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d] 저 평가보상 담당자가 되고 싶어요 !!

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by iid 이드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특정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도, 정답을 말하는 것도 아니니 가볍게 읽어주면 좋겠다. (문의 : AI 클론 채팅, 자문/컨설팅 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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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챗을 하다 보면 HR 주니어분들 중 꽤 많은 분들이 이 이야기를 한다. 평가나 보상 담당자가 되고 싶다고. 스타트업에서 주니어들이 주로 맡는 업무는 채용 서포트나 HRM 행정, 페이롤 같은 운영성 업무들인데, 그걸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커리어를 고민하게 된다. 지금 하는 일이 나쁜 건 아닌데, 이게 계속 내 일이어야 하는가 싶은 그 시점. 뭔가 더 있어 보이는 역할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슬슬 고개를 든다. 그 고민의 끝에서 자주 등장하는 답이 평가/보상 담당이다.


그 마음이 왜인지는 안다. 뭔가 직접 제도를 설계하고,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 지금 하는 일이 의미 없어서가 아니라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다. 그 욕구가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이 평가보상 담당자라는 직무 타이틀이다. HR 안에서도 뭔가 좀 더 전문적이고, 기획에 가까운 영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근데 오늘은 그 욕구에 찬물을 좀 끼얹으려 한다. 완전히 식히려는 게 아니라, 온도를 조금 현실적으로 맞추려는 목적이다.




평가보상 담당자, 실제로 뭘 하는 사람인가

많은 분들이 상상하는 이미지가 있다. 다양한 평가제도를 검토하고, 조직에 맞는 방식을 제안하고, 그것을 전략적으로 설계해서 운영까지 총괄하는 사람. 가능하다. 그런 역할이 존재하는 회사도 있다. 다만 극소수다.


현실에서 평가보상 담당자의 일상은 대개 이렇다. 이미 만들어진 평가제도가 있고, 시즌이 되면 현황 관리하고 프로세스 돌리고, 늦게 제출하는 사람 독촉하고, 결과 나오면 정리해서 경영진 의사결정을 받는다. 가끔 경영진에서 제도를 바꾸고 싶다는 니즈가 내려오면 그걸 형태로 만드는 일을 한다. 그런데 그 방향과 핵심 요소는 이미 경영진이 결정해둔 경우가 많다. 리스크가 있어 보여서 의견을 내도 그대로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보상도 비슷하다. 시장 데이터를 분석해서 전략적으로 급여 밴드를 설계하고 패키지를 구성하는 그림을 기대하는 분들이 있는데, 한국 시장에서 그런 역할을 온전히 담당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운영 개선 수준에서 정책 일부를 다듬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결국 제도 기획과 전략적 대응이라는 멋진 그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게 일상인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이 현실은 최근 들어 더 뚜렷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평가제도나 보상제도 자체에 대한 깊은 전문 지식이 담당자의 핵심 역량처럼 여겨졌다. OKR이니 MBO니 BSC니, 다양한 제도의 개념과 설계 원리를 꿰고 있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최근 흐름은 다르다. 복잡하고 정교한 제도보다 단순하되 실제로 작동하는 제도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많이 바뀌었다. 제도의 완성도보다 현장 적용 가능성과 실효성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여기에 AI까지 더해지면서 데이터 분석이나 제도 설계의 일부 영역은 점점 보조 도구로 대체되고 있다. 제도 지식 자체의 무게가 예전보다 가벼워졌다는 얘기다.


그 말은 곧, 평가제도 이론을 열심히 공부하고 케이스 스터디를 쌓는 방식의 준비가 생각만큼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식보다 실제로 그 업무를 굴려본 경험이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직무인데, 제도 자체의 복잡성마저 줄어드는 방향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자리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좁은 이유


HR 커리어에 테크트리가 없는 이유

RPG나 전략 시뮬레이션을 해본 사람이라면 테크트리를 안다. 다음 레벨로 올라가려면 이전 레벨에서 특정 스킬이나 능력치를 갖춰야 하고, 그게 충족되면 자연스럽게 레벨업이 된다. 명확하고 납득 가능한 구조다. 그런데 HR에는 이게 잘 보이지 않는다.


HR의 각 직무들은 상당히 독립적이다. 채용을 잘 한다고 평가를 잘 하는 게 아니고, 노무를 오래 했다고 보상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는다. 각 영역에서 숙련도를 계속 높일 수는 있지만,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하는 전환 맵이 없다. 지금 하던 직무를 열심히 한다고 저절로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물론 HR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HR은 각 기능이 워낙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조직 규모에 따라 한 사람이 여러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기도 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경로로 성장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도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선택을 강요받는다. 지금 하는 걸 계속 잘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직무로 확장을 시도할 것인가. 문제는 그 확장이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회가 먼저 와야 한다.


진입 경로에서 운을 무시할 수 없다

특정 직무 담당자로 뽑히는 채용이 많지 않고, 경험 없는 사람에게 쉽게 맡기지도 않는다. 실제로 평가보상 업무로 전환이 일어나는 경로를 보면 패턴이 비슷하다. 기존 담당자가 퇴사했을 때 외부 채용 대신 내부 다른 직무 담당자에게 기회가 넘어오거나, HRM 매니저와 함께 들어가 지원 업무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담당자로 굳어지거나. 이 정도다.


솔직히 운이 크게 작용한다. 준비가 운을 만든다고 하지만, 이 영역에서는 기회 자체가 먼저 와야 한다. 그리고 그 기회는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렇다면 준비할 수 있는 건 뭔가. 지금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되, 그 일을 처리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 제도가 왜 이렇게 설계됐는지, 이 방식이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습관. 일상적인 운영 업무 안에서도 거시적 관점을 놓지 않는 것, 그게 기회가 왔을 때 실제로 차이를 만든다.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 매 순간을 그렇게 보내야 한다는 게 사실 제일 현실적인 조언이다. 그리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평가나 보상 업무와 조금이라도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을 찾는 것, 시즌 때 보조라도 해보거나 데이터 정리라도 맡아보는 것. 그 허드렛일이 기회가 왔을 때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된다.



어느 경로로 가도 현실은 비슷하다


HRBP도 정답은 아니다

그 자리로 가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면, 다른 경로를 찾게 된다. HRBP가 대표적이다. 기능별로 나뉜 직무 구조에서 벗어나 더 넓은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구에서다. 그런데 HRBP는 기능의 구분이 아니라 역할의 구분이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서양식 HRBP는 CoE가 따로 있어서 채용은 채용팀이, 보상은 보상팀이 전문적으로 담당한다. HRBP는 그 위에서 비즈니스 파트너 역할에 집중한다. 그런데 한국식 HRBP는 CoE가 단단하지 않다. 결국 해당 조직의 HR 관련 모든 일을 다 떠맡는 구조가 된다. 채용도 해야 하고, 평가도 해야 하고, 노무도 알아야 하고, 행정도 처리해야 한다. 어떤 담당자가 되고 싶다는 질문 자체가 무색해진다.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가보상 담당자라는 특정 역할을 목표로 삼았는데, 막상 HRBP로 일하다 보면 그 경계 자체가 없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HRBP가 더 고급 역할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걸 혼자 책임져야 하는 구조에 가깝고, 특정 기능의 전문성을 깊게 쌓기가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다. 어떤 HR 담당자가 되겠다는 목표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를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더 멋진 역할을 찾아 왔는데 왜 더 막막하지 싶은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온다.


기획이 더 고급 직무라는 착각

그렇다면 기획 업무는 어떤가. 한국에는 전략이나 기획 업무에 대한 로망이 유독 강하다. 직접 처리하는 업무보다 판단하고 설계하는 업무가 왠지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문화가 있다. 그 감각이 직무 선호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몸으로 굴리는 일보다 머리로 그리는 일이 더 가치 있다는 암묵적인 위계가 HR 커리어 고민 안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근데 내 경험에서 보면, 시장에서 제일 오래 살아남고 대체되기 어려운 사람은 기획형보다 실제 처리형인 경우가 많았다. AI가 대체한다고 해도 결국 누군가는 그 데이터를 관리하고 예외를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제도를 이론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굴려본 사람이다. 기획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기획만 하는 사람보다 실제로 돌려본 사람의 판단이 훨씬 두껍다는 얘기다. 어떤 직무든 화려한 장면보다 반복적인 운영이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평가보상도 예외가 아니고, HRBP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가고 싶다면

될 수 있다. 다만 경로가 공부나 의지보다 기회와 환경에 더 많이 달려 있다는 걸 알면 좋겠다. 그리고 그 업무의 일상이 상상과 꽤 다를 수 있다는 것도. 그걸 알고도 가고 싶다면, 그 마음은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다만 그 마음이 직무 타이틀에 대한 욕구인지, 아니면 그 일을 통해 느끼고 싶은 무언가에 대한 욕구인지는 한 번쯤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평가보상 담당자가 되겠다는 목표 자체보다 그 목표 뒤에 있는 질문이 더 중요할 수 있다. HR 커리어를 어떤 방향으로 이어가고 싶은가. 어떤 일을 할 때 보람을 느끼는가. 어떤 역할에서 에너지가 생기는가. 사람을 직접 만나고 부딪히는 일이 맞는가, 아니면 데이터를 정리하고 구조를 만드는 일이 더 맞는가. 특정 기능을 깊게 파고드는 게 좋은가, 아니면 조직 전체를 조망하는 역할이 하고 싶은가. 이 질문들이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커리어에서 길을 잃는 대부분의 순간은 이 질문을 건너뛰고 직무명만 쫓았을 때 찾아온다. 그 질문들에 먼저 답할 수 있을 때, 평가보상 담당자라는 목표가 진짜 나한테 맞는 방향인지도 더 선명하게 보인다.


평가보상 담당자가 되겠다는 목표가 틀린 건 아니다. 다만 왜,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위해가 붙어 있을 때 그 방향이 훨씬 더 단단해지고, 기회가 왔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잡을 수 있다. 커리어는 결국 타이틀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일하고 싶은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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