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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화 Dec 08. 2020

#12 성교육의 구멍 feat.순결캔디

난임 여성이 되어 돌이켜보다.

 

요즘 초등학생 때부터 중, 고등학교 때 이루어졌던 성교육을 종종 떠올린다.


성교육의 중점은 늘 '피임'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성교육을 마치고 선생님이 사탕을 나눠주셨는데, 핑크색 봉지에 '순결 캔디'라고 적혀있었다. 아이들은 경쟁적으로 사탕을 받으려 했다. 결국 1인 1개밖에 돌아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봉지를 까서 동그란 사탕을 입에 쏘ㅡ옥 넣었다. 그 날 성교육 시간에 무엇을 배웠는지는 흐릿하지만 입안에 은은하게 퍼졌던 그 달콤함은 기억이 난다.


<순결은 나의 자랑 나의 행복>이라고 적혀있는 순결캔디 봉투 사진 출처: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139332



 


 성교육은 주로 영상 시청으로 이루어졌었다. 수정 이후 배아가 분열을 거쳐 태아로 성장하는 과정을 빠르게 보여주었다. 더 중점이 된 것은 남성과 여성의 피임의 여러 가지 형태 및 장단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임신중지(낙태)를 하는 모습까지 생생히 보여줬다.


 선생님은 배아를 빨아드리는 청소기 같은 기구를 여자 자궁에 넣는다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 그것을 상상만 해도 무서워서 온몸이 오싹했다.

 실제 자궁 초음파 영상 점처럼 보이는 배아보였다. 그것을 강조하듯 동그라미 표기가 쳐졌다. 기계를 피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도망 다니고 있는 중이라는 선생님의 설명에, 나는 마치 영화의 살인 장면이라도 보는 끔찍하도록 공포스러웠다.

 선생님은 "성관계하면 어떻게 되는지 봤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나눠준 것이 순결 캔디였다.


 과연 그 영상은 성교육에 도움이 되었을까?



성관계→임신→낙태→불행
성관계=임신=낙태=불행



 영상을 통해 본 임신은 아름답지 못했다. (性)의 긍정적 의미는 과감히 배제하고 부정적 측면만을 부각하 시나리오로 성교육을 하고 10대인 나에게 사탕을 먹인 걸 돌이켜보니 헛웃음이 날 정도이다. (지금도 궁금한  하나는 남학생들에게도 순결 캔디를 배부했냐는 이다.- 남편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







 난임 여성이 되고 나서 청소년기에 받았던 성교육은 왜 임신을 하지 '' 위한 교육으로만 기울어졌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임신을 하기 위해 많은 부부들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꼭 난임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나와 지인들을 보면 피임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상식이 있는데, 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임신을 위한 과정과 임신을 확인한 이후부터 출산까지의 과정, 그리고 난임과 유산에 대해서는 상식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성별에 관계없이 말이다.

 임신과 출산보다 피임임신 중지가 우선이었던 성교육의 영향 때문일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성교육의 비중이 이해가 간다. 현대 사회의 인간의 삶은 임신을 하려는 기간보다 피임을 하려는 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또한 임신과 출산에 대한 관심은 일생에서 특정 연령대에만 집중되어 나타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난임 인구 20만 명에 이르기까지 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난임은 큰 사회적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여전히 난임부부는 소수자이다.



 때론 '소수자'에게 더 큰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난임을 겪고 있는 여러 부부가 난임을 감춰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난임 정보 카페의 글을 살펴보면 자신의 부모에게도 난임을 밝히지 않는 부부도 여럿 있다.  

 나는 부모님들에게는 난밍아웃(7화 참고)했으나 그 외에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공감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볍게 던진 위로에 내 마음이 더 상처 받을까 두렵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 난임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상식 조차 없다. 무려 난임이란 말도 몰라서 '불임'이라고 하는 사람도 여럿 만났다. 나도 난임을 인정하기 전까지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채널A  아빠본색 캡쳐화면 출처: MK스포츠 http://naver.me/x2E1nQD7


  최근에TV에서 연예인들의 시험관 시술 과정을 볼 수 있다. 그 조차 수많은 난임 케이스 중에 겨우 하나일 뿐이다. 난임 인구는 매해 점점 늘고 있다. 미디어, 책, 성교육 등 어떠한 형태로든 난임은 앞으로 우리에게 더 노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 그것에 대한 상식이 생긴다. 그 상식은 난임을 겪는 사람건, 난임을 겪지 않는 사람이건 모두에게 중요하다.


 난임을 겪고 있는 한 사람으로 '' 피''처럼 난''도 익숙한 용어가 되길 바라본다.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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