로 항의가 온다. “혹시 저만 따로 조정 가능할까요?”
시간이 지나면 구성원도 알게 된다. 대표가 결정했고, HR은 내부 조율과 설득에 애썼다는 걸. 하지만 감정은 쉽게 돌아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HR은 가깝고, 말을 섞을 수 있고, ‘내 편이었어야 한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HR이 그걸 했으니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HR은 그걸 말렸어야죠.”, “그건 HR이 막았어야죠.”, “왜 그렇게까지 따랐어요?”라고 한다. 현실은 그 결정의 구조 안에서 HR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없었고, 차악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구조보다 감정에 반응한다.
✅ 성과 평가: 대표의 지시로 평가 기준이 변경되었음을 알게 되었음에도, 구성원들은 HR이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비난합니다.
✅ 보상 체계: 대표의 결정으로 보상 체계가 조정되었음을 알게 되었음에도, 구성원들은 HR이 그 영향을 최소화하지 못했다고 불만을 표출합니다.
✅ 채용 정책: 대표의 지시로 채용 기준이 변경되었음을 알게 되었음에도, 구성원들은 HR이 공정성을 지키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구성원은 스스로 지키지 않는 기준을 HR에게는 철저하게 요구한다. ‘중립적’, ‘윤리적’,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다.
✅ 피드백은 회피하면서 HR에게는 공정한 평가를 설계하라 하고
✅ 온보딩은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HR에게는 온보딩 체계가 부실하다고 지적하고
✅ OKR은 형식적으로 제출하면서 HR이 관리하면 통제하려 드냐고 묻는다
즉, ‘나는 안 해도 HR은 해야 한다’는 기대가 존재한다. HR은 윤리의 상징이 아니라, 구조와 기준을 다루는 직무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구조 + 감정 + 윤리’를 모두 요구하고 있다.
대표는 결정자다. 하지만 피로가 쌓이거나 반발이 예상되면, 그 부담을 HR에게 넘긴다.
“그건 HR이 좀 더 정리했어야죠.”
“리스크 있었던 건데 HR이 보고했어야죠.”
“어차피 내가 결정한 거긴 한데, 설계가 단단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대표는 책임과 감정 사이에서 HR을 방패로 삼는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구조가 고착된다.
✅ 채용 실패: 대표가 직접 채용을 결정한 후, 해당 인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대표는 HR이 적절한 후보를 추천하지 않았다고 비난합니다.
✅ 성과 저조: 대표의 전략적 결정으로 인한 성과 저조 시, 대표는 HR이 인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 조직 문화 문제: 대표의 리더십 스타일로 인해 조직 문화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표는 HR이 문화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고 비판합니다.
HR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다. 조직에서 가장 얇은 선 위에 서 있는, 감정과 구조 사이의 설계자다. 모든 의사결정이 HR을 통과하지 않지만, 모든 불만은 HR을 통과한다.
대표의 욕망을 구조로 바꿔야 하고
구성원의 감정을 체계로 정리해야 하며
조직 안의 ‘말 못 하는 언어’를 읽고, 설계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결과에 대해, ‘왜 못 막았냐’는 말을 듣는다.
이 모든 구조는 단순히 조직의 운영 이슈가 아니라, ‘모두가 착한 사람이고 싶어 하는 한국 조직’의 그림자다. 리더도, 구성원도, 대표도 착한 사람이고 싶기 때문에, 가장 나쁜 사람은 HR이 되길 바란다.
HR은 책임자가 아니라, 설계자다.
구조가 없으면, 감정이 덮친다.
기준이 없으면, 기대는 비난이 되며 조직의 균형은 사라진다.
공감받지 못하더라도 기준을 남겨야 한다.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설명은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